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단독작전' 북한 턱밑까지 올라간 '죽음의 백조'
[경향신문]
미국 공군 B-1B 랜서 폭격기 여러 대가 23일 자정을 전후해 북한 동해의 국제공역에서 시위비행을 펼쳤다. 미군 폭격기가 북한 동해 쪽을 비행한 것은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미국의 독자적 군사행동 가능성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최근 한반도의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미 국방부 데이나 화이트 대변인은 시위비행 직후 성명에서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 전투기·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휴전선(DMZ) 최북쪽 비행”이라고 발표했다. 괌 미군기지에서 출발한 미 공군 B-1B 랜서 수대는 이날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뜬 미 공군 F-15C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의 국제공역을 비행했다.
미 정부는 B-1B와 F-15가 동해 공해상 어느 지점까지 올라갔는지 자세히 공개하지는 않았다. B-1B 등은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외곽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까지 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B-1B의 북한 공역 비행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성명에 맞서 미국이 북한에 보낸 강력한 경고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강경 메시지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B-1B는 정밀유도폭탄과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등 27.2t을 탑재할 수 있다. 스텔스 성능을 갖추고 있어 북한 지도부에는 공포의 대상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극도로 도발적 성격을 갖는 미 전략폭격기의 DMZ 이북 무력시위에 흔쾌히 동의해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폭격기의 지난 18일 무력시위 때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의 호위를 받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 공군기가 뜨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군의 전략폭격기 전개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한국 공군기가 뜨지 않은 것은 우리 영공이나 영해 밖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기까지 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의 이번 조치는 미국이 대북 응징 차원의 단독 군사작전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기념사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미군의 군사적 행동은 반드시 한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예고 없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소집했다. 청와대는 2시간20분 동안 진행된 NSC 회의 개최 사실을 회의가 끝난 뒤 공개했고,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억제책을 논의했다’고 밝혔을 뿐 어떠한 추가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소집한 7차례의 NSC 전체회의들은 8월21일 을지훈련 때를 제외하면 모두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구체적 행동이 있은 후에 열렸다는 점에서 이날 회의는 이례적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북한의 구체적 도발 징후가 없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NSC 전체회의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험악한 설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이 군사분계선 북쪽 공해상에서 단독 무력시위를 한 것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미군 단독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암시라면, 정부는 ‘만약 한국 동의 없는 군사작전을 할 경우 한·미동맹이 크게 상처 입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손제민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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