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혼 기자가 유모차 끌고 택시 잡아봤더니..

이유주 기자 2017. 9. 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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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도로에선 승차거부 빈번..육아카페 하소연이 '실화로'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쉬운 게 아니네. 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여전히 햇볕은 뜨거운 20일 오전 11시께였다. 기자의 입에서 한숨 섞인 혼잣말과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팔을 세차게 뻗어 흔들었지만 유모차를 끈 기자를 본 체 만 체 지나치는 택시기사들이 야속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택시를 이용하는 부모의 심정이 이렇게 언짢을까.

"유모차 갖고 택시 잘 잡히나요?", "유모차 끌고 택시잡기 힘드네요.", "유모차 갖고 택시 타려는데 기사님이 싫어할까요?", "택시에 유모차 실으려니 눈치 보여요."

육아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부모들의 질문과 넋두리다. 유모차는 아이와 부모의 편리한 외출을 돕는다. 아이의 보행권과 이동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세상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계단이 많은 대중교통은 물론, 비교적 많은 요금을 지불하는 '택시'조차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특히 아이 짐이 많거나 목적지가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과 멀 때는 아기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승하차 시간이 지체된다고 눈치를 주거나 승차거부를 하는 일부 택시기사 때문에 부모의 어깨는 더욱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유모차를 끌고 택시 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거리로 나가보기로 했다. 미혼인 기자가 직접 유모차를 끌고 택시를 잡으러 베이비뉴스 사무실 근처인 서울 서초동 효령로로 나선 것. 뱅뱅사거리와 남부터미널 사거리를 잇는 효령로로 교통 흐름이 적지 않고, 택시도 제법 많은 구간이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효령로에서 기자가 유모차를 끌고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택시가 지나쳐가고 있다. 이중삼 기자 ⓒ베이비뉴스

 

◇ 유모차 승객 보고도 '쌩쌩' 지나치는 택시들

 

아기 엄마처럼 왼쪽 어깨에는 아기 매트, 인형 등을 넣은 짐 가방을 메고, 오른쪽 어깨에는 각종 소지품을 넣은 핸드백을 멨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아기 몸만 한 인형을 실은 디럭스형 유모차를 밀었다.

 

이 유모차는 접어서 택시 트렁크에 충분히 실을 수 있는 크기다. 덩치 큰 유모차 때문일까, 유모차를 끌고 택시를 잡으려 해서 일까.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돼 잠시 민망했다. 하지만 곧 개의치 않고 '빈차' 표시등이 켜진 택시로 손을 흔들어봤다. 예상외로 첫 번째 택시가 순순히 정차했다. 두 번째 빈 택시도 기자 앞에 친절히 섰다.

 

두 번 연달아 택시잡기에 성공했다. 시작이 좋았다.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기분 좋은 상태로 빈차 등이 켜진 세 번째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택시의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세 번째 택시는 기자 앞을 '쌩' 하고 지나쳐 갔다.

 

자정께 강남대로에서나 승차거부를 당해봤지, 한낮 택시가 잘 서는 효령로에서 승차거부를 당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실화(?)구나!' 순간 육아 카페에서 본 엄마들의 하소연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남 일이 아니게 됐다. 씁쓸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빈차 등이 켜진 네 번째 택시를 향해 팔을 세차게 뻗었다. 분명 이 택시기사는 기자를 봤다. 하지만 차를 세우려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기자를 냉정히 지나쳤다.

 

슬슬 택시를 향해 손 흔들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세워야 한다. 다섯 번째 빈 택시를 발견하고 기사님 눈을 쳐다봤다. 손도 흔들었다. 역시나 손이 무색하게 택시는 기자를 보지도 않은 것처럼 떠나갔다. 괜히 머쓱해 지나가는 시민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음 택시를 기다리는 5분여 동안 애꿎은 머리카락만 연신 잡아당겼다.

 

많이 움츠려들었다. 다시 빈 택시를 봐도 팔을 자신 있게 뻗지 못했다. 여섯 번째 택시를 향해 소심하게 팔을 반만 뻗었다. 그런데 이 택시는 온전히 기자 앞에 서줬다. 이제 택시가 손님 앞에 멈추는 당연한 상황이 '섰다'가 아니라 '서줬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고마웠다.

 

택시잡기를 시도한 지 30여 분이 흘렀을까. 짐을 들고 유모차도 잡고 있는 상태에서 택시를 잡으려니 콧등이 제법 축축해졌다. 힘에 부쳐 마지막으로 택시를 한 대만 더 잡아보기로 했다.

 

일곱 번째 빈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비상등을 켜고 속력을 줄이더니 기자를 지나쳐 5m 앞에 멈췄다. 반가운 마음으로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택시는 이내 곧 기자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떠나가는 택시를 쳐다보고 있으니 허탈함과 부모들의 고충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 택시 승차장에서는 승차거부 없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도대체 유모차를 끄는 부모는 어디서 택시를 잡아야 할까. 택시가 아예 정차하고 있는 택시 승차장에 가면 수월할까. 근처 남부터미널 앞 택시 승차장으로 이동해보기로 했다. 

 

지난 20일 오전 기자가 서울 서초구 효령에서 남부터미널로 유모차를 밀며 걸어 가고 있다. 이중삼 기자 ⓒ베이비뉴스

 

하지만 남부터미널을 향해 10~15분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과정부터 만만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노면에 유모차가 흔들리는 것은 기본. 경사 때문에 유모차가 자꾸 미끄러져 팔목에 무리도 많이 갔다. 높은 턱을 피해 유모차 방향을 틀고 돌아가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걷기 직전의 8~9kg 아기를 실제로 태웠을 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하다.

 

여차여차 택시 승차장에 도착한 뒤,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고 맨 앞에 서 있는 택시로 갔다. 기사에게 "유모차를 태워도 되냐"고 물었다. 기사는 망설임 없이 "예"라고 답했다. 총 10대의 택시기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모두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어느 기사 한 명도 트렁크를 열어준다거나 도와주겠다는 제스처가 없었다는 것. 도로 위 승차거부가 왕왕 있는 현실에선 유모차를 태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 "교통약자에게 맞는 서비스 제공해야"

 

효령로에서 겪었던 승차거부. 택시 승차장에서는 왜 한 건도 없었을까. 순서대로 빨리 손님을 태워 뒤로 줄 선 택시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상도덕, 그리고 승차거부 신고가 어렵지 않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1월 29일부터 택시가 승차거부를 한 사실이 적발되면 최고 사업면허가 취소되는 강력한 제도(삼진아웃제)가 실시됐다. 1차 위반의 경우 과태료 20만 원과 경고, 2차 위반은 과태료 40만 원과 택시운전 자격정지 30일, 3차 위반은 과태료 60만 원과 택시운전자격 취소 처분에 내려진다.

 

물론 ▲승객이 만취해 있을 때 ▲도로여건상 차선변경이 어려운 경우 등 택시의 정당한 승차거부도 있다. 하지만 유모차를 트렁크에 싣기 번거로워서, 이로 인한 탑승시간 지체 등은 승차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국토교통부 교통안전복지과 관계자는 "유모차 승차거부는 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승차거부를 신고할 때는 차량번호와 승차거부를 당했던 상황, 장소, 시간 등이 필요한데,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는 차량번호를 재빨리 외우거나 메모해 신고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반면, 택시가 정차해 있는 승차장에서는 정확한 차량번호를 메모하기 쉽고, 이를 목격한 목격자나 증인이 많다. 또 녹화나 녹취도 가능해 신고처리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다시 남부터미널 택시 승차장에서 유모차를 끌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승차를 거부했던 택시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울퉁불퉁한 보도에 유모차는 덜컹덜컹 거리고 기자는 터덜터덜 걸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유모차를 이용하는 부모들은 외출 전 이동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또 택시를 잡을 땐 얼마나 마음이 거북할까.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택시는 승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중교통'이다. 따라서 택시 운전자는 '업종에 맞는 업무수행을 한다'는 서비스 정신을 가져야 한다"며 "유모차를 끄는 부모뿐만 아니라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매뉴얼과 교육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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