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앙뚜와 노스승, 나이 초월한 우정 '애틋'

정원식 기자 2017. 9. 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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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다큐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전진 감독

다큐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왼쪽), 전진 감독이 21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후 사진촬영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인도 북부 라다크의 작은 마을 삭티의 사원. 고사리손을 한 아이들부터 깊은 주름이 파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고개를 숙여 가사를 걸친 꼬마에게 예를 표한다. 아이의 이름은 파드마 앙뚜. 아홉 살이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건 앙뚜가 린포체(환생한 고승)라고 믿기 때문이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문창용 감독(46)이 앙뚜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EBS의 동양의학 다큐 촬영을 위해 라다크를 찾은 문 감독은 사원에서 승려이자 의사인 우르갼을 만난다. 당시 앙뚜는 우르갼을 수행하는 동자승이었다. 60대 승려와 동자승의 친밀한 모습에 흥미를 느낀 문 감독은 그들을 좀 더 오래 지켜보기로 결심한다.

다큐멘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이듬해 다시 라다크를 찾았을 때, 놀랍게도 둘의 관계는 역전돼 있었다. 앙뚜가 티베트 고승으로 살았던 전생의 기억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늙은 우르갼이 어린 앙뚜를 모시게 된 것이다. 문 감독은 이때부터 한국과 라다크를 오가며 2016년까지 둘의 관계를 기록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그 7년간의 기록을 95분 분량으로 편집한 다큐다. 이 작품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Plus 부문 대상, 시애틀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모스크바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과 편집상을 받았다.

지난 21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만난 문 감독은 “린포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은 꽤 있지만, 이 영화는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린포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앙뚜와 우르갼의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앙뚜에 대한 우르갼의 헌신은 그야말로 지극하다. 전생에는 티베트의 고승이었을지 몰라도 현실의 앙뚜는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이일 뿐이다. 우르갼은 헝겊으로 신발을 닦아주고, 밥을 지어 먹이며, 준비물을 전해주기 위해 추운 겨울 학교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는 어린 린포체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엄마 같은 존재, 린포체의 영적 수행을 돕는 조력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문 감독은 “아이를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삶을 건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 마음과 온몸을 바쳤다”고 말했다.

2014년, 우르갼과 앙뚜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린포체로 확실한 승인을 받으려면 전생의 제자들이 찾아와야 하지만, 티베트에서 수백㎞ 떨어진 라다크에서 환생한 탓에 아무도 앙뚜를 데리러 오지 않자 앙뚜는 라다크의 사원에서 쫓겨난다. 주변 사람들은 ‘가짜 린포체’라며 수군댄다. 두 사람은 결국 티베트의 사원을 직접 찾아내기 위해 300여㎞의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면서 연인보다 더 다정하고 친구보다 허물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촬영지인 라다크가 워낙 오지인 탓에 스태프라고는 문 감독과 2012년 합류한 제작자 겸 공동감독 전진씨(33) 두 사람이 전부였다. 두 감독은 한 번 촬영에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을 머물렀다. 전 감독은 “몇 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라다크 같은 고산지대에 적응하려면 4~5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응기간을 거쳐야 하지만 두 사람은 제작비가 아까워서 고산병 통증을 안고 촬영을 해야 했다.

촬영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투자자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전 감독은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 마켓에서도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수없이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펀딩은 못 받고 쓴소리만 들은 경우가 허다하다. ‘멘붕’이 와서 한동안 처박혀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우르갼이 외국인들에게 앙뚜를 팔아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앙뚜는 티베트 접경지 시킴의 한 사원에서 린포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린포체로서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곧 앙뚜와 우르갼이 헤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의 마지막 이별은 담담해서 더 눈물샘을 자극한다. 문 감독은 “모두가 나를 버리더라도 내 편이 한 사람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7일 개봉.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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