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 몰렸던 '빨간 우의'.."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토로

입력 2017. 9. 24. 15:16 수정 2017. 9.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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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1주기]
물대포 속 백남기 농민 구하러 들어갔다가
가해자로 몰렸던 '빨간우의' 1년만 인터뷰

[한겨레]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백남기 농민과 함께 있었던 일명 `빨간 우의'가 지난해 11월 19일 낮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5@hani.co.kr

‘빨간 우의’는 ‘백남기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2015년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때 백남기 농민을 구하려다 자신도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 위로 쓰러진 게 전부인 그는 엉뚱하게도 한때 가해자로 지목됐다. ‘백 농민은 물대포가 아니라 이 남성이 때려서 중태에 빠졌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시작된 이 시나리오는 김진태·나경원 등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거듭 주장하며 힘을 얻었고, 급기야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에 부검사유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국가권력의 또 다른 피해자인 그를 22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난해 10월 ‘빨간 우의 가격설’을 부인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이후 1년 만의 언론 인터뷰다.

-나이와 소속을 밝혀달라.

“40대 남성으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으로 현재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당신은 고 백남기 농민을 가장 가까이해서 마주했던 목격자다. 백 농민이 물대포에 맞았을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나는 대열 앞에 있었는데, 먼발치서 물대포는 계속 쓰러져 계신 분을 쏘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 슈팅)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달려가 등으로 물대포를 가로막았지만 굉장히 수압이 세서 나 한사람 정도는 능히 쓰러뜨리기 충분할 정도였다.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짚고 버티면서 제 두 눈으로 직면했던 것은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백남기 농민의 얼굴이었다. 최루액에 뒤범벅돼서 마치 덕지덕지 화장한 듯한 그분 얼굴의 잔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나머지 기억은 뚜렷하지가 않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이후 당신은 엉뚱하게 ‘가해자’로 지목됐다. 일베에서 시작된 시나리오가 백 농민 부검 영장의 부검사유로 등장하기에 이르는 ‘촌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당신 역시 극악무도한 공권력의 또 다른 피해자인 셈이다.

“그렇다. 엉뚱하게 인터넷 사이트에서 오간 편집된 내용과 이것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니까 없었던 수사를 하고, 내가 소환 대상자가 됐고 피의자 신분이 돼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1년 만의 언론 인터뷰다. 소회를 밝혀달라.

“사건이 일어난 게 2015년 11월 14일이고, 백남기 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2016년 9월 25일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사이 촛불과 함께 많은 일이 있었다. 백남기 선생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그 짧은 순간의 연으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기획된 극악한 시나리오의 억지 주인공이 될 뻔하다가 빠져나온 것 같다. 때론 아직도 그 시나리오가 진행 중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 여기고 있다.”

-지난 20일 이낙연 총리는 백남기 농민과 가족, 국민에게 사과했다.

“총리의 사과는 환영할 일이지만, 당장의 불만 끄고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길 바란다.”

-현 정부 역시 백남기 농민이 집회에 참여했던 이유인 ‘쌀값 폭락과 FTA 문제 해결’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농민들의 요구였던 ‘농정의 근본적 개혁’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현 정부가 ‘참여정부 때 FTA를 체결했다’는 그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길 바라며, 그렇지 못하면 또다시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달 초 경찰은 ‘소요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살수차를 (일반)집회 현장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이 불러온 변화 같은데.

“이전 정부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기대감을 갖게 되지만 아직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권자인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헌법적 권리가 대리인인 정부와 공권력에 의해 또다시 유린당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난 우리 자신과 이웃들을 쉽게 마주하고 있다. 2015년 민중총궐기와 2016년 촛불로 이어지면서 제기된 요구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길 바란다.”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러 갈 예정이라고 들었다.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18묘지에 찾아가 백남기 농민을 추모할 예정이다. 노조활동과정에서 산화하신 동지들도 계셔서 자주 찾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백남기 선생님과 그 가족분들, 구속 중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고초를 겪은 많은 분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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