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배턴터치' 김인식-선동열, 한국 야구를 말하다

배영은 2017. 9.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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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배영은]

거목(巨木). 김인식(70) KBO 총재 특보와 선동열(54)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전임 감독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 전문지인 일간스포츠가 창간 48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두 감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짚어 보기 위해서다.

각자의 자리에서 야구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김 특보와 선 감독은 올해 더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사실상 국가대표 전임 감독 역할을 해 온 김 특보가 제자였던 선 감독에게 국가대표 지휘봉을 물려준 것이다. 선 감독은 지난 7월 KBO 최초의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한국 야구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큰 이름들이다. 김 특보는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잔뼈가 굵었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숱한 환희 뒤에 김 특보가 존재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를 이끌었다. 2009 WBC 준우승도 김 특보의 지휘 아래에 가능했다. 2015 프리미어 12에서는 '괴물' 오타니 쇼헤이를 내세운 일본과 결승전에서 만나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일궜다. 김 특보에게 '국민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선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은 '국보'였다. 말 그대로 한국 야구의 보물 같은 존재였다. 전무후무한 현역 통산 1점대 평균자책점(1.20)을 남기면서 KBO 역대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 감독을 역임했다. 역대 최초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우승컵을 2회 들어 올렸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KIA 감독도 맡았다. 2006 WBC와 2015 프리미어 12에선 투수코치 역할을 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김 특보와 선 감독은 한국 야구의 현안을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한마디, 한마디에 한국 야구를 향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기념일을 맞아 두 감독을 함께 초대한 이유다.

- 그동안 국가대표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감독과 KBO 사상 첫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이 이제 배턴 터치를 하게 됐다. 떠나는 마음과 시작하는 마음이 서로 다를 듯하다.

김인식(이하 김)= 진작 전임 감독제가 시행돼 후배들이 대표팀을 맡아 줬으면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돼 다행이다. 선동열 감독을 전임 감독으로 추천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무척 기대된다. 지금 선수 전력이 과거보다 훨씬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천천히 팀을 다져 가면서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니 선 감독이 잘 해내리라 믿는다.

선동열(이하 선)= 감독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해태 시절이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연속 우승을 할 때 감독님이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로 잘 이끌어 주셨다. 이후 지도자로서는 2006 WBC와 2015 프리미어 12에서 국가대표팀 감독과 투수코치로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전임 감독을 맡으면서 부담이 컸다. 그동안 감독님이 대표팀을 워낙 훌륭하게 이끌어 오셔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차근차근 잘해 나가야 할 것 같다.

- 과거 한국 대표팀의 영광은 대단했다. 특히 2006 초대 WBC 4강 신화는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김= 처음 국가대표팀을 맡은 게 2002 부산아시안게임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WBC에 참가하던 느낌은 또 달랐다. 그때 선 감독도 코치로 참여해서 잘 알겠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다 나오는 대회라 모두 굉장히 설레었다. 과연 그 무대에서 우리 실력이 어떨지 기대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막상 대회에 나가 보니 기대보다 더 선수들이 잘했다. 특히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각 구단까지 모두 하나로 뭉친 덕분에 결과가 더 좋았던 것 같다. 4강도 기뻤지만, 그때 알렉스 로드리게스·데릭 지터·체이스 어틀리 같은 선수들이 포진한 미국을 꺾었다는 게 제일 의미가 있었다. 아마 그 대회에서 우리가 가장 실력을 잘 발휘한 것 같다.

선= 맞다. 그때 미국도 이겼고, 일본에도 3승1패를 했다. 감독님도 말씀하셨듯이 그 대회를 앞두고 모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우리 프로 선수들이 세계적 스타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경기를 할지 걱정이 컸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강적들을 계속 이기면서 선수들의 불안이 자신감으로 바뀌는 게 눈에 보였다. 결과적으로 4강전에서 일본에 졌지만, 나 또한 코치 입장에서 큰 대회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3년 뒤 2회 WBC에서 한국이 준우승을 하면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지 않았나 싶다.

김= 2회 때는 원래 전년도 우승팀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기로 했다. 그런데 우승팀 SK 김성근 감독이 몸이 좋지 않았고, 다른 감독들도 모두 고사했다. 밀리고 밀리다 결국 또 내가 맡았다. 당시에도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로 보답받았다. 그러다 2015 프리미어 12가 창설되면서 또 내가 지휘봉을 잡게 됐고, 코칭스태프에 선 감독이 합류해서 함께 우승까지 했다. 그렇게 큰 대회에 하나둘씩 나가다 보니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렀다.

-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 한국 국가대표팀은 위기에 놓였다.

김= 올해 3월 WBC를 치르면서 투수의 실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많이 느꼈다. 엔트리 수야 채울 수 있겠지만 실력 있는 선수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선= 감독님 말씀대로다. WBC 1회와 2회 대회에 출전했던 박찬호(은퇴),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같은 투수들 이후 그만한 인재들이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 대회에서 한 경기를 믿고 맡길 만한 투수가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야수 쪽에서도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대표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고민이 많이 된다. 사실 메이저리그를 보면 그냥 일반적인 투수도 시속 150㎞를 던지지 않나. 그러나 우리는 150㎞를 던지는 투수가 거의 없고, 제구가 완벽한 투수는 더 없다.

국제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며 위용을 떨쳤던 한국 야구. 그러나 2013 WBC 1라운드 탈락을 시작으로 암흑기에 빠졌다. 2015 프리미어 12 우승으로 새 힘을 얻는 듯했지만, 안방에서 열린 2017 WBC 1라운드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다시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2017 WBC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총재 특보도 한국 야구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꼈다. 동시에 첫 전임 감독으로 출발하는 선동열 감독에게는 커다란 숙제가 떨어졌다.

두 감독은 모두 "한국 야구의 국제 대회 경쟁력이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에 깊이 공감했다. 동시에 "이대로 안주해서는 안 된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감독'과 '국보'는 한국 야구 걱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국가대표팀의 부진은 한국 야구 전체의 문제에서 나온다.

김= 올해 고교를 졸업하는 투수 가운데 10명 정도 좋은 투수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미국과 결승전을 지켜 보니 미국 투수들과 키부터 10cm 가까이 차이 났다. 미국 투수들은 시속 150㎞ 이상 강속구를 던지면서 제구력도 좋더라. 우리 야수들이 방망이를 잘 치는 것 같은데도 미국과 두 경기에서 한 점도 못 뽑지 않았나. 그만큼 미국이 강하다. 물론 우리 투수들도 이전 아마추어 선수들보다는 확실히 괜찮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두산에 1차 지명된 곽빈이 돋보였고, 삼성에 2차 1라운드에서 선택된 양창섭도 좋았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 야구가 미국을 상대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 유소년 야구 실력이나 저변이 결국 프로까지 연결되기 마련이다. 우리처럼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KBO 리그 한 시즌 144경기는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시즌 막바지가 되면 선수들 힘이 떨어지면서 프로 수준 이하의 플레이가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김= 144경기는 정말 많다. 다만 10개 구단 체제에서 그 경기 수를 줄이려면 여러 문제가 있는 모양이더라. 그러나 지금 투수도 다들 약하고, 선발 다섯 명이 제대로 구축된 팀조차 거의 없다. 선 감독의 선수 시절만 해도 한 팀에 2~3명씩은 수준급 투수가 존재했다. 지금은 외국인 투수를 빼면 로테이션을 꾸리기도 어렵다. 또 타자들은 자기 몸에 비해 너무 큰 스윙을 한다. 자신의 체격과 스타일에 맞는 타격을 해야 하는데,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스윙이 똑같다. 그러니 어쩌다 센 투수를 한 번 만나면 꼼짝을 못 하는 것이다. 시즌 막바지에 야구다운 야구를 너무 못하고 있다.

선= 투수들의 제구력 문제도 타고투저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그러니 타자들이 국제 대회에서 좋은 투수를 만나면 한 점을 뽑기가 쉽지 않다. 결국 유소년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 아마추어 선수들은 1월부터 곧바로 기술 훈련을 시작한다. 이게 큰 문제다. 건물을 짓더라도 뼈대가 튼튼해야 하지 않나. 겨울에는 러닝도 많이 하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따뜻해지면 기술 훈련을 해야 한다. 무조건 선수를 보호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 김 감독이 느낀 국가대표팀 사령탑의 어려움이 있다면.

김= 잘될 때는 선수를 선발할 때부터 잘된다. 부상도 없고, 다들 의욕도 넘친다. 그런데 안될 때는 선수 선발 과정부터 삐걱거린다. 메이저리그 구단 소속 선수들을 데려오기도 어렵고, 10개 구단도 각자 이해관계가 있다. 결국 다 같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 다 '내 일', 더 나아가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선동열 감독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텐데.

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선수들이 군 대체복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회라 그래도 어려움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역시 대표팀을 소집해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없다. 가장 잘하는 선수들을 뽑아야 최대한 빨리 대비할 수 있다. 올해 11월에 24세 이하나 입단 3년 차 이하 선수들만 출전하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회가 열린다. 이번 대회에서 잘하는 선수들에게는 내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우선 선발하는 혜택을 주려고 한다. 그래야 국가대표팀의 미래가 될 선수들이 목표를 갖고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다.

- 국가대표팀 전·현직 사령탑으로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김= 선 감독도 국가대표 감독의 어려움과 무게를 이미 잘 알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2020 도쿄올림픽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 국가대표팀 전력이 가장 좋지 않을 때 대표팀을 맡았으니 더 응원하고 싶다. 첫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아마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다. 부디 마지막 경기까지 몸 건강하고 건승하기를 바란다.

선= 감독님께서 2002년부터 올해까지 한국 야구 위상을 세계에 알리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뒤를 내가 잇게 돼 부담이 크다. 감독님이 이루신 위업을 나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 감독님도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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