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트럼프와 NFL 충돌의 배경.."백인 우월주의자의 폭력보다 흑인의 비폭력 저항에 더 가혹한 트럼프"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2017. 9. 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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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프로풋볼(NFL) 일부 선수의 애국심 결여를 주장하며 비난을 쏟아내자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NFL 구단과 선수들은 집단 저항에 나섰고, 언론들은 인종주의적 행태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NFL 선수들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결례를 멈출 때까지 팬들이 경기에 가길 거부한다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며, 국기가 연주될 때 일어서지 않을 경우 “해고 또는 자격정지”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NFL 관람률과 시청률은 떨어지고 있다. 지루한 경기 탓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은 국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경기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선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시즌 내내 흑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처사에 대한 항의로 국가 연주에 맞춰 ‘무릎 꿇기’를 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을 겨냥한 것이다. 캐퍼닉은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에이전트로 활동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프로풋볼(NFL) 비판 트위터 내용.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전인 22일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지원 유세에서는 “우리 구단주들이 국기에 결례를 범하는 선수에게 ‘개XX를 당장 끌어내고 해고해’라고 말하는 걸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릎꿇기 등으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선수들을 ‘개XX’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다음날에도 트위터에서 “운동선수가 NFL이나 다른 리그에서 수백만 달러를 버는 특권을 원한다면, 그는 우리의 위대한 국기 또는 우리나라에 결례하도록 허용돼선 안 되고, 국가(연주)에 일어서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해고다. 다른 할 일을 찾아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선수를 ‘개XX’로 비난하고, NFL 보이콧을 선동하자 NFL 구단과 선수들의 비판과 저항이 이어졌다. 볼티모어 레이번스와 잭슨빌 재규어스 소속 선수들은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즉각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팔짱을 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선수단은 국가 연주 시간이 되어서도 라커룸에 머물며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이애미 돌핀스 선수들은 캐퍼닉을 지지하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서 몸을 풀었다. AP통신은 이날 NFL 경기에서 100여명의 선수가 항의시위를 했으며 최소 3명의 구단주가 시위에 동참했다고 전했다.

NFL의 32개 구단 중 절반 가까이가 성명을 내고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지난해 슈퍼볼 우승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 로버트 크래프트는 성명에서 “대통령의 발언에 매우 실망했다”며 “이 나라에서 스포츠보다 더 위대한 통합자는 없으며, 불행하게도 정치보다 더 분열적인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 크래프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만 100만 달러를 기부한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다. 휴스턴 텍산스 구단주 밥 맥네어는 “NFL은 우리 사회와 가족을 항상 결속시켜왔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분열적이며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가세했다.

비판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는 전날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무대에 올라 공연하기 전 아들 콰메 모리스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NFL 선수들의 무릎꿇기에 대해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오늘 밤 나는 미국을 위해 무릎을 꿇는다”며 “우리 지구, 우리 미래, 세계의 우리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한쪽이 아닌 양쪽 무릎을 꿇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뉴저지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용기에 오르면서 기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미국 국기나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종이나 다른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NFL 선두 일부를 공격하는 것은 인종주의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의 평가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라는 ‘버서 논란’을 일으켜 유명인이 됐다. 취임 후 버지니아주 샬럿츠빌에서 벌어진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사태를 두고는 ‘양측의 문제’라며 물타기를 했다. 그러면서 흑인 운동선수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는 막말까지 하면서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정치인 랜디 브라이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프로풋볼(NFL) 공격을 비판한 트위터 내용.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 맞서 위스콘신에서 출마 예정인 민주당 정치인 랜디 브라이스는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흑인의 비폭력을 백인 우월주의자의 폭력보다 더 가혹하게 비난한다”고 공격했다. 공화당 정치평론가인 팀 밀러는 워싱턴포스트에서 “트럼프는 인종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할 생각이 없다”면서 “그는 백인들의 분노에 맞추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나라를 더 쪼개고 주변을 더 확대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 실리자 CNN 에디터는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인종적 적대감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어두운 짓이고, 비난 받아 마땅한 이유”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국프로농구(NBA) 우승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간판스타 스테픈 커리가 백악관 초청을 꺼려하자 관례를 깨고 우승팀 초청을 전격 취소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스티브 커 워리어스 감독도 이날 ESPN에 출연해 NFL 선수들의 인종차별 항의에 손을 들어주며 트럼프를 비난했다. “풋볼선수들이 ‘나는 군대를 존중하지만 경찰의 폭력성과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것이다’라고 몇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민족주의자들은 ‘너는 국기를 무시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알고 있고, 당신도 뭐가 진정 국기를 무시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인종주의다. 인종주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각한 무시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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