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인천] 바쁜 현대인을 위한 인천의 막판 10분

홍재민_편집장 2017. 9.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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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홍재민(인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파리 8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가르치는 피에르 바야르 교수의 저서다. 재미있고 심오하다. 9월 23일 인천-수원 경기의 마지막 10분도 비슷하다. 그 짧은 10분 안에 ‘인천의 올 시즌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법’이 담겨있다. 나쁘지 않은데 나쁜 수원의 최근은 별책부록.

23일 토요일 인천은 수원삼성블루윙즈와 만났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34분이 흘러서야 처음 뭔가를 적었다. 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삼성블루윙즈는 전반전 내내 뛰기만 했다. 볼이 아니라 상대와 싸웠다. 상대와 몸을 밀착시키고 태클로 엉켰다. 풍선도 아닐 텐데 볼은 공중으로만 둥실둥실 떠 다녔다.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K리그의 전반전들은 이렇게 낭비되기 일쑤다. 사정은 이해해도 축구의 진공상태가 박수받을 순 없다.

후반전이 되자 축구가 겨우 제 모습을 되찾았다. 수원의 염기훈과 인천의 문선민이 들어가고서야 볼이 ‘있는’ 플레이가 생겨났다. 패스가 생기고, 슛이 생기고, 함성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남은 시간이 10분이 되었을 때 모든 일이 벌어졌다. 산토스의 크로스가 하창래의 팔에 맞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염기훈이 성공해 자신의 60-60클럽 가입을 자축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수원 원정 팬들의 환호는 당연히 컸다.

그때부터 길고 긴 10분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인천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인천의 김용환이 장호익에게 걸려 넘어졌다. 인천을 행운을, 수원을 불운을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수원의 강한 항의 속에서 주심이 VAR 판독을 결정했다. 페널티킥이 프리킥으로 바뀌었다. 인천과 수원이 합심해서 불운을 저주했다. 프리킥을 준비하는 동안 채프만이 경고를 받았고, 이기형 감독이 퇴장당했고, 김대중이 웨슬리와 교체되어 들어갔다. 처음 김용환이 쓰러질 때부터 프리킥으로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5분이나 걸렸다.

일은 여기서 정리되지 않았다. 인천이 끈질기게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수원의 목을 졸랐다. 코너에 몰려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복서처럼 수원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도혁의 슛이 얻은 코너킥에서 인천은 결국 ‘진짜’ 페널티킥을 얻었다. 혼전 중에 볼이 염기훈의 팔에 맞은 덕분이었다. 여기서도 그냥 끝나지 않았다. 한석종의 페널티킥과 리바운드슛을 거친 뒤에야 하창래가 기어이 골을 넣고야 말았다.

인천의 하창래와 수원의 염기훈은 같은 운명에 휘둘렸다. 둘 다 페널티킥을 내줬고 골을 넣었다. 하창래는 울다 웃었고, 염기훈은 웃다 울었다. 한 경기에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할 일이 막판 10분 안에, 그것도 두 명에게 닥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인천 극장’이란 소리가 괜히 생긴 게 아닌가 보다. 이 정도면 낭비되었던 전반 45분마저 애피타이저로 포장할 수도 있겠다. 산토스의 헤딩슛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더라면? 그것까지 바랐다가는 욕심쟁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수원전 막판 10분은 인천의 축약본처럼 보였다. 8월 5일 제주유나이티드전부터 이날 수원전까지 인천은 7경기에서 3승 4무를 기록했다. 광주를 제외한 6개 팀이 모두 인천보다 상위 순위였다. 상주전과 서울전에서 후반 43분 득점으로 승점 3점을 땄고, 이날 수원전에서 후반 45분 득점으로 승점 1점을 쟁취했다. 이런 집중력으로 인천은 7경기에 걸린 21점 중에서 13점을 기록했다. 이기형 감독은 “선수들이 지금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인천의 집중력은 올 시즌도 희망을 품기에 충분하다.

수원전 막판 10분은 어쩌면 인천의 2017시즌을 전부 담았는지도 모른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사람이 나뭇가지에 지탱해 버티다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 겨우 살아나는 식이다. 영화에서는 대개 그런 사람이 주인공일 확률이 높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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