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완전자급제, 값비싼 '통신비의 덫' 깨뜨릴까

입력 2017. 9. 24. 15:36 수정 2017. 9. 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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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정책통 블로그

[한겨레]

그래픽_게티이미지뱅크, 장은영

김철수(가명)씨는 산 지 2년 정도 된 휴대폰을 보며 ‘바꿀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집 근처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간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휴대폰이 주로 진열돼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가격을 물어보니 80만원대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대리점 직원이 지원금이나 선택약정할인 중 하나를 받으면 가격이 많이 내려간다고 계산기를 보여준다.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면 지원금이 더 많다. 24개월 할부로 사면 매달 내는 금액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2년 약정을 맺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새 휴대폰을 들고나온다.

한국 이동통신 소비자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2년 약정+이통사에서 단말기 구입+잦은 교체’가 특징인 이런 소비 패턴은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이런 구조는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회사, 이통사 대리점 등에는 이득이 되지만, 소비자는 과도한 통신비 부담을 지게 만든다.

‘고가폰+고가요금제+약정+잦은 교체’ 악순환
이통사 안 거친 휴대폰 구매비율 한국 8%뿐
세계 평균 61%…비정상적 구조가 부담 키워
“완전자급제로 경쟁 통한 통신비 인하” 기대
“단통법 없어져 단말기값·요금 더 오를수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통신비 인하 정책이 아닌, 이통시장의 비정상적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신시장의 ‘판’을 깰 ‘카뱅’(카카오뱅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통사에서 휴대폰을 팔지 못하게 금지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이상한 한국 통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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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휴대폰을 이통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여러 이통사 상품을 취급하는 유통점)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온라인 등에서 휴대폰을 사고 이통사 대리점에서 유심만 끼워 사용하는 ‘자급제’ 비율이 전세계 평균 61%나 된다. 우리나라는 8%다.(2016년 기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자료)

우리나라는 이통사와 일정 기간 약정을 맺고 중도해지하면 위약금을 무는 요금제가 일반적이지만, 약정 없이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 요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선불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45%에 이른다.(이내찬 저 <이동통신요금>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를 보면, 국내 이통 3사의 선불제 가입자 비율은 지난 7월 기준 0.7%다.

고가폰 비중이 높은 것도 한국 시장의 특징이다. 한 이통업계 관계자는 “70만원 이상 고가폰 판매가 약 60%, 40만~70만원 중가폰이 20%, 40만원 이하 저가폰이 2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고가폰 매출 비중은 20~30% 정도다. 단말기 교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 정도 빠르다.

이런 소비 패턴이 정착된 것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0년대 2세대 이동통신(2G)을 도입할 당시, 단말기와 유심이 분리되는 지에스엠(GSM) 방식을 도입한 유럽 등과 달리 단말기와 유심이 결합돼 있는 시디엠에이(CDMA) 방식을 도입했다. 에스케이(SK)텔레콤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에스케이텔레콤 대리점에 가서 휴대폰을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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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술적으로는 자급제가 가능해졌지만, 한번 고착된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 구조가 제조사와 이통사, 유통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별도 유통망 없이 이통사 대리점을 통해 고가폰을 많이 팔 수 있고, 이통사는 단말기 지원금을 미끼로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할 수 있다. 유통점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주는 각종 장려금(리베이트)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내찬 한성대 교수(경제학과)는 “결국 약정 기간 동안 내 돈으로 보조금을 되갚은 구조로, ‘선인하 후인상’, 조금 거칠게는 ‘유인 후 갈취’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자급제는 활발하지만 완전자급제를 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완전자급제 논의가 등장한 것은 이런 한국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완전자급제 공론화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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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완전자급제가 부각되고 있는 배경에는 새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선택약정할인율 25% 인상으로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이번에도 일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인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있다.

여기에 업계 1위인 에스케이텔레콤이 그동안의 ‘강력 반대’ 입장에서 ‘긍정적 검토’ 쪽으로 돌아선 것도 한몫을 했다. ‘통신비 부담은 비싼 휴대폰 탓이 큰데, 비판의 화살은 이통사가 다 맞고 있다’는 불만, 선택약정할인 비용 부담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8일 이통사가 단말기 유통을 못 하게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달 안으로 완전자급제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김성수 민주당 의원도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다.

“가격인하 장담 못 한다” vs “일단 판을 깨야 한다”

완전자급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완전자급제가 경쟁을 활성화시켜 통신비가 내려가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이통사 대리점에서 삼성전자, 엘지전자, 애플 등 3사의 고가 휴대폰을 주로 취급하지만, 단말기 유통이 분리되면 중국산 등 다양한 제조사와 가격대의 제품 판매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통사 역시 단말기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에 요금제와 서비스로 승부하게 될 것으로 본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완전자급제가 돼도 프리미엄폰 가격은 올라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합리적 소비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이통시장 전문가는 “단통법 때도 기대감이 컸지만 큰 효과가 없지 않았느냐”며 “이통사와 제조사가 가격을 내리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자급제가 되면 단통법을 폐지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단말기 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 혜택이 없어지면 단말기 가격과 요금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중소 자영업자인 이통사 유통점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애물 중 하나다. 이통사 유통점은 2만5천여개, 이통사가 유통점에 주는 판매장려금은 한해 3조4천억원에 이른다. 완전자급제가 되면 이통사는 유통점에 판매장려금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20여년 동안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은 계속 늘고 있다”며 “완전자급제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통시장에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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