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베테랑 소방관, 법정싸움 끝 '뇌질환' 공무상 재해 인정받아

신진호 2017. 9. 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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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공단, 이씨가 치료비 명목으로 신청한 요양급여 거부
1·2심, "업무보다 유전적 가능성 있다".. 공상 인정하지 않고 기각
대법원, "화재현장 노출 축적되면 병 악화할 수 있다" 원심 파기
전직 소방관 이모(62)씨. 2003년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 화재사고 등 재난현장에 1만3000여 차례나 출동했던 베테랑 소방관이다.
지난달 9일 대전시 동구 중앙시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현장에서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씨는 2004년 갑자기 쓰러지면서 ‘소뇌위축증’이라는 뇌 질환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지만, 천직으로 생각한 소방관을 그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뇌 질환이 악화하자 퇴직을 결심하고 의료진의 소견서를 첨부해 공무원연금공단에 치료비 명목으로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를 거부했다. 이씨가 앓고 있는 소뇌위축증은 유전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소방관 업무와는 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씨는 결국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29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구룡마을 7B지구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과 2심에서는 이씨의 질환이 유전적 가능성이 있다며 공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이씨의 질환이 유전적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화재현장에서 노출되는 독성물질이나 산소 부족, 열 등이 축적될 경우 발병이 촉진되거나 질환이 악화할 수 있다’는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김지은 교수의 증언 등을 토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지은 교수는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과 ‘재난현장의 유해물질 노출에 따른 소방공무원 해동 프로그램 개발’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연구 결과기 실험실에 머무르지 않고 소방공무원에게 적용되고 사회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7월 4일 경남 창원시 양덕천에서 복개구조물 보수보강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 1명이 구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조대원들이 교대 후 비를 맞으며 컵라면을 먹는 모습. [연합뉴스]
소방청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호주 등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소방관 근무경력이 일정 기간 이상이면 특정 질환을 모두 공상으로 인정해주는 공상 추정법을 적용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위험물질 등에 자주 노출되는 소방관 등에게 중증·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 질환과 업무 관련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기존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무상 질병으로 추정하는 일명 ‘고(故) 김범석 소방관법’(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세종=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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