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권익위 신고 접수된 '김영란법 위반' 78%가 자체 종결

손국희 2017. 9. 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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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신고 373건 중 291건 '자체 종결'
수사의뢰, 이첩 28건 중 21건 '생활 청탁'
판례 없고 법리 적용 어려워..검찰 고심
김영란법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해 9월 28일 오전 부산시 감사관실 전직원이 어깨띠를 착용하고 시청 로비에서 청탁금지법 관련 유인물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중앙포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접수된 사건이 네 건 중 세 건꼴로 ‘자체 종결’ 처리됐다. 권익위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 접수 및 처리현황(2017년 8월 31일 기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권익위는 접수된 사건 373건 중 291건(78.0%)을 ‘증거불충분’ ‘법 시행 이전 행위’ 등을 이유로 수사의뢰를 하거나, 관련기관에 내용을 통보하지 않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신고자 개인의 주장 외엔 입증할 증거가 없거나 청탁금지법을 적용하기 힘든 사건 등은 자체적으로 종결 처리하고 신고자에게 고지했다”고 설명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체 신고 사건 중 권익위가 검찰ㆍ경찰 등 수사기관에 이첩한 것은 16건이다. 그중 실제 기소가 이뤄진 건 1건이었다. 기소유예 1건, 불기소 처분 1건이 포함돼 있고, 나머지 13건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권익위는 28건을 수사기관이 아닌 감독기관 등 관계 기관으로 보냈다. 나머지 38건은 경위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유형별론 금품 등 수수가 195건으로 가장 많았다. 부정 청탁(162건), 외부 강의 신고(16건)가 뒤를 이었다.

권익위가 수사기관 등에 보내 조치를 이끌어낸 사건은 총 28건이었는데, 그중 21건(75%)은 경조사비ㆍ선물과 관련된 '생활 청탁성'이었다. 100만원 이상의 금품 제공이나 사업 특혜와 관련돼 뇌물 성격이 짙은 것은 7건이었다.

━ 부서장에게 여친 소개하고 밥값 낸 공무원, 처벌은?

청탁금지법은 오는 28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직무 연관성이나 대가성을 따져 처벌하는 뇌물죄와 달리 대상자의 신분과 수수 금액 등만 입증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일상 생활에서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각종 민원성 청탁이나 선물 도 법망에 걸릴 수 있다.

지난해 공무원 A씨는 부서장과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불렀다. A씨는 부서장에게 여자친구를 인사시키는 자리라고 판단해 1인당 3만원이 넘는 밥값을 모두 계산했다. A씨와 부서장은 모두 밥값의 2배에 해당하는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자신이 청구한 행정심판 담당 공무원에게 축의금을 냈다가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B씨는 세무서 정보공개를 요청을 거절 당하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후 담당 공무원의 결혼 소식을 듣고 경조사비 5만원을 보냈고 공무원은 소포로 돌려보낸 뒤 권익위에 신고했다. B씨는 과태료 10만원 처분을 받았다.

청탁금지법 이미지. [중앙포토]
비교적 금액이 큰 ‘현금 청탁’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된 C씨는 지구대 조사 과정에서 생리현상을 참지 못해 실수를 하는 등 소란을 일으켰다. 이후 조서작성을 담당한 경찰관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책상에 100만원과 명함을 뒀다. 경찰관은 곧바로 이를 돌려 주고 신고했다. 의정부지법은 C씨에게 과태료 300만원 처분을 내렸다.

━ 수사 관행에도 영향, 검찰은 기소 놓고 '고심 거듭'

청탁금지법은 수사기관의 수사 관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울 혜화경찰서가 수사 중인 ‘경찰관 1800만원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혜화서 사이버수사팀은 올초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 A씨를 수사하다가 은행 계좌에서 1800만원이 대구 지역 경찰관 B씨에게 흘러간 사실을 포착했다. 이후 청탁금지법을 적용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거래 내용이지만 일단 청탁금지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자세한 혐의를 확인 중이다”고 말했다.

유ㆍ무죄를 엄격히 판단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검찰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청탁금지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례가 없는 데다, ‘사회 상규가 허용하는 범위’를 법리적으로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실제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 8월까지 검찰이 수사한 111건 중 중 71건이 24일 현재 미제 사건으로 분류돼있다. 기소는 7건(5명)에 불과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 기소 사례는 수뢰죄 등 더 무거운 혐의가 함께 적용된 것으로 청탁금지법 만 적용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돈봉투 만찬’ 사건 후 지난 5월 18일 사의를 표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혜화서가 지난 4월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서울대 의대 교수의 골프채 퇴직 선물 사건’은 검찰 서 5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명 ‘돈봉투 만찬 사건’에 연루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지검장 측은 “검찰 후배에 대한 상급자의 식사 제공은 청탁금지법의 예외 조항에 해당한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상에 파고든 ‘생활 부패’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청탁금지법의 정착이 필요하다”면서도 “향후 법 개정 등을 통해 명확한 기소, 처벌 기준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ㆍ윤호진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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