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판화를 판박이라 했나..여기 '판 깨는 소리'

오현주 2017. 9. 2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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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층과 사이' 전
작가 57명 150여점..대규모 판화전
1950~70년대 한국현대판화 태동기
80년대 민중미술붐 목판화 회귀로
90년대 이후 알루미늄·점토 등 활용
장르경계 허무는 매체실험 도드라져
한국현대판화의 1세대인 정규의 목판화 ‘새’(연도미상). 한국판화가 태동한 1950~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거친 칼질을 고스란히 드러낸 목각에 단순한 구도와 색을 입혀 강건한 맛을 풍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나무·금속·돌 등에 뭔가를 그린다. 그 위에 올록볼록 입체를 입힌다. 볼록판이든 오목판이든 평평한 면에 삼차원 공간을 불러 판을 만드는 일이다. 다음은 찍어내는 작업. 물감이나 잉크를 칠한 판에 종이나 천을 덮어 세게 눌러댄다. 밑그림-제판-인쇄의 과정을 거쳐 거친 조각이 회화로 변환되는 과정. 우리는 이것을 ‘판화’라고 부른다.

‘판에 그린 그림.’ 그럼에도 판화는 회화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일회성을 극복하고 무한복제를 할 수 있는 장르다. 덕분에 희소한 미술을 대중과 공유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복제성’과 ‘대중성’이 판화의 무기가 된 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오리지널’만을 외치는 이들이 나서 판화의 예술성을 폄하하기 시작한 거다.

여기까지만 봐도 꽤나 척박해 보인다. 판화의 일생이란 게 결국 ‘판박이’란 비아냥거림과 싸워내는 일이었을 테니. 그런데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이렇게 다시 들여다보자.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이름을 올린 정규(1923∼1971), 박래현(1920∼1976), 한묵(1914∼2016), 김우조(95), 윤명로(81), 김구림(81) 오윤(1946∼1986). 나아가 최근의 김종억(61), 홍성담(62), 이철수(63), 최병수(57), 이윤엽(49) 등.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 판화작가 혹은 판화로 미술인생을 시작한 것이라면. 혹은 일찍이 판화작업으로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찾아낸 것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들 모두의 괄목할 작업 ‘판화’로 거대한 판을 꾸렸다. 지난 60여년 한국현대판화의 걸작을 모아 장구한 일대기를 꾸려낸 작업이다. 내로라하는 57명의 작가가 ‘판’으로 경지를 이룬 150여점을 내놨다. 미술관이 소장한 660점 중 70점을 엄선해 전시의 골격으로 삼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주요 판화작품, 또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한 신작 등으로 장을 키웠다.

이인철의 ‘신촌 풍경’(1991). 1990년대 초반 대학가 한 카페의 창이 갈라놓은 이중적인 사회상을 목판화와 실크스크린을 접목한 기법으로 교묘하게 드러냈다. 판화의 매체실험이 시작되는 시기의 작품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취지는 분명하다. 한국현대판화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자는 거다. 덕분에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층과 사이’ 전이란 타이틀 아래 펼친 전시는 찍고 누르고 짓이겨낸 그림판으로 그득하다. 판화를 둘러싼 해묵은 편견과 답답한 시선을 거둬내는 작품들. 여기저기서 ‘판 깨는 소리’가 들린다.

△회화가 닿지 못한 틈 세계

검은 공간에 노란 새 한 마리가 갇혀 있다. 양 날개의 대칭은 깨진 상태. 수직으로 곧추세운 온몸에 거칠게 그은 칼선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몸짓 그대로다. 새는 어디로 날아오르려는 건가. 판화가로 또 도예가로 활약했던 정규의 목판화 ‘새’다. 정확한 제작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195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국판화사에서 기꺼이 출발점에 섰다. 새 한 마리, 그 옆에 달인지 해인지 아니면 새가 빠져나왔는지 알 수 없는 구멍만으로 잡은 단출한 구도. 검정과 노랑으로 뽑아낸 색감. 하지만 작품은 이후 전개될 화려한 한국현대판화사의 서막처럼 강렬하다.

박래현의 ‘작품’(1972). 거친 칼질의 목판화를 빼낸 자리에 매끈하고 세련된 기법의 메조틴트과 엠보싱이 들어섰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정규의 노랗고 검은 판은 박래현에 와서 다시 한번 그 색을 잇는다. 동판화의 한 종류인 메조틴트 방식으로 작업한 ‘작품’(1972)이다. 소라를 중심에 박은 부채를 형상화한 작품은 조각도가 낸 상처 대신 말끔한 엠보싱으로 입체감을 줬다. 판화가 아니라고 우겨도 통할 만큼 정교한 기법을 뽑낸다. 박래현이 의도한 회전성만을 본다면 한묵의 ‘검은 회전’(1973)이 그 뒤를 따른다. 에칭(동판화의 한 종류)으로 찍어낸 작품은 잘 다듬어낸 추상화 한 점을 보는 듯하다. 레이어라 부르는 ‘층위의 겹침’이 당시 벌써 만들어진 거다.

1950∼1970년대를 태동기로 삼은 그때 한국판화는 굳이 ‘판화의 소재’라고 선 그을 수 없는 세계를 펼쳤다. 이는 1980년대를 넘어서며 4대 판법인 목판화·석판화·동판화·실크스크린 등의 기량을 빠르고 세련되게 향상시켰다. 1980년대는 되레 목판화로 회귀한 느낌이 없지 않다. 흔히 ‘민중목판화’라는 형태가 사회정치적 이슈를 타고 구심점을 이룬 바로 그 시기. 제도권 미술 밖에서 일어난 민중미술이 제대로 붐을 탄 것이다. 거대한 걸개그림을 제작했고 삽화, 전단 등에 수시로 찍혀 나왔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김준권의 ‘새야 새야’(1987). 민중미술의 붐을 타고 목판화가 다시 대세로 ‘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당시의 전시작으로는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인 전봉준을 신격화한 김준권(61)의 ‘새야 새야’(1987), 봄 꽃밭을 뒤로한 채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차림으로 소박한 웃음을 흘리는 한 소녀를 담아낸 남궁산(56)의 ‘봄처녀’(1989) 등을 볼 수 있다. 천재판화가라 불리다가 마흔 살에 요절한 오윤도 빼놓을 수 없다. 덩실덩실 탈춤을 추고 칼을 휘두르는 춤사위 등으로 흥겨운 민중상을 옮겨냈던 ‘칼노래’(1985), 또 ‘12세면 숙녀’(1980) 등이 걸렸다. 하지만 이 시기에 결코 놓칠 수 있는 한 점은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연도미상). 고작 46×30㎝의 작은 그림이 거대한 걸개그림의 옛기억을 새롭게 되돌린다.

△이것은 판화다! 아니다?

판화의 과거를 한참 돌아 다다른 곳에선 의도치 않은 현재와 맞닥뜨린다. 김동기의 ‘바위섬’(2013·2017)이다.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판화를 잘게 쪼개 거대한 건축물을 꾸린 설치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벽돌집과 지금 살고 있다는 제주도의 식물모형을 뒤섞어 시공이 교차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복제성을 포기한 판화의 미래라고 할까.

김동기의 ‘바위섬’(2013·2017).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판화를 잘게 오려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한지 위에 먹이나 한국화 물감을 입혀 20~30번씩 반복적으로 찍어낸 배남경의 목판화도 단순치 않다. ‘테오의 밀롱가-리아와 제이’(2010) 등은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내 2~3점을 건진, 집요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송곳으로 동판의 홈파기를 줄잡아 6개월씩, 드라이포인트로 세밀하게 도시풍경을 구현한 윤세희의 ‘물방울의 정렬’(2006), ‘기억의 시선’(2011) 등도 있다.

최근의 판화작업은 이처럼 매체실험 중이다. 첨단화한 미디어를 보다 적극적으로 판화에 결합하는 중이다. 사진·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쉽다. 알루미늄이나 점토를 깔기도 하고 스테인레스스틸에 돋을새김을 하기도 한다. 장르 자체를 허무는 시도는 판화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배남경의 ‘테오의 밀롱가-리아와 제이(색)’(2010). 목판평판법으로 만든 작품이다. 한지 위에 먹이나 한국화 물감을 입혀 20~30번씩 반복적으로 찍어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윤세희의 ‘물방울의 정렬’(2006). 드라이포인트로 세밀하게 구현한 도시풍경. 송곳으로 60×60㎝ 크기의 동판 홈파기만 6개월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판화에는 이미지와 종이 사이의 여백이 존재하는데 이 여백은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회화는 이미지를 전시한 벽과 직접 만나는 반면, 판화는 이 여백이 벽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무크지판화’ 2권 1995). 이미 오래전 판화를 표현한 이 인용은 이번 전시명인 ‘층과 사이’를 가장 잘 대변한다. 판화에서 작가의 화폭이 되는 판(종이)이 ‘층’이라면 ‘사이’는 판 위에 새기거나 남은 틈, 다시 말해 판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간격(여백)인 거다.

전시는 판화가 미술기법이 아니란 걸 공들여 설명한다. 결국 판화는 태도의 문제라고. 디지털프린팅에까지 경계를 위협당하는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되짚는 자세라고. ‘판화의 변신은 무죄!’ 60여년에 걸친 판화의 암묵적인 외침이 내내 귓가에 울리는 전시는 내년 4월 29일까지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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