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재 진압 후 묵묵히 장애인 목욕봉사 10년, 라문석 소방관

이민영 입력 2017.09.24. 05:00 수정 2017.09.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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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 씻기는데 한 시간 걸리는 목욕 봉사
가족조차 외면하는 장애인 찾아 돌봐
서울 강북소방서 라문석 화재진압대장
"확 달라지는 표정 보는 게 목욕봉사 매력"
"이제는 내 생활의 일부, 안 하면 허전해"
라문석 화재진압대장은 지난 10년간 묵묵히 장애인 목욕 봉사를 실천해왔다.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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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소방서 라문석(58) 화재진압대장은 지난 30년간 화재 현장에 출동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온 소방관이다.
이런 그가 화재 진압을 한 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지난 10년간 묵묵히 해온 일이 있다. 몸이 불편해 제대로 씻지조차 못하는 장애인의 집을 찾아가 씻겨드리는 목욕 봉사다. 횟수로 600회가 넘고 시간으로 따지면 약 2500시간에 달한다.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최근 '서울시 복지상' 대상을 받았다. 라문석 대장은 "장애인분들이 평소에 표현을 잘 안 하시는데 목욕을 시켜드리고 나면 표정부터가 확 달라지면서 굉장히 밝아진다"며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목욕 봉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목욕 봉사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라문석 대장. 아래는 라 대장과의 일문일답.
라문석 대장이 중증 지체 장애인 백모씨의 집을 찾아가 목욕을 시키고 있는 모습. [사진 본인 제공]

Q : 얼마나 자주, 어디로 목욕 봉사를 가나. A : 1주일에 3일 정도, 네 분을 정기적으로 씻겨드리고 있다. 가서 샤워를 시켜드리는 게 아니라 때까지 밀어드린다. 한 분 씻겨 드리는데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한 분한 분과 오래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 10년간 목욕을 시켜드렸던 분 중에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7년간 인연을 이어온 분도 있다.

Q : 목욕 봉사를 받는 장애인은 도움이 많이 필요한 분들인가. A : 그렇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분들이다. 예를 들어 한 분은 중증 지체 장애이고 전혀 걷지 못한다. 화장실 변기에도 앉지 못하기 때문에 바닥(타일)에서 씻겨드려야 한다. 그런데 자칫 넘어질 수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목욕을 한번 시켜드리려면 부축을 해서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켜드려야한다. 목욕 봉사자가 없으면 씻지 못하는 분들이다. 가족들조차도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라문석 대장이 2011년 서울 강북구 수유 3동에서 발생한 노래방 화재를 진압한 뒤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Q : 목욕 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 서울 중랑소방서에 있을 때 먼저 목욕 봉사를 하던 선배가 계셨다. 지금은 퇴직을 하셨는데 당시에 혼자 봉사를 하기 힘드셔서 파트너를 구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두번 하고 그만두는 걸 반복했다. 사실 나도 그때 선배님과 목욕 봉사를 다니며 너무 힘이 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배변을 못가리는 분들이 많으셔서 고역이었다. 또 24시간 근무하고 격일제로 쉬었을때라 체력적으로도 지쳤다. 그런데 일단 '가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갔다. 또 선배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라 대장은 정말 복을 많이 받을거다'라며 의지를 북돋아 주셨다. 그런 말이 힘이돼 6~7년을 버텼다. 그러다보니 10년을 하게됐다.

Q : 소방관 업무만으로도 체력소모가 상당할것 같다. 체력관리 비결은. A : 테니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쉬는 날마다 테니스장에 가서 동호회 사람들과 한두시간씩 운동을 한다. 15년 정도 쳤다. 그러고나서 돌아오는 길에 목욕 봉사를 간다. 소방관은 스스로 기초 체력을 관리하고 길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재 현장에서 본인이 힘들다.
산불 화재를 진압하고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라문석 소방위. [사진 본인 제공]
Q : 희생과 봉사 라는 사명감이 있는 것 같다. A : 누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성격이다. 목욕봉사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안하면 허전하다. 예전에는 짬 나는 시간에 하는 것이 목욕 봉사였다면 지금은 생활에서 1순위가 됐다. 목욕 봉사를 한 뒤에 다른 것들을 한다. 내가 그분들께 가지 않으면 씻지를 못하신다. 내가 조금 수고로운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이루 말할수 없는 개운함을 느끼게 한다. 장애인분들이 표현을 잘 안하는데 목욕을 시켜드리면 자동적으로 '고맙다, 개운하네, 시원하네' 이런 말들이 나온다. 목욕 시켜드리고 나면 표정부터가 달라지는데 그런 것을 보는 게 목욕 봉사의 묘미다. 이제는 이분들이 내 또다른 가족이 됐다. 몸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내 몫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면 보건소에 알리고, 하체가 너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운동 좀하라고 얘기하고 그런다. 목욕을 시켜드리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알수가 있다.
5일 ‘서울사회복지대회’에서 복지상 대상을 수상하고 있는 라문석 소방위. [사진 본인 제공]

Q : 앞으로도 봉사를 이어갈 예정인지. A :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아내도, 두 아들도 응원해준다. 첫째 아이는 나를 따라 소방관이 됐다. 그동안 봉사를 꾸준히 해와서 하늘이 복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더 많은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