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블랙리스트 몰랐다" 朴측, 법정서 부하직원들에 고성까지..왜?

이혜리 기자 2017. 9. 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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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65) 측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운용을 지시한 혐의와 관련해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전략을 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몰랐다”는 것이다.

앞서 다른 재판부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에게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혐의에 대한 검찰과 박 전 대통령측 공방이 어느 때보다도 격앙된 분위기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는 박 전 대통령측 유영하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온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평소 대통령이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나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좌편향 문제를 개선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이 없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하거나, 국가보조금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적이 있느냐”고 따졌다.

모 전 수석은 “구체적으로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2013년 9월 대수비 때 좌편향 문제를 보고하고 박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유 변호사는 대뜸 모 전 수석에게 “증인이 생각하는 좌파가 무엇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 전 수석은 “이념적인 것만은 아니고 반정부 세력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답했지만 유 변호사는 계속 강한 어조로 “김 전 실장이 좌파 척결을 말하면서 반정부 단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느냐”, “구체적으로 좌파가 어떤 부류냐”고 했다. 모 전 수석이 ‘좌파’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블랙리스트를 운용한 것 아니냐는 취지다. 급기야 유 변호사가 “김 전 실장이 말한 것은 좌파 단체가 아니지 않느냐”며 고함을 질렀고 재판장이 “넘어가라”며 제지했다.

유 변호사의 이같은 신문은 다음날 진행된 김소영 전 청와대 문체비서관 신문에서도 이어졌다. 김 전 비서관은 대수비와 실수비에서 건전애국영화 지원에 대한 논의를 했으며 박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유 변호사는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는지를 증인이 알 수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수석실에서는 부속비서관실로 보고 문건을 올리기 때문에 그 이후 부속비서관실에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석실로부터 온 보고서를 부속비서관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반박했다.

법정 분위기가 격앙된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운용 과정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가 이 부분 혐의와 관련해 핵심적인 대목이기 때문이다. 김 전 실장 사건을 심리한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나 문체부 보고서 내용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지만 지시·지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김 전 실장의 공범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재판부에 청와대에서 새로 발견된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증거로 제출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법조계 의견도 나온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모는 전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해 그 의사의 결합이 이뤄지면 성립한다. 또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세세한 부분을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대기업 총수나 기관장에 대한 형사처벌은 거의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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