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미군 전투기·폭격기의 북한 공해상 비행은 정전협정 이후 처음이라는 데

이철재 2017. 9. 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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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B가 지난 23일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미 태평양사령부]
지난 23일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와 F-15C 전투기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국제공역을 비행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21세기 들어 어떤 전투기·폭격기보다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가장 멀리 북쪽으로 비행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DMZ는 원래 육상의 군사분계선을 가리키나 이 대목에선 해상 군사 분계선인 NLL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 폭격기·전투기가 북한 동해 공해 상까지 비행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략정찰기 SR-71 블랙버드. [사진 NASA]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다. 정찰기로 한정한다면 100% 틀렸다. 냉전 시대 미국은 북한 영공에 노골적으로 정찰기를 들여 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략정찰기로 분류하는 SR-71 블랙버드다.

SR-71은 최고 속력이 마하 3.3으로 지금도 실전배치된 비행기 중 가장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요격 미사일보다 속도가 더 높아 요격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 냉전이 끝난 뒤 퇴역했다.

최근 기밀 해제된 CIA 문서에 따르면 SR-71은 1969년 북한을 동해에서 서해로 여러 번 횡단하는 비행경로로 정찰비행을 수행했다. 북한으로선 마음대로 드나드는 SR-71이 최대 골칫거리였다. 북한군은 SR-71 격추를 시도했지만, 매번 허사였다.
1969년 SR-71의 북한 정찰비행 경로. [출처=사진 벨레-페카 키비매키 트위터]
북한은 1981년 8월 26일 SR-71 1대에 대해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요격하는데 실패했다. 83년 3월에도 SR-71을 향해 미사일을 쐈지만 빗나갔고 오히려 민가로 떨어졌다는 첩보가 있다. 1970~80년대 북한의 매체에서 SR-71의 정탐행위를 규탄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북한은 1969년 4월 청진 남동쪽 상공에서 정찰 중이던 미 해군 EC-121 정찰기를 격추해 탑승 승무원 31명 전원을 숨지게 한 적도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전투기의 북한 침투 경우 심증은 가는 데 물증이 없다.
1세대 스텔스기인 F-117. 별명은 밤매(Night Hawk)다. [미 국방부]
2004년 일본의 문예춘추와 미국의 2007년 에어포스타임스는 “F-117이 야간에 북한 영공으로 침투해 김정일의 특각(비밀별장) 상공에서 급강하를 하며 대응 태세를 알아봤다”고 보도했다. 걸프전에서 활약했던 1세대 스텔스기인 F-117은 2008년 퇴역했다. 미 공군은 이런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미국의 스텔스기가 한국에도 사전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적이 몇 번 있다”며 “그러면 좀 있다 북한에서 신경질적 보도가 나온다. 북한 영공을 침투해 방공망의 허점을 알아보거나 북한에 경고를 주는 은밀한 작전을 수행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폭격기·전투기가 북한 동해 공해 상까지 비행한 사실을 발표한 사실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은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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