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이후 100년..여전히 주인없는 무덤들

구유나 기자 입력 2017. 9.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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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고학의 출발에는 시대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강점기 문화재 발굴은 '도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첫 조사대상인 경북 경주시 금관총은 1921년 일제가 단 4일 만에 발굴 조사를 끝내 무덤 주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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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부실조사 고분 재발굴 사업 활기..25일 익산쌍릉 대왕릉 정밀발굴 착수
전북 익산시는 석암동 익산쌍릉(사적 제87호) 대왕릉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오는 25일부터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사진 익산쌍릉의 모습. /사진제공=익산시


국내 고고학의 출발에는 시대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강점기 문화재 발굴은 '도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일제강점기 학자들이 파헤친 그대로 남아있다. 소중한 유물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역사도, 주인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텅 빈 고분이 자리해있다.

일제는 1910년 국권침탈 전후로 기초적인 조선 고적조사를 실시했다. 1916년 '고적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며칠 만에 유물을 도굴하듯 빼내어 가는 약식 조사에 불과했다. 발굴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또 일부 보고서에는 식민사관을 강화하기 위한 주관적인 해석이 포함돼 있어 사료로서 100%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점으로 정부와 학계가 힘을 합쳐 일제가 아닌 우리의 손으로 재조사에 나섰다. 전북 익산시는 오는 25일부터 석왕동에 위치한 익산쌍릉(사적 제87호) 대왕릉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한다. 익산쌍릉 대왕릉은 백제 30대 무왕(武王)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해 1월 일제시대 출토된 치아를 정밀 분석한 결과 여성의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선화공주의 묘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1917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에 의해 약식 발굴이 이뤄진지 올해로 딱 100년이다.

이번 발굴을 진행하는 최완규 원광대 문화인류학부 교수(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는 "당시 일본 사람들이 너무나 저급한, 도굴 수준의 발굴을 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물이나 유적은 중요한 1차적 사료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조사해야하는데 일제가 유물을 들어내는 수준의 발굴을 하면서 많은 자료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1926년 한국을 찾은 고고학자이자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경북 경주시 서봉총에서 유물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도 일제강점기 부실조사 고분 재발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첫 조사대상인 경북 경주시 금관총은 1921년 일제가 단 4일 만에 발굴 조사를 끝내 무덤 주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금관이 발견돼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하지만 일제 약식조사 당시 출토됐던 칼을 금속보존처리한 결과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떠올랐고, 재조사 과정에서 '이사지왕도(刀)'가 새겨진 칼이 추가로 발견됐다. 여러 정황을 고려한 결과 '이사지왕'은 왕이 아닌 남성 귀족이었다는 학설에 무게가 실렸다. 이곳은 2015년에 재조사가 완료된 상태다.

다음달 말에는 경북 경주시 서봉총 발굴조사가 완료된다. 큰 무덤과 작은 무덤이 붙어있는 연접분이다. 일제는 1926년 한국을 찾은 고고학자이자 스웨덴 황태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를 발굴 작업에 참여시켰다. '서봉총'이라는 이름은 당시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현재도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아 피장자를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윤재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관변(일제) 학자들이 상당수 유물을 외부로 반출했고 지금까지도 소재처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묘의 주인을 밝히기 위한 증거 자료가 부족해 재조사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구유나 기자 yu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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