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오지 산골의 생존 농법, 1400년 뒤 친환경으로 날다

구이저우(중국)=진상현 특파원 2017. 9. 2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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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이저우성 '자방 계단식 논 지대'..해발 700~800m 고지대의 절경'오리+물고기+벼' 생태농업 가치 인정 받아 2011년 세계중요농업문화유산 지정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충장현 자방향 중부지역에 위치한 자방 계단식 논 지대 전경 1/ 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구이저우(貴州)성의 성도(省都)인 구이양(貴陽)시까지 비행기로 3시간, 구이양에서 고속철을 타고 90분, 다시 버스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3시간을 달렸다. 참 멀다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연녹색의 가파른 산등성이들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700~800m 고지대에 위치한 첸둥난주 충장현 자방향 중부지역의 '자방 계단식 논 지대'다. 25km가량 계단식 논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절경을 이룬다.

눈앞에 마주한 웅장한 산등성이들은 저마다 계단식 논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익은 벼가 연출하는 황금색과 연녹색 초지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장관을 만들어냈다.

계단식 논의 면적은 속한 산의 지형과 지모에 의해 결정된다. 이곳은 산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대부분 논들이 산을 촘촘하게 둘러싼 얇은 '허리띠'처럼 좁았다. 실제로 이곳 논들은 가장 넓은 곳도 1무(중국의 면적 단위, 약 666.7㎡(200평))를 초과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한, 두 줄의 벼를 심을 수 있는 '허리띠 언덕'이거나 부서진 조각 논이다. '청개구리가 한번 뛰면 3개의 논을 지난다'는 비유가 있을 정도다. 이 좁은 땅을 오르내리면서 벼농사를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필요할까.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충장현 자방향 중부지역에 위치한 자방 계단식 논 지대 전경 2/ 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이곳을 찾은 것은 지난 17~18일 이틀간 구이양시에서 열린 제3회 한·중·일 지방정부 삼농(농업·농촌·농민) 포럼의 둘째 날(18일) 현장 방문 일정을 통해서였다. '산지 농업, 녹색 공유'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이곳을 주목한 것은 독특한 친환경 생태 농업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외진 고산 지대에 살다 보니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고, 논에 물고기와 오리를 함께 키우게 됐다. 물고기와 오리가 유충, 해충, 잡초를 제거해주고 배설물은 자연 비료 역할을 한다. 해충이 사라지니 농약 칠 일도 줄어든다.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곳 논의 약 70%가 이런 농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이 농법을 시작한 것은 1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자방 계단식 논 지대는 '친환경 생태 농업'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1년 중국에서 네 번째로 세계중요농업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농가 빈곤 탈출'의 견인차로서도 기대가 크다. 십 수세기 이어져 온 생존을 위한 경작 방식이 현대에 와서 '친환경 농법'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일행과 함께 논두렁으로 내려서자 각 논마다 그득하게 차 있는 논물이 눈길을 끌었다. 벼농사 자체가 물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물고기까지 키워야 하니 충분한 물이 필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높은 고지대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다 올까. 안내를 맡은 지방 정부 관계자는 "이곳은 대대로 '산도 놓고 물도 높다'는 말이 있다"면서 "원래 물이 많은 지역이고 그 물을 과거에는 대나무 관으로, 지금은 고무관을 통해 끌어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논 한가운데 있는 볏짚으로 만든 '물고기 집'이었다. 원뿔형 천막 모양으로 여름엔 따가운 햇볕을 피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엔 찬 바람을 막아 추위를 덜어준다. 설명을 듣는 사이 한 주민이 손으로 논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보여주는데 씨알이 제법 굵다. 저 정도면 바닷가 생선 부럽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충장현 자뱡향 중부지역에 위치한 자방 계단식 논 지대에서 한 주민이 논에 키우는 물고기를 잡아 보여주고 있다./ 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이곳 사람들은 생선이건, 육류건 염장해서 먹는 걸 즐긴다. 별다른 저장 공간이 없는 탓에 귀한 단백질 공급원들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다. 맛과 풍미도 훌륭해서 세계적인 음식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됐을 정도다.

또 다른 주인공인 오리는 보지 못했다. 논에 풀어놓는 계절이 지났기 때문이다. 벼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오리가 다닐 때 벼를 상하게 한다. 그래서 모내기 후 1~2개월 정도 풀어서 유충, 해충, 잡초 등을 잡아먹게 한다.

이런 농법은 장점도 많지만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면도 많다. 농사만 지어도 힘든데 오리, 물고기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오리는 족제비 고양이 등 천적이 많고, 투입 시기 조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외딴 오지의 산악지대라는 척박한 환경,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생존 의지가 없었다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이저우성 정부는 이곳 자방 계단식 논 지대를 관광지로도 키울 생각이다. 구이저우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으로 주요 성장 동력 중 하나가 관광이다. 구이저우성 정부 관계자는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농업 그리고 독특한 가옥까지 어우러진 것이 이곳의 강점"이라며 "이미 중국 내에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방문에 동행했던 한 한국인 농업 전문가는 "경사진 산악지대에서 계단식 논이 무너지지 않게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1400년 가까이 이런 계단식 논을 유지해왔다는 자체가 경이롭다"고 했다.

구이저우(중국)=진상현 특파원 jis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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