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의 전당 앞 8차선 도로에 이런 의도가?

서상일 입력 2017.09.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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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계획의 근본을 묻는 <빨간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오마이뉴스 글:서상일, 편집:최은경]

<빨간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서현 지음)은 건축의 근본을 물으며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에세이집이다. 건축에 관한 짧은 호흡의 글들은 읽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문장에서 나타나는 개성과 필력에서 풍기는 운치가 있어 글을 읽는 맛이 참 좋다. 게다가 그 속에 담긴 깊이 있는 성찰 덕분에 천천히 내용을 되새기게 된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우리나라 건축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학교, 도서관, 극장, 미술관, 정부청사 등의 건축이 제 역할을 하게끔 지었는지 살펴본다. 즉 학교는 과연 배움을 위한 공간으로 지었는지, 도서관은 과연 지식의 축적과 활용을 실현하게끔 지은 것인지 등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도시와 해외의 도시를 비교하거나 소개하면서 도시에서 건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즉 어떤 건축이 좋은 도시,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특히 눈길을 끄는 내용은 바람직한 도시 재생과 도시 계획의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3부에서는 건축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물으며 건축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건축의 물음은 근본적이다. 학교는 무엇인가, 도서관은 무엇인가 혹은 광장은 무엇인가."(249쪽)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 글들은 짧은 분량이지만 깊이를 담고 있어 울림이 남는다. 이제 찬찬히 그 내용을 짚어 보자.

군사 훈련장과 똑같은 한국의 학교

"연병장, 사열대, 막사. 병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32쪽) 막사는 군인이 주둔하는 건물이고, 사열대는 부대를 이끄는 이가 서는 높은 단이며, 연병장은 훈련을 위해 마련한 운동장이다. 

저자는 "간판만 바꿔 달면 병영은 학교가 된다."(32쪽)고 지적한다. 한국의 학교 건물은 군인이 주둔하는 막사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 교장이 서는 구령대 역시 병영의 사열대와 똑같고, 학교 운동장 또한 연병장과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심지어 병영과 학교가 모두 커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점도 똑같다면서.

▲ 초등학교 건물 병영과 똑같이 막사와 연병장의 구조다.
ⓒ 효형출판
▲ 중대장과 중대원? 학교에서는 여전히 중대장과 중대원의 관계를 버리지 않는다.
ⓒ 효형출판
20대 중반에 입대했을 때, 병영이 그동안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와 똑같은 모습이어서 의아했던 적이 있다. 병영을 보지 못한 여성이라면 한국의 학교가 똑같은 모습이라고 보면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런 학교의 모습이 시작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라고 말한다. 그때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학교에서 "입대하듯 머리를 깎고 군복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사열 받듯 조회를 섰다."(35쪽) 저자는 "학교는 병영과 일란성 쌍둥이"(32쪽)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를 소개한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막사 연병장의 구조는 찾아볼 수 없다. 교실은 파라솔이 펴진 동그란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36쪽)

▲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 한국의 학교와 배치가 다른 이유는 교육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 효형출판
"우리가 훈육과 처벌을 교육의 방법으로 채택했다면, 아니 일제 강점기에 채택된 것을 이어받았다면, 이 캘리포니아의 학교 배치는 작은 사회 체험을 교육 방법으로 선택했음을 증언한다. 이들에게는 차렷 자세로 줄 서 있는 학생, 한 걸음이라도 앞줄에 서려는 사회 구성원이 아니고 자기 원하는 방향으로 갈 길을 찾아가겠다는 사회 구성원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36쪽)

우리는 군사 독재의 잔재와 일제의 잔재를 얼마나 극복했을까? 과연 무엇이 얼마나 바뀐 것일까? 우리의 학교 건축은 과연 교육의 본질에 부합한가? 저자가 사례로 언급한 학교 건물을 보며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과 동떨어져 권위주의 내세우는 공공시설

학교 이외의 공공시설은 어떨까? 도서관은 지식을 축적하고 그것을 시민이 폭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테면, '국립중앙도서관 윤리강령' 14조(이용자 존중)는 이렇게 말한다. "직원은 항상 이용자를 존중하고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모든 행동과 직무 수행시 이용자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도서관 윤리와는 반대로 "전면에 열주와 계단이 근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도서관의 전형이 되었다."(42쪽) 국가 대표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이 그 모습이다. 저자는 이 건물에 대해 "지나간 시대의 목격자"(43쪽)라고 말한다. 

▲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은 시민의 것인가, 권력을 쥔 소수의 것인가?
ⓒ 효형출판
이런 건물에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없고, 입구로 들어서는 행위 자체가 위축된다. 도서관의 지식이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닌 권력을 쥔 제한된 소수의 것이길 원하는 모습이 건축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처럼 신랄하게 비판한다.

"건물로서의 도서관은 아직도 닫혀 있다. … 권위주의적인 관청 건물의 예를 충실히 따랐다. 콘크리트 뼈대의 외부에는 근엄하게 돌을 붙였지만, 내부는 그냥 적당히 칸막이를 쳐서 책의 창고를 만든 것이 우리 도서관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책의 보고인지 창고인지 혹은 가족 공동묘지인지."(44쪽)

국립중앙도서관만이 아니다. 대다수 대학의 도서관들도 권위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마찬가지다. 굳이 길게 뻗은 계단을 만들어서 들어서는 이들이 올려다보게 만든다. 권위의 근엄함 아래에 지적 자유와 창조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서관이 무엇인지,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없다면 완성된 건물은 껍데기만 남는다."(43쪽)

다른 문화시설도 마찬가지다. 국립극장이 그러한 사례다. 저자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근엄한 계단과 열주를 갖춘 극립극장. 극장을 가는 것이 신탁을 받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남긴 유물이다."(84쪽)라고 지적한다. 이 건물은 문화는 일반인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은 접하기 힘든 엄숙하고 배타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 예술 건물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에 들어서야

한편, 저자는 예술의 전당 건물에 대해 "항상 닫혀서 어둠과 침묵만 보여주던 이전의 건물들과 달리 콘서트홀, 오페라하우스의 로비는 항상 열려 있다. 건물은 그만큼 권위와 배타성을 벗어던졌다."(88쪽)며 일단 이전 문화시설보다 갈 길을 제대로 찾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저자는 "남부순환도로가 도시와 단절시킨 공간에 예술을 담는 공간이 들어서게 되었다."(84쪽)며 아쉬워한다. 왕복 8차선 도로가 예술의 전당을 도시에서 완벽하게 단절시켰고, 문화 예술의 영향력이 도시 속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했다.

▲ 예술의 전당 8차선 도로가 예술의 전당을 도시에서 차단한다.
ⓒ 효형출판
▲ 아르코 문예회관 이런 건물이 도시 안에 자리잡으면 주위로 문화예술의 영향력이 퍼져나간다.
ⓒ 효형출판
반면 아르코 문예회관은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이 전혀 없다. 친숙한 벽돌로 지었다. 접근을 힘들게 하는 높은 계단도 없다. 오히려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내민다. 

"건물의 입구에는 공원 쪽으로 손처럼 길게 캐노피(기둥으로 받치거나 매달아놓은 덮개)가 나와 있다. 어서 이 손을 잡고 극장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건축가가 제시한 새로운 문화의 모습이 되었다."(83쪽)

게다가 아르코 문예회관은, 국립극장처럼 산속에 있다거나 예술의 전당처럼 산 아래 도로로 차단되어 있지 않고, 시가지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아르코 문예회관은 주변을 모두 문화의 열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만드는 폭발력이 있었다. 

"이런 건물이 도시 내에 자리 잡으면 주위는 금방 연관된 문화 공간으로 바뀌어나간다. 그것이 문예회관과 대학로의 교훈이다."(88쪽)

문화 예술 시설에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사람들이 생활하는 시가지에 지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사례다. 문화 예술의 꽃은 그렇게 피어날 수 있다.

도시는 어떻게 활성화되는가? 

도시는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 도시의 주요 산업이 바뀌기도 한다. 그에 따라 도시를 바꿔나가야 할 때도 있다. 도시가 중점 산업의 변화에 맞춰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도시 생태계가 변하는 것은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 생태계 전체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땅을 다 엎어버리고 새로운 건물로 재개발?재건축하거나 새로운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지극히 단조로운 방식뿐이다.  

신도시를 만들지 않고 이전 공간을 고쳐 쓰며 다시 도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관련해서 이 책에서는 핀란드의 헬싱키, 스페인 빌바오의 사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사례를 보면서 쇠퇴하는 도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이전 공간을 고쳐 쓰는 과감한 상상력을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 

▲ 헬싱키 미술대학(알토대학) 공장을 허물지 않고 고쳐 썼다. 대학 건물의 굴뚝이 인상적이다.
ⓒ 효형출판
물론,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새로운 택지를 개발해서 도시를 바꿔나가야 할 때도 생긴다. 관련해서 참고할 좋은 사례가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신도시 보방 지구다. 보방 지구는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도 유명하다. 

책에서 소개한 이 지구를 살펴보면, 살기 좋은 신도시를 만드는 4가지 조성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도시 외곽 확장이 아닌 도심 인근 개발. 둘째, 주거와 상업의 용도 혼합. 셋째, 자동차 없는 보행자 중심 거리. 넷째, 거대 자본이 아닌 민간 소자본으로 공동 주택 건설.

프라이부르크 시는 주택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었다. 우선, 프라이부르크 시는 "도시 외곽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도심 인근에 밀도가 높은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218쪽)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도시 기반 시설의 신규 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고, 도시 활성화를 위해 인구를 모은다는 점에서도 좋다.

또한 프라이부르크 시는 "주택이 부족하다고 택지로만 개발하는 것도 옳은 길이 아니었다."(218쪽)고 판단했다. 이른바 근대적 도시 계획은 용지별로 구획을 지어 놓는다. 주거용지, 상업용지, 산업용지로 분리시킨다. 이는 산업 발달에 효과적이지만, 살맛나는 도시는 될 수 없다. 또한 이는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폐해가 있다.

그래서 프라이부르크 시는 주거와 상업의 용도 혼합을 꾀했다. 쉽게 말해, 다세대 주택의 1층에 가게가 들어서는 식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낳는다.

"건물의 가로변 1층에는 상업 공간들이 유치되면서 굳이 입주자들이 차를 타고 외부로 나갈 필요도 없어졌다. 가로에 보행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장사도 잘되고, 장사가 되다 보니 상업 공간들이 모임터 역할도 하게 되었다."(224쪽)

▲ 독일 푸라이부르크 보방 지구 공동 주택 1층에 가게가 들어서 있고,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 넓다.
ⓒ 효형출판
바람직한 신도시 건설의 좋은 참고 사례, 보방 지구

이어 세 번째 원리도 중요하다. 보방 지구의 입주민들은 집 앞이 주차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신 아이들 놀이 공간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시는 건물마다 주차장을 만드는 방식이 아닌 주차 빌딩을 마련해 주차 공간을 사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거리에서 차를 몰아내고 보행자 중심 거리를 만들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낳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집 주위에 자동차가 사라지고 환경이 안정되니 거리가 놀이터가 되었다. 입주자들의 공동체 의식도 높아졌다."(220쪽)

나아가 시는 거대 기업에게 주택 건설을 맡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독 주택을 짓겠다는 개인들에게 토지를 공급하지도 않았다. 대신 민간 소자본을 모았다. "작은 조합을 조성한 입주자들에게 토지를 공급하고 이들이 다양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하였다."(221쪽) 이렇게 한 덕분에 거대 자본이 만드는 획일적인 건물도 아니고 부자들이 큰 땅을 차지하고 짓는 단독주택도 아닌, 다양한 모습의 공동 주택이 옹기종기 들어서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보방 지구는 우리나라의 무식한 신도시 정책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곳은 바람직한 신도시 건설에 좋은 참고가 되며,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어야 시가지가 활성화되며 공동체 의식도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빨간 도시>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로 유명한 서현 건축가가 건축에 관해 쓴 에세이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제대로 된 건축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도시 재생과 도시 계획에 참고해야 할 좋은 사례들을 담고 있어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