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색] 2시간동안 버스에 묶여다니는 장애학생들..숨막히는 통학환경에 불안한 학부모

안승진 2017. 9. 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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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통학버스, 실무도우미는 1명..불안한 특수학교 학부모들 /지난해 버스안 사망사고도/특수학교 부족해 멀어도 다닐 수 밖에
뇌병변 1급 장애학생의 어머니 서양숙씨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통학버스를 둘러보고 있다.


“휠체어에 1시간 넘게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해요”

서울 마포구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는 뇌병변 1급 장애 아이의 엄마 김미숙(47)씨는 아침마다 통학버스에 함께 오른다. 아이가 언제 경기(驚氣)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상당수 아이는 가만히 있다가도 호흡곤란을 겪을 때가 많다. 김씨의 아이는 호흡곤란 증상이 올 때 별다른 소리도 내지 않아 입술이 파래지는지 확인한 뒤 볼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 한다.

마포구의 특수학교에서 김씨 집이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까지 거리상으론 그리 멀지 않지만 통학버스로 가면 안에서 휠체어에 탄 아이들을 올리고 내려야 하니 통상 1시간 넘게 걸린다. 차가 막히거나 부모가 늦게 나와 시간이 밀리면 도착이 20~30분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씨는 “일반인도 버스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힘든데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나. 호흡곤란이 오기라도 하면 봐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등하교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꽉 찬 통학버스, 실무도우미는 1명…불안한 특수학교 학부모들

2014년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통학방법으로는 도보(30.1%)에 이어 통학버스(20.7%)를 이용하는 학생이 절반 이상으로 많다. 휠체어를 탔거나 도보가 힘든 학생의 경우 보통 통학버스를 이용한다.

특수학교의 통학 버스들은 고속버스를 개조해 만들어졌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창문을 모두 막아 놓은 상태다. 

뇌병변 1급 장애 학생의 학부모 서양숙(50)씨는 “통학버스에 휠체어를 넣는 과정을 보면 마치 테트리스 같다”며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들고 아이들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멀미로 인해 자주 구토를 한다”며 “한번은 차가 막혀 3시 반에 출발해 6시 반에 아이가 집에 왔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하더라”라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의 버스 내부. 창문이 막혀있고 좌석 중간에 휠체어석이 마련 돼 있다. 휠체어는 줄에 묶여 다닥다닥 배치된다.


버스에는 휠체어에 탄 아이를 올리고 내려주는 실무도우미와 버스기사 총 2명이 동행한다. 버스에는 학교와 노선 별로 다르지만 대략 20명의 아이들이 탑승한다. 학부모들은 도우미 한명이 리프트를 올리고 내리며 아이들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1시간 넘게 버스에 있어야하지만 언제 응급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 장애에 따른 의료 매뉴얼도 없기 때문에 걱정이 깊은 상황이다.

실제로 2016년 4월 한 특수학교의 통학버스 안에선 9살 박한음양이 심정지 상태로 38분간 방치돼 숨을 거두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도 실무 도우미가 있었지만 그에 따른 안전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이후 통학버스와 학급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고 버스 내 잠자는 어린이 확인 장치를 마련하는 등 일명 ‘한음이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특수학교가 멀어도 다닐 수 밖에

뇌병변 1급 장애아이의 학부모인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정순경 부대표는 통학버스에 대한 학부모의 불안은 결국 특수학교수가 적은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부대표는 “지금은 특수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하는 상황”이라며 “특수학교가 거주지와 멀어 집에서 순회학습(가정에서 수업을 받는 형태)을 선택하는 학부모도 있기 때문에 멀어도 특수학교에 통학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부대표도 서울 영등포에서 마포까지 아이를 통학시키는데 버스가 오는 새벽 7시까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깨우고 준비시키기란 무리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이용하고 있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자녀의 통학을 위해 1시간 넘게 자가용을 끌고 오는 학부모도 있었다.
 

주차장에 배치된 특수학교 버스들. 이 학교 버스는 1~6호차별로 다른 지역을 이동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지역 특수학교는 30곳에 불과하다. 서울시내 특수교육 대상학생 1만2929명 중 34.7%(4496명)만이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특히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73%를 차지하는 정신지체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서울지역 17개 학교 중 10개 학교가 적정인원을 초과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학버스는 학생들로 꽉 차기 일쑤다.

장애인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한 버스기사는 “버스 내 학생이 많아 자제가 안 된다”며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이다 보니 물건을 던지거나 갑자기 내려달라 하기도 하고 소란스럽다. 나도 몇 번 물건으로 맞았다”고 호소했다.

서울정진학교의 김춘예 교장은 “실무도우미를 버스에 한명이상 두는 것은 예산적인 문제가 크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장은 “정진학교도 적정학생인원을 초과하고 있는데 우선 서울시내 특수학교가 증설돼야 하고 일반학교생활이 가능하다면 학부모가 특수학교보다 일반학교에 진학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울려 지내다보면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며 “특수학교가 초등학생 비중이 적고 고등학생 비중이 큰 역 피라미드 구조로 구성 돼 있는 것도 그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장애인 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를 방문해 학부모 단체 대표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 5년간 전국 특수학교 18개를 새로 짓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서울 25개 자치구 중 특수학교가 없는 양천구, 영등포구, 금천구, 용산구, 중구,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등 8개 구에 특수학교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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