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사기일 뿐인가?

입력 2017. 9. 25. 10:46 수정 2017. 12. 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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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마이클 케이시·폴 비냐 지음, 유현재·김지연 옮김/미래의창(2017)

[한겨레]

“비트코인에 투자하라는데 지금 사도 괜찮을까요?” 한 지인이 물어왔다. 주변에서 투자를 권유해서 망설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법부의 전문직 공무원으로, 평소 그런 쪽에 별로 관심 기울일 것 같지 않은 분이어서 좀 놀라웠다. 비트코인 투자 바람이 불긴 부는가 싶었다.

비트코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그게 뭔가 싶어 알아보려 해도 기술적인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시중에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crypto currency)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이 나와 있는데 그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기자가 쓴 책이어서 반가웠다. 모두는 아니지만, 기자가 쓴 책은 복잡한 내용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가며 쉽게 썼을 확률이 높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20년 이상 일한 두 기자가 쓴 이 책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난해한 비트코인을 그 기원부터 기술적 기반인 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 초창기 멤버들이 공유한 ‘탈중앙집권’의 이상, 그 가치 변동을 놓고 벌어지는 욕망과 수용, 배척의 과정을 (다소 지루할 정도로) 세밀하게 보여준다.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비밀스러운 인물이 알고리즘을 설계한 최초의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지난 8년간 죽었다 살기를 반복했다. 최근 투자 열풍에 6개월간 5배나 가치가 뛰었지만, 다시 시련의 시간을 맞았다. 월가의 거물인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잘라 말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보다 더 심하다”고도 했다. 각국 정부도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 가상화폐를 내걸고 자금을 조달하는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하고, 비트코인 거래소도 문을 닫게 했다. 비트코인 가치는 최근 며칠 사이 반토막이 났다.

비트코인 외에도 세계에는 1100개의 유사 비트코인(알트코인)이 나올 만큼 가상화폐 붐이 일고 있다. 국내에서도 자신만의 블록체인 기술을 내걸고 수백억원을 모금하는 가상화폐공개가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가상화폐가 화폐로 통용될 리는 없으므로 상당수 투자자는 돈을 날릴 것이다. 그래서 가상화폐에 돈이 쏠리는 게 걱정이긴 하다.

하지만, 투기는 새로운 화폐의 탄생과 그 기술적 잠재력에 대한 세상의 믿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닷컴만 붙으면 수백, 수천억이 몰리던 90년대 말의 인터넷 투자 열풍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기술 발달의 역사에서 투기는 촉진제이기도 했다.

그래픽: 이상호 기자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본디 화폐가 뭔지를 생각해 본다면 비트코인이 화폐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쓰는 돈은 별다른 내재가치가 없지만, 중앙은행(정부)이 부여한 권위와 신뢰 때문에 화폐로 유통된다. 그 가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고, 가치척도·저장 같은 기능을 적절히 해낸다면 화폐가 된다.

디지털시대에는 화폐제도나 금융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트코인은 답을 찾는 과정의 하나이다.

이 기술이 왜 탁월한 기술인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낯선 이들끼리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는 남겨두면서 중개인은 필요 없게 해 준다는 점이다. 중앙화된 금융기관의 중요 역할인 내부에 장부를 기록하는 일은 익명의 컴퓨터 네트워크가 대신한다. 즉, 어떤 기관의 통제에도 놓여 있지 않는 분권화된 신용 시스템을 창출한다. (… ) 이런 네트워크 기반의 장부 기술을 블록체인(block chain)이라 부른다

중개인 없는 직접거래를 추구하는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될 때 가장 타격을 받을 곳은 독점적으로 화폐를 발행해 온 중앙은행과 신용을 창출하고 중개를 독점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금융회사들이 될 것이다. 사실 중앙은행은 화폐발행을 독점하면서 액면가와 발행원가의 차이인 시뇨리지(화폐주조 차익)를 톡톡히 누려왔다. 특히 기축통화를 운용하는 미국이 달러 발행을 통해 전 세계로 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은 막대하며, 이 것이 제국으로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중앙은행과 거대 금융회사들은 화폐 발행량을 늘리고 줄이며 경제를 조절해 왔다. 하지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옹호자들은 이런 시스템이 사라져야 할 유물이라고 본다. 2008년 같은 금융위기가 그런 시스템이 나은 대표적인 폐단인 만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가상화폐는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가격 상승 혹은 하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러화, 유로화, 그리고 엔화 등을 대체할 새로운 교환의 단위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중앙집권화된 신용 시스템 속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해방시켜주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 정부, 변호사,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장 같은 중앙이 갖고 있던 권력을 주변, 바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멋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트코인은 전체 발행량이 2100만 코인으로 제한된데다, 이를 갖고 은행이 종전 처럼 신용창출을 하기도 어려워 경제에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마운트곡스라는 거래소가 당했던 것처럼 해킹을 완벽히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교환과 송금만 가능하던 비트코인에 계약기능을 추가한 ‘이더리움’이 나오는 등 가상화폐 기술은 경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거래와 송금기능 만으로도 아프리카, 아시아 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도 있는 약 25억명의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준다. 은행이 주변에 없거나 너무 가난해 외면당한 이들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은 요즘은 다행스럽게도 휴대전화는 갖고 있다. 이들의 휴대전화에 간단한 앱을 설치해 국경까지 넘어 소액을 주고 받는 기능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비트코인이 ‘혁신’인 것은 권력을 가진 중간조직을 배제하고 개인 간에 분산된 네트워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상통화의 미래는 이를 끊임없이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아예 배제하려는 힘과의 밀고 당김이기도 하다. 그 줄다리기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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