문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인 기자를 광주로 보냈던 사람은 누굴까

입력 2017.09.25. 15:54 수정 2017.09.25. 18:16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게 군부대가 광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린 선교사 폴 슈나이스 목사가 25일 광주 트라우마센터 기고를 통해 1980년 5월의 기억을 풀어냈다.

슈나이스 목사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동아시아 선교회 일본 파송 선교사로 일하며 유신 독재와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외국에 알리고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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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화운동 알린 슈나이스 선교사, 도쿄 특파원들에게 한국 상황 전파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인 기자를 광주로 보냈던 사람은 누굴까?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게 군부대가 광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린 선교사 폴 슈나이스 목사가 25일 광주 트라우마센터 기고를 통해 1980년 5월의 기억을 풀어냈다.

슈나이스 목사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동아시아 선교회 일본 파송 선교사로 일하며 유신 독재와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외국에 알리고 지원했다.

1978년 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입국 금지된 슈나이스 목사는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던 일본인 부인 기요코 여사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듣고 독일 언론의 취재를 요청했다.

그는 기고를 통해 1980년 5월 16일 또는 17일쯤 다른 선교사 부인과 함께 한국 조선 호텔에 묵고 있던 아내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자정을 넘긴 늦은 밤에 전화를 건 아내는 "통금때문에 호텔 주변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며 "창밖을 보니 군용차와 군인, 탱크가 서울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침이 되자 슈나이스의 아내는 호텔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정부 당국은 허락하지 않았다.

언론인을 포함한 조선 호텔의 모든 손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답답해했다.

아내는 이후 호텔을 떠나 몇몇 신문사 사무실을 둘러보게 됐고 호텔로 돌아와 한국 친구로부터 "북쪽을 지키던 한국군이 광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광주가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정부에 체포돼 투옥당하는 등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던 슈나이스 목사는 도쿄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독일 공영방송 ARD-NDR 언론인들에게 아내에게 들은 상황을 알리기로 했다.

슈나이스 일행은 기자들에게 빨리 서울로, 가능하다면 광주로 직접 가 기자의 눈으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도록 설득했다.

취재진은 재빠르게 취재 결정을 내렸다.

슈나이스 목사는 "광주로 간 힌츠페터 기자가 취재한 영상에는 미군 지휘부의 승인 아래 전두환이 보낸 계엄군에 의해 행해진 광주시민들에 대한 끔찍한 재앙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몇 년 뒤 한국 입국이 허용되자 망월동 구묘역을 방문했고 수십 년 후 서울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만나기도 했던 슈나이스 목사는 "이제는 한국을 둘러싼 이 모든 역풍을 이겨내고 남북한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슈나이스 목사와 가족들은 200여 차례나 한국을 오가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자료 수집과 저서 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 정부에 모든 자료를 기증한 슈나이스 목사는 5·18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부인과 함께 광주 오월어머니집으로부터 2011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areu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