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앞에 민망한 조형물 넣느니 나무 한그루 심는게 유익"

2017. 9. 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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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서울 공공미술자문단장
공공미술 설치 ‘영구→일시적’
‘시민 참여형’이 세계적 트렌드
80년대 생긴 ‘공공미술 설치법’
건물주·브로커 양산시스템 변질
100년후의 ‘기억장소’ 고민 필요

‘슈즈트리’부터 ‘윤슬’까지 올해 서울시 공공미술은 양극단을 달렸다.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7017’ 옆에 설치된 두 작품 중 전자에는 혹평이, 후자에는 호평이 쏟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서울은 미술관’을 선언한 지 약 1년 지난 서울 공공미술의 현주소다. 실패와 가능성이 혼재돼 있는 과도기적 모습이다.

안규철(62·사진) 공공미술자문단장(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ㆍ조각가)은 25일 “공공미술이 반드시 조각이나 눈에 띄는 것으로 해야하는 지 다시 생각해봐야할 때”라고 말했다.


일반 대중에 공개된 장소에 설치ㆍ전시하는 작품을 뜻하는 공공미술하면 흔히 청계천의 ‘스프링’,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해머링 맨’을 떠올린다. 모두 외국작가의 작품이며 영구설치 형태다. 최근 세계 공공미술은 영구 설치가 아닌 일시 설치, 시민 참여형으로 바뀌고 있다. ‘윤슬’은 이런 트렌드를 앞서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로 개장 기념작으로 선보인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강예린 作)은 공공미술자문단이 지난해 출범한 뒤 내놓은 대표적인 공공프로젝트다. 폭 25m의 대형 광학렌즈 같은 모양의 이 작품은 지면 아래 4m 깊이의 공간이 있어 관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 바깥의 도심 풍경을 올려다보며 경험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안 단장은 “애초 시로부터 서울로7017 끝에 조형물을 세워달라 요청을 받았을 때 여태까지 해온 상징물을 세우는 것 대신 시민들이 머물고 사용할 수 있는 장소적 공간으로 3년만 설치하기로 하고 지명공모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같은 대도시에선 수직적 상징물로는 눈에 띌 수 없어 바닥을 활용해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이룬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1일 서울로 만리동광장 앞에선 또 하나의 색다른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리은행 중림동 지점 벽면에 설치된 가로 29m, 세로 7.7m 대형 미디어스크린 ‘서울로미디어캔버스’다. 오후 6시(주말 오후5시)부터 전문 미디어아트와 시민작가 작품을 상영한다. 특히 시민들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미디어캔버스로 표출시킬 수 있는 참여 채널을 운영한다. 서울로에서 연인, 친구끼리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전송해 대형 화면으로 보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공공미술자문단 프로젝트들은 공공미술의 주인인 ‘시민’이 강조된다. 서울광장 시민참여 순환 전시 좌대 ‘오늘’의 첫작품 ‘시민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중견작가 김승영 작품으로 시민이 투표로 뽑아 선정했다. ‘오늘’의 두번째 작품부터 아예 시민 공모로 올린다.

안 단장은 “서울에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건축물 앞 미술작이 3000점이 넘고 매년 300점씩 새로 생긴다”며 “이것들은 3~5년이 지나면 폐물이 되고, 자자체에서 세운 기념비, 기념동상은 1970년대 유엔군 참전기념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공공미술계 풍토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앞에 공공미술을 설치하도록, 1980년대 생긴 제도가 건물주와 중개사(브로커), 생계행 작가의 양산 시스템으로 변질돼 이젠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란 얘기다.

안 단장은 “작품을 세울 공간이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이란 인식을 해야한다. 50년, 100년이 지나도 같은 의미를 지니면서 기억의 장소로 남을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공간에 민망한 조형물을 넣느니 차라리 나무 한그루 심는게 시민들에게는 더 유익하다”고 비판했다.

안 단장은 “서울은 상업광고 간판들이 막대한 영향을 주는 여건에서 좋은 미술 몇점만 갖다놓는다고 좋아질 수 없다”며 “근본적인 딜레마로 인해 회의적일 때도 많은데, 선례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게 공공미술자문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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