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13년, 미아리텍사스 사람들 "우린 막차 승객"

홍상지.하준호 2017. 9. 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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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입구. 20일 밤의 모습이다. 하준호 기자
빛은 이곳을 일부러 비껴가는 듯 했다.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 적힌 표지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어둠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컴컴한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갔다. 중간중간에는 언제든 돈을 뽑을 수 있는 현금인출기가 있었다. 건물 유리창에는 검정색 시트지가 붙어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입구에는 중년 여성들이 의자를 놓고 앉아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데군데 있는 폐업으로 텅빈 업소는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됐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일명 '미아리텍사스'를 지난 1일과 12일, 20일 세 차례에 걸쳐 지켜봤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인 환승주차장에서부터 내부순환로를 따라 종암사거리까지 길게 연결돼 있는 이 곳은 고층 건물들에 둘러 싸인 외딴 '섬' 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창촌, 2004년 9월 23일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시행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의 발원지였던 미아리텍사스는 자연스러운 수순대로 퇴락했다. 이 지역이 속한 '신월곡 1구역'은 2003년부터 꾸준히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진행 속도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재개발으로든, 정책 방향으로든 미아리텍사스는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일하는 업주·성매매 여성·마담(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들)·주방 직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곳에 남았다. 현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에는 약 88개 업소, 350여 명의 업주·여성 종업원들이 있다.

업주 대부분은 건물주에게 100만~200만원씩 월세를 내고 있는 세입자들이다. 1988년 당시 26살이었던 업주 A(55)씨는 처음 하월곡동으로 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A씨는 이곳의 한 업소에서 주방 일을 했다. 그가 기억했던 당시 미아리텍사스의 모습은 이랬다. "이 앞 큰 길(정릉길)이 원래는 다 주차장이었어요. 주말에는 주차장에 관광버스서부터 승용차까지 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고 골목 곳곳은 사람들로 꽉 찼죠. 남는 아가씨들이 없으면 업소가 일단 문을 닫아놓는데 그러면 막 사람들이 '열어달라'고 문을 두들겨요. 쿵쿵쿵…."

그러다 2004년 정부의 '성매매 근절' 의지가 강하게 담긴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곳의 번영은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탔다. 이듬해에는 화재가 발생해 여성 종업원 5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업주들의 여성 종업원 감금 문제 등이 사회 이슈화 됐다. A씨도 이 시기 잠시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3년 전 다시 이곳에 왔다. "밖에서 튀김 장사도 해보고 요양 봉사도 해보고 별 일 다 했는데 먹여살려야 할 가족이 많아 그거 갖곤 생계가 안 되더라고요. 결국 가장 익숙한 이곳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매출이 그때의 3분의 1도 안 될 거예요. 성매매특별법 이후 단속이 잦아지다보니 사람이 뚝 끊겼어요. 이곳은 자연스레 해체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라도 밖에서 놀지, 여기선 안 놀 거 같거든요." 여기가 당장 몇 년 안에 폐쇄된다고 해도 딱히 대안은 없다. 그는 "앞 일을 생각하면 답답하긴 한데, 당장 내일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라 속수무책으로 여기 머물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골목. 인적은 드물다. 하준호 기자
이 곳의 산수는 '30분에 10만원'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주로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젊은이, 일용직 노동자 등이다. 여성 종업원들은 한 달에 26일 정도 일하면 보통 200만~300만원을 번다고 했다. 대부분 나이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이다. 스무 살에 이곳으로 와 지금은 고등학생 자식을 혼자 키운다는 여성 종업원 B(39)씨는 "성을 판다는 이유로 손님들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어디서 보고 왔는지 날이 갈수록 더 과한 걸 요구한다. 특히 특별법 이후에는 요구하는 걸 해주지 않으면 '신고할테니 환불해 달라'고 협박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었는지 물었다. "왜 없겠어요. 지금도 매일 생각해요. 근데 익숙한 게 이 일 뿐이고 다른 일을 배우자니 돈이 문제죠. 전 당장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는 생계 문제를 얘기했다. 정부나 여성단체에서 이들의 탈성매매를 돕기 위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자발적 참여가 많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생계의 문제' 때문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4년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모습. [중앙포토]
1968년 종로3가 성매매집결지가 옮겨가면서 처음 군락을 형성했던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를 둘러싼 과제는 아직 도처에 널려 있다.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의회 앞에선 이 곳의 업주들과 여성 종업원 350여 명 전원이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지원' 내용의 조례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유태봉(71)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자율정화위원장은 "이 곳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보여주기 식'일 뿐인 조례는 필요없다. 집결지가 해체되면 알아서 사라질테니 제발 우리 좀 내버려둬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목소영 성북구의회 의원은 "단 한 명이라도 탈성매매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 조례를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성매매집결지만 해체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문제의식도 커가고 있다. 하월곡동 집결지 수시 단속 및 종합 합동점검 등을 실시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청량리 588은 관계부서의 지원 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폐쇄가 이뤄져 기존에 종사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영등포·동두천 등 집창가로 분산됐을 뿐 근본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지자체와 경찰이 주축이 돼 적극적이고 유연한 관리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명확한 해답은 찾지 못한 채 이 곳의 하루는 또 시작될 것이다. 유태봉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막차 탄 사람들이라고 보면 돼요.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요."

홍상지·하준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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