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큰소리 뒤엔 핵-경제 병진책 성공? "1년 버틸 힘 축적"
김상진 2017. 9. 25. 05:00
이용호 트럼프 맹비난 뒤 숨은 북한의 실상
김정은 정권 들어 초기 시장경제적 요소 발전
장마당·개인영농·독립채산 등 경제성장 견인
한은, GDP 3.9% 증가..北 "10% 이상 올랐다"
北 돈주들 외화 회수하려 온갖 시스템 구축
레스토랑·물놀이장·스키장도 외화벌이 수단?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대미 선전포고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이 외무상은 “자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라면서 “미국 땅의 무고한 생명들이 화를 입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트럼프의 책임이 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국무위원장 명의 성명을 통해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직접 밝혔다. 뒤이어 이 외무상이 태평양 상공에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을 언급해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북한이 '강 대 강' 국면을 극대화하는 상황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 노선이 일정 성과를 거두고 있을 가능성'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 입장에선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핵·미사일 개발이 불가피한데,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자체적인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이다.
당장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대북 석유제품 금수 조치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석유를 비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 북한 당국은 4804세대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평양 여명거리를 조성하는 등 경제 발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보다 3.9% 증가했다. 1999년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다. 북한은 대외 지표가 불분명한 통제 국가인 만큼 정확한 성장률 집계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북한 측 주장은 한은 통계보다 더 높다”면서 “북한은 중국 측을 통해 지난해 10%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자신감이 있다는 표현인 셈이다.
조 부소장은 "북한 경제가 성장했다면 장마당, 개인 영농제, 독립채산제 등 세가지 시장경제적 요소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선 장마당 경제의 활성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지난해 8월 발간한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사금융과 돈주』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기 북한의 장마당 수는 꾸준히 증가해 380~400개 정도로 늘었다. 장마당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의 수도 급속도로 늘어나 하루 100만~18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장마당이 사실상 당국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지하경제라면, 농업과 기업 부문에선 개인영농제와 독립채산제 등 합법적인 생산량 증가 활동이 대폭 확산돼 왔다. 북한은 2004년 시범 도입한 가족 단위 개인 영농제 '포전담당제'를 김정은 정권 들어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후 북한의 농업 생산량은 20~30% 많아졌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2014년 일종의 독립단위 채산제인 사회주의기업관리제가 시행되면서 기업 활동도 보다 생산적으로 바뀌고 있다. 조 부소장은 “공장장에 해당하는 지배인들도 이익이 나지 않는 공장은 맡기를 꺼리는 등 성과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화 회수 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김정일 정권이 화폐개혁을 통해 북한 내 외화(달러·위안화·유로화)를 단시간 내 거둬들이려다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김정은 정권에선 외화를 합법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착실히 구축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은 국영기업을 통해 중국산 휴대폰을 50달러 정도에 수입한 뒤 이를 주민들에게는 200~300달러에 팔고 있다. 또 고급 레스토랑, 문수물놀이장(수영장), 마식령 스키장 등 각종 여가시설을 조성해 북한 돈주(부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임수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의 최근 발표자료에 따르면 1991년 이후 북한의 외화수급 누적액은 126억 달러(약 14조3123억원)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50억 달러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고 나머지 70억 달러는 국고 또는 개인이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내부에서 거둬들일 수 있는 외화가 상당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 연구위원은 “당장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효과는 거둬들이지 못하겠지만, 수산물·임가공품 수출 금지나 노동력 해외 송출 차단 등의 조치는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것은 맞다”고 지적했다. 조봉현 부소장은 “중국도 일단 제재로 전환한 만큼 2~3개월 정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당국이 관행처럼 눈감아준 양국 간 밀무역 규모가 상당해, 이 부분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제한할 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김정은 정권 들어 초기 시장경제적 요소 발전
장마당·개인영농·독립채산 등 경제성장 견인
한은, GDP 3.9% 증가..北 "10% 이상 올랐다"
北 돈주들 외화 회수하려 온갖 시스템 구축
레스토랑·물놀이장·스키장도 외화벌이 수단?
조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 같은 시스템을 이용해 매년 4억~5억 달러(약 4538억~5672억원)를 벌어들인다는 추산도 있다”면서 “여기에다 이미 생필품이나 비료 등 꼭 필요한 자원을 축적한 상태여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때까지 버티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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