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혼녀 절반 취업 뛰어드는데..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

정종훈 입력 2017. 9. 24. 17:19 수정 2017. 9. 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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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4세 여성 1만여명 분석한 보고서 공개돼
이혼·별거·사별 여성, 대부분 '빈곤' 위험 노출
일반 기혼녀보다 취업 전선 뛰어드는 비율 3배
'모자 가구' 월 평균 소득, 전체 가구 절반 안 돼
여성 많은 '사별 가구' 41%는 최저생계비 미달
"여성 근로자 처우 개선, 사별 기초연금 필요"
대구에서 열린 경력단절여성 취업 박람회에서 한 여성이 일자리 공고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이 재취업하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으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중앙포토]
43세 여성 J씨는 올해 18살인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동갑내기 남편과는 성격 차이 등으로 12년 전 이혼에 합의했다. 하지만 매달 30만원의 양육비를 보내기로 한 남편이 이혼하자마자 연락이 두절됐다. 전업주부였던 J씨로선 희귀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를 대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비 마련조차 어렵게 됐다.
어렵게 요양병원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업해 월 90만원을 벌게 됐다. 하지만 딸의 치료비를 대기도 버거웠다. 설상가상 남편을 사칭한 사기단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에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를 신청해 뒤늦게 남편에게 월 100만원씩 받게 됐지만 여전히 넉넉치 않은 형편이다.
이혼·별거·사별 등 결혼 생활에 변화를 겪으면 여성의 취업 형태도 크게 바뀐다. [중앙포토]
이혼 여성이 J씨 같이 빈곤에 허덕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우자와 이혼·별거·사별한 여성의 절반이 노동 시장에 뛰어들지만, 10명 중 약 7명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때문이다. 정규직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1명도 안 된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뒤늦게 취업한 여성 대부분이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주재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움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비취업 여성의 근로 형태 이행과 결정요인분석'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7~2016년 여성가족패널조사에 참여한 20~54세 여성 1만654명을 분석한 결과다.
이달 초 대전에서 열린 취업창업 박람회에 몰린 여성 구직자들. 채용 게시대를 확인하고 부스를 둘러보며 본인에 맞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결혼 생활에 변화를 겪으면서 취업 형태가 크게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혼 여성이 이혼·별거·사별한 뒤 노동시장으로 뛰어드는 비율이 절반 이상(53.8%)에 달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은 기혼 여성(15.7%)에 비하면 생활 전선에 나서는 경우가 3배 이상으로 뛰는 셈이다.
하지만 이혼·별거·사별 여성은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일자리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취업자의 68.6%가 비정규직인 반면 5.8%만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혼 여성이 이혼과 별거, 사별 등을 겪게 되면 적극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서지만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훨씬 많다. [자료 주재선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살 터울의 두 딸이 있는 최모(40·여)씨는 약 10년 전 이혼했다. 도박에 빠진 남편의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이혼 후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국가 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혼의 충격, 생활고 등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5년 전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지역 주민센터에서 5시간 청소를 했다. 이후 조리학원 수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전문성을 키운 뒤 구청 일자리 지원센터를 통해 취업 알선을 받았다. 2015년 한 회사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고 18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면서 기초수급자에서 탈출하게 됐다.

주재선 연구위원은 "남성은 원래부터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경력단절여성(경단녀)가 들어갈 데라곤 사실상 비정규직 밖에 없다"면서 "이혼·별거·사별 후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여성이 새로 취업해도 임금·처우가 낮기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중앙포토]
실제로 혼자가 된 기혼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이 흔하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2015년)에 따르면 어머니와 자녀로 구성된 '모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7만5000원으로 204만2000원인 '부자가구(아버지+자녀)'보다 27.8% 낮았다. 이는 전체 가구 평균 소득(39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한다.

또한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이 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별 가구의 41%가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 했다. 사별 가구의 82.6%가 여성이다. 이 실장은 "소득 하위 70%인 65세 미만 사별 배우자에겐 기초연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매달 연금을 지급하는 노인처럼 사별 가구에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미취학 자녀를 둔 여성은 상대적으로 일하지 않는 비율(비취업률)이 높은 편이다. [자료 주재선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혼·별거·사별 여성을 포함한 자녀를 둔 모든 여성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여성의 85.6%가 일을 하지 않는다. 자녀가 초·중·고교생일 경우 일하는 여성이 늘어 비취업 비율이 81.5%로 줄어들었다. 30대 후반~40대 초반 경단녀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M자형' 경제활동참가율 그래프가 나타나게 된다.
초중고 자녀를 둔 여성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지만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자료 주재선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늦은 나이에 노동시장에 들어가다 보니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두 배가 넘는다. 초·중·고 자녀를 둔 여성의 10.4%가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정규직(4.1%)의 2.5배에 달한다. 미취학·성인 자녀가 있거나 무자녀 여성도 비정규직(8.1%)이 정규직(4%)의 2배에 달한다. 주 연구위원은 "여성 근로자는 남성보다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 떨어지는데다 비정규직도 많은 편이다. 이들을 위한 처우 개선과 이혼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육아휴직 보장 등 근로 조건 개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도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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