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영자의 말없는 질문

2017. 9. 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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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절망 빠진 성매매 여성 통해
국가의 존재이유 질문 던져
<바보선언> 도 국회에 항의

전쟁 뒤 태어난 신세대 성장
기성세대와 다른 감수성으로
70~80년대 청년문화 꽃피워
전통의 품격·가치도 재발견

[한겨레]

1975년에 나온 <영자의 전성시대>(감독 김호선)는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이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즘 영화였다. 감독은 영자가 말없이 중앙청 앞 대로를 걷는 장면을 통해 정부와 나라가 영자에게 대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이영미의 광화문 시대

⑦ 청년문화의 등장

세종로가 다시 ‘적’들에게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부추겨지고 있던 1970년 전후 대중문화를 보면 우리는 영영 6·25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0년대 초·중반에는 6·25 소재 전쟁영화가 자리를 잡으며 10년 전 전쟁을 어제 겪은 일처럼 되살려내더니 1960년대 후반에는 간첩 소재 영화들이 현재적인 공포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미술시간에 ‘상기하자 6·25’라고 쓴 포스터를 그렸고, 벽에는 ‘옆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같은 표어가 붙어 있었다.

휴전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1970년 무렵부터는 6·25가 회고담 방식으로 재창조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태평양전쟁에서 6·25로 이어지는 십수년의 전쟁으로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1960년대에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기를 쓰고 살아낸 40~50대 중년들이 이제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어진 것이다. 1970년 티브이(TV) 일일극의 시대를 연 <아씨>(임희재 극본, 고성원 연출, TBC)와 1972년 이를 벤치마킹한 <여로>(이남섭 극본·연출, KBS)는 이런 사회심리와 맞물려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러고 있던 시절에 식민지도 전쟁도 경험하지 않은 ‘새 나라의 어린이’들이 자라나 청소년이 되었고, 기성세대와 다른 감수성으로 세상을 받아들였다. 험한 세상을 헤쳐온 어른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기성세대는 어쩔 수 없이 인간다움과 진정성, 자유와 사랑의 가치를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로 치부했다. 기성세대의 세상에서 아직 때 묻지 않은 청년들이야말로 인간다움의 가치와 순수함, 내면적 진정성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년문화는 이를 드러낸 대중문화 현상이었다.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와 소설에서 광화문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하길종, 이장호, 김호선, 이원세, 홍파, 변인식 등이 결성한 동인모임 ‘영상시대’는 영화 분야의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모임이다. 이 시대의 영화를 꼼꼼히 본 사람이라면 살짝 스쳐 지나가는 광화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감독, 1975) 후반부의 짧은 한 장면이다.

여의도 광장의 막춤, 이장호의 명장면

1984년의 <바보선언>(감독 이장호)도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문제작으로 꼽힌다. 밑바닥 인생 똥칠(김명곤 분)과 육덕(이희성 분)이 여의도광장에서 웃통을 벗고 막춤을 추는 장면은 국회에 대한 무언의 항의로 읽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주지하다시피 조선작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돈벌이를 위해 이농하여 식모살이, 봉제노동자, 버스 차장을 거쳐 성매매 여성이 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의 감각으로는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싶은 서사지만, 이 시대만 하더라도 꽤나 새롭고 ‘핫한’ 이야기였다. ‘무작정 상경’의 이촌향도 현상은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농민 서사는 열심히 돈 벌어서 귀향하는 희망, 혹은 허파에 바람 든 계집애들이 도시에서 몸 망친다는 우려 사이를 오가던 때였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를 넘어서 새롭게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이농민들에게 서울이 결코 파라다이스가 아니며 이들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것 역시 구조적인 문제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런 성과를 빠르게 받아안아 전형적인 서사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구도 이 영화를 이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영화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식모살이하던 영자(염복순 분)는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비참하게 쫓겨나고, 호스티스 같은 직업을 거부하면서 운전기술을 배워 떳떳이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버스 차장이 된다. 그러나 만원버스에서 떨어져 한 팔을 잃고 결국 가장 값싼 화대의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한다. 식모살이 시절의 연인이었던 창수(송재호 분)는 이런 영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나, 창수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창수를 위하는 길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영자는 고민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영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광화문 해치상 앞의 대로를 무겁게 걷는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분명 감독이 의도를 가지고 한 공간 선택이다. 이 영화에서는 서울의 이런 중심가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영자가 거주하는 집창촌이란 청량리나 양동 부근에 있을 터인데, 영자가 뜬금없이 왜 광화문 앞을 걷는단 말인가. 한쪽 팔을 잃은 성매매 여성과, 중앙청 앞에 버티고 선 광화문의 대비에서,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도대체 이렇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영자에게 정부·나라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상시대 동인들의 영화들을 보면 이런 발상의 장면이 계속 발견된다. 김호선 감독은 1989년 <서울무지개>에서도 똑같은 발상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스타를 꿈꾸며 돈 가진 자에게 몸을 허락하면서 반짝 스타가 된 유라(강리나 분)는 ‘어른’에게 낙점된다. 안가에서 호화스럽게 살지만 외부 활동이 금지된 상태인 유라는 결국 도주하고, ‘어른’의 하수인들은 유라를 폭행하고 윤간하여 정신병원에 처박는다. 유라를 찾아 헤매는 애인 준(김주승 분)의 절망스러운 얼굴 뒤로, 감독은 이태원 캐피탈호텔을 배치한다. 한밤중 높다란 건물 꼭대기에서 ‘HOTEL CAPITAL’이란 글자만 위압적으로 빛난다. 하필이면 캐피탈이라니, 광화문 앞을 걸어가는 영자 장면과 똑같은 발상이다.

같은 동인인 이장호 감독은 더 적극적이다. 1974년 데뷔작 <별들의 고향>의 히트로 영화계를 놀라게 한 그는 대마초 사건을 겪으며 사회 현실에 눈뜨게 되고,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이란 새로운 경향으로 영화계에 복귀한다. 1980년대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이고 문제적인 영화인 <바보선언>(1984)의 엔딩은 밑바닥 인생 똥칠(김명곤 분)과 육덕(이희성 분)이 여의도광장에서 웃통을 벗고 발광하는 듯 막춤을 추는 장면인데, 감독은 그들 뒤로 거대한 국회의사당을 배치해놓았다. 어설프지만 격하게 팔다리를 휘두르는 그들이 마치 국회에 대고 격렬한 항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백뮤직으로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가 엄숙하게 흘러나온다. 국민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뭐 하는 거냐는 질타와, 이제 국민들이 결단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메시지나 전달 방식이나 모두 생경하긴 하지만 작품 전체가 비사실주의적인 블랙코미디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이장호다운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내복 차림으로 숭례문에 거수경례

그런데 이 세대의 영화 속에 광화문보다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고궁 등 조선시대 고건축물이다.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 1975)에서 병태의 친구 영철(하재영 분)은 술값이 없어 옷을 잡히고는 내복 바람으로 내쫓긴다. 통금이 임박한 텅 빈 거리를 내복 차림의 영철이 걸어가는데, 그 뒤로 거대한 숭례문이 보인다. 영철은 숭례문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댄서의 순정’을 휘파람으로 불며 지나간다. 이장호 감독의 조연출로 시작한 배창호 감독 역시 조선조의 사대문과 궁궐을 즐겨 배치했다. <고래사냥>(1984)의 왕초(안성기 분)는 동대문(당시에는 ‘흥인지문’보다 이 명칭이 더 익숙했다)이나 ‘창경원’(동물원이 있던)에서 노숙을 하며 사는 거지다. 우연히 만난 대학생 병태(김수철 분)와 의기투합하는 장소도 바로 그 동물원이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울부짖는 앞에서 병태는 성매매 여성(이미숙 분)을 구하겠노라 맹세하고, 명정전(明政殿) 앞에서 왕초는 병태를 부하로 임명한다. 숭례문은 배창호의 다른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2>에도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창경궁·숭례문과 노숙자 폼의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이 조합되는 이런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곳은, 날로 빡빡해지는 현대적 도시 서울에서 그나마 숨 쉴 틈새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그곳은 우리의 뿌리이며, 식민지로 전락하기 이전 시대 품위 있던 왕조의 흔적이다. 식민지와 전쟁 한가운데를 살아온 부모·조부모 세대는 품위를 되찾기는커녕 결정적으로 잃어버렸고 물질적 성장에만 매달리는 속물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철·병태·왕초처럼 기성세대의 룰에서 벗어난 청년들이야말로 기성세대가 뒷전으로 밀어놓은 그 가치와 품위,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거기에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다. 1970년대 초에 대학가에서 한글이름 짓기, 탈춤·마당극운동, 판소리 감상회, 단소 배우기 같은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 일어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조선이란 망한 나라이며 왕조는 낡은 시대의 것이다. 정색을 하며 그 궁궐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은 그 궁궐의 낡은 권위에 야유를 보내면서도, 그렇게 버려지고 퇴락하면서도 한 자락 품위를 잃지 않은 궁궐에 연민과 존경의 태도를 보낸다. 그것이 그들의 소통 방식인 것이다.

이들 영화에 나타나는 이런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의미화한 것은 이들 영화의 원작자이자 이들과 선후배 사이로 엮여 친하게 지낸 최인호의 소설이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도시의 사냥꾼>(1977)의 두 주인공인 현국과 승혜가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창경원’이다. 현국은 꽤 오랫동안 새벽마다 창경원을 찾았다.(<고래사냥>의 창경원 장면도 새벽·아침으로 설정되어 있다.) 갇힌 동물의 울부짖음 때문이다. 대낮에는 관람객의 소음으로 들리지 않지만 한밤중부터는 그 울부짖음이 들린다는 것이다. 현국은 조선의 왕자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망해버린 왕조의 후손이자 윤리적이지도 떳떳하지도 못한 혼외자란 설정은 동물원으로 전락해버린 망한 왕조의 궁궐과 다를 바 없다. 청년문화 세대는 선조들에게 이런 모순덩어리와 치욕으로 뒤범벅된 품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이는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은 곳에 갇혀 있는 것이다.

1968년 목재 부분까지 콘크리트로 복원된 짝퉁 광화문은 1970년대부터 등장한 청년문화와는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이 시기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광화문은 작품 속 배경으로도 잘 등장하지 않았다.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현판식 모습. 정부기록사진집

청년들의 ‘잃어버린 말’

영화 속 주인공들이 쇠락해가는 고궁과 숭례문에 대한 연민과 일말의 존경, 야유와 부정이 뒤범벅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런 의미로 읽어낼 수 있다. 그나마 이것들에 대해 공감과 애정을 보이는 것도 마음이 순수한 병태나 현국 같은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동물의 울음소리에 함께 가슴 아파하고, 퇴색해가는 단청의 건물에 몸을 기대며 잠을 청한다. 먹고살기 바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의 울부짖음에 아랑곳없이 동물을 보고 즐기며, 문화재라 지정해놓고는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작곡 가수 김민기도 이렇게 노래했다.

1. 간밤에 바람은 말을 하였고/ 고궁의 탑도 말을 하였고/ 할미의 패인 눈도 말을 했으나/ (후렴)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잊어 듣지 못했네

3. 잘리운 가로수는 말을 하였고/ 무너진 돌담도 말을 하였고/ 빼앗긴 시인도 말을 했으나/ (후렴)

김민기 ‘잃어버린 말’ 1·3절(김민기 작사·작곡, 1972. 음반으로 1993년에 발표)

이미 탁해진 이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고 노래한다. 그래서일까.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대개의 작가들은 창경궁과 숭례문을 그리 자주 등장시키면서도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말 없는 말을 들으라는 듯 슬쩍 배경으로만 등장시키고 지나갈 뿐이다.

하물며 화려하게 새로 채색된 콘크리트 광화문에 무슨 말을 덧붙일 것인가. 일제에 유린당했고 해체되어 밀려났고, 그나마 전쟁으로 불탔고, 이제는 짝퉁처럼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조선총독부로 쓰이던 건물 앞에 떡하니 세워진 그 광화문, 그것이야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가장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물 아니겠는가. 가난한 농민의 딸로, 가정부, 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양을 거쳐 장애인이자 성매매 여성이 된 영자가 광화문 앞을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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