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 보이콧 직면한 중국, 대북 영향력 실체 벗는다

정용환 2017. 9.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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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서명한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
김정은 정권 숨통 죌 원유공급 차단책
"중국은행 한두곳 직격탄 맞을 수 있어"
"북한이냐, 미국이냐" 딜레마 빠진 중국
중국의 대북 실제 영향력 드러날지 주목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업·금융기관 제재) 실행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세컨더리 보이콧의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바로 발효됐다. 북한의 대외 거래에서 90%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타깃이다. 미 의회는 진작부터 세컨더리 보이콧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해 놓고 행정부의 이행을 요구했다. 제3국이 중국을 의미하는 이상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신중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해왔지만 북한 핵·미사일 개발이 빨라지면서 대북 압박도 급피치를 올리는 양상이다. 실제로 중국의 금융기관 한두 곳이 제재를 받게 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일선 은행에 북한과의 신규 거래 중단을 통보했다. ‘미국이냐, 북한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번 조치 앞에서 중국은 직접 충돌은 피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미 하원에 의해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 은행으로 지정된 중국 1위 국유 상업은행인 공상은행. [연합뉴스=로이터]
①“불법 거래 없어도 스트레스 받아”=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만지작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가자 관변 매체들을 동원해 경제 보복을 공언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중국의 도전에는 한계가 적잖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가 달러 결제를 축으로 하는 금융시스템으로 작동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반발은 엄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37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조 속에서 미국 은행을 통해 무역 대금을 결제해야 하는 중국 기업·금융기관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가 차단될 경우 감내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다시 미국의 반격을 불러 사태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꺼내 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중견 간부는 “이미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 서방의 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거래가 차단돼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지 않나”라며 “세컨더리 보이콧 상황이 장기화되면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의 은행들이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타격을 입으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은행은 국유은행으로 중국 자산의 90%를 보유하고 있어 은행권이 흔들리면 중국 경제는 추가 파장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이 지린성 훈춘 취안허와 북한 원정리를 잇기 위해 건설 중인 신 두만강대교 전경. 중국이 부두 사용권을 확보한 나진항으로 통하는 유일한 국경교량이다.
물론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이후 북한이 중국인의 이름을 빌려 자산을 감추는 등 이중 삼중의 회피 수단을 마련해 대비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거래가 수반하는 잠재적 위험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중국 기업·금융기관을 옥죄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미국의 경제안보 컨설팅 기업인 파이낸셜 인테그리티 네트워크(FIN)이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기업·금융기관은 내부 감찰기구와 고객에게 끊임없이 북한과 거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고위험 고수익을 보장하는 북한과의 거래이지만 이제는 발각 위험이 너무 커져 중국 기업의 손익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②中 권력투쟁 시기 전격 단행=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행된 시점도 절묘하다. 다음달 18일 중국 권력의 향배가 결정나는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정가는 치열한 권력 암투가 진행 중이다. 시진핑 주석은 일인 지배체제를 굳히느냐 마느냐를 놓고 일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의 대립각을 키워 불똥이 중국 안으로 튀어선 안 되는 상황이란 얘기다.

2012년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8차 중국 공산당 대회. 시진핑이 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당 대회는 5년마다 열린다. 19차 당 대회는 오는 10월 18일 개최된다. [중앙포토·AFP=연합뉴스]
특히 몇 달간 뜸들여온 이 조치가 전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금융기관의 한두 곳의 대북 불법 거래에 대한 물증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적잖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중 관계에 밝은 전직 대사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정책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미국의 힘 자랑에 대한 부정 여론만 불러온다”며 “시행에 들어가기 전 불법 거래를 입증할 수 있는 기초 조사를 상당히 해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소식통은 “이미 제재를 받고 있는 지방의 작은 은행(단둥은행)정도가 아니라 10대 상업은행 가운데 하나는 이번 행정 명령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③송유관 차단 딜레마 빠진 중국= 중국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미국의 대북 압박에 일정 정도 성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해석이다. 시진핑 주석이 대북제재 유엔 결의 2375호의 성실한 이행을 약속한 뒤 북중 접경의 밀무역에 대한 감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제3국 기업·금융기관 제재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노리고 있는 대북 압박의 정점은 대북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 차단이다. 사태 진전에 따라 송유관을 기능 유지 하한선까지 잠그거나 완전 폐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완충지로서 북한의 가치가 중국의 국익 계산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최종 판단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상징하는 이 레버리지를 썼음에도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때는 부메랑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다. 특히 원유 차단은 북한 경제와 민생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만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극대화하며 고통을 감내하도록 몰아갈 경우 대북 영향력만 상실할 수 있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이 틈새를 파고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을 버리고 미국을 선택하는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핵 사태가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의 실질적 대북 영향력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며 “진실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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