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 입간판] 길목마다 차이는데..단속은 '시늉만'

2017. 9. 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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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대학원생 이준호(28) 씨는 서울 중구 무교동에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왼쪽 발을 다쳐 목발을 짚은 그가 가야하는 길목마다 수십개의 불법 입간판이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23일 서울 25곳 자치구의 '2015~2017년 8월기준 입간판 단속현황'을 살펴보니 단속 요원들이 불법으로 입간판을 세운 업자에게 과태료를 물린 건수는 모두 887건으로 나타났다.

불법 입간판 단속은 계속 늘었는데도, 과태료 부과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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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입간판 작년 단속 2만9000건…과태료 부과 295건
-단속 건은 매년 느는데 과태료 부과 건은 매년 감소세
-과태료 매겨도 안 찾아가면 그만…“차라리 다시 산다”
-서울시 “분기별로 자치구 합동단속 시행…문제 개선할 것”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지난 20일 오후 대학원생 이준호(28) 씨는 서울 중구 무교동에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왼쪽 발을 다쳐 목발을 짚은 그가 가야하는 길목마다 수십개의 불법 입간판이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더욱 좁은 골목길로 사람들은 물론 오토바이, 자동차도 뒤엉켜 지나가는 중이었다. 이 씨는 “입간판 틈을 비집고 들어가다 몇 번이나 비틀거렸다”며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서울 시내 도로에서 보행길을 가로막는 불법 압간판에 대한 단속 실적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고에만 그칠 뿐, 과태료 부과로는 이어지지 않아 이를 근절하는 데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 골목길에 입간판이 곳곳 들어서 보행길을 막고 있다. [사진1]

23일 서울 25곳 자치구의 ‘2015~2017년 8월기준 입간판 단속현황’을 살펴보니 단속 요원들이 불법으로 입간판을 세운 업자에게 과태료를 물린 건수는 모두 887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기간 전체 단속 건수(7만9412건)의 1.11% 수준이다.

불법 입간판 단속은 계속 늘었는데도, 과태료 부과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

단속 건수는 2015년 2만7062건, 2016년 2만9191건으로 늘었고, 올들어선 8월까지 2만3159건으로 8개월만에 이미 지난해의 80%에 이르렀다. 각 해의 한 달 평균으로 보면 2255건, 2432건, 2894건 등으로 전년대비 각각 8%, 18%씩 껑충뛰었다.

반면 이 기간 과태료 부과 건은 2015년 426건, 지난해 295건, 올해 166건 등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특히 올들어 단속 대비 과태료 부과 비율은 0.71%에 불과, 3년 평균치를 크게 밑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길거리에 흔히 나와있는 입간판은 설치부터 불법이다. 시행령을 보면 입간판은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지방자치단체 허가에 따라 설치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 도로 위에 입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이로 인해 도로 폭은 자동차 한 대, 사람 한 두명이 같이 지나가기에도 버거워진 상황이다. [사진2]

단속을 전담하는 각 자치구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태료를 매기기엔 수가 너무 많고, 업자들의 반발도 심해 경고 위주로만 대응해왔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자치구는 통상 경고를 한 뒤 다시 적발되면 입간판을 몰수하고 이를 돌려줄 때 과태료를 물리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내기 싫은 업자들이 입간판을 아예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70만~80만원을 넘나드는 과태료를 내고 찾아오기보단 10만~20만원을 주고 새로 사는 게 업자에게도 훨씬 이익이다.

중구 필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모(51ㆍ여) 씨는 “도로 찾아가기에는 돈과 시간이 아까운 게 사실”이라며 “몰수 당하는 일을 대비하기 위해 같은 입간판 5~6개를 미리 사서 숨겨두는 가게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서울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장에서 단속과 동시에 과태료를 매기는 방안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치구는 1~2명이 단속부터 민원 처리ㆍ자료 정리 등을 모두 해야하는 상황이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6월 이러한 인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치구 합동 단속반’을 만든 상황”이라며 “이외에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도시 미관과 보행환경을 개선해가겠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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