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산악 순록 지키려면, 늑대 대신 사슴을 없애라

최인준 기자 2017. 9.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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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산악 순록 1000여마리 복원의 딜레마
곰·늑대 등 천적 제거보단 맹수 불러온 초식동물 개체 수 줄여야

지난 2006년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정부는 해마다 개체 수가 줄어드는 산악 순록(mountain caribou)을 보호하기 위해 천적인 흑곰과 늑대를 사냥하겠다고 발표했다. 천적 동물을 줄여서 산악 순록을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캐나다 북서부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산악 순록은 현재 1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대표적 멸종 위기종이다.

캐나다 북서부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산악 순록. 멸종 위기종이다./위키미디어

야심 차게 시작한 주정부의 순록 복원 계획은 실패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늑대나 곰을 일일이 잡는 일에도 한계가 있었고, 천적을 없애는 만큼 산악 순록 개체 수도 회복되지 않았다. 주정부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 거세게 반발하자 초기 단계에서 계획을 백지화했다.

산악 순록 복원 프로젝트가 무산된 지 10여 년 만에 캐나다 앨버타대의 로버트 세로야 교수 연구팀이 캐나다의 고민에 새로운 해답을 내놓았다. 세로야 교수는 최근 국제 학술지 'PeerJ'를 통해 "산악 순록을 늘리려면 순록의 천적인 늑대를 사냥하기보다 순록의 사촌 격인 사슴 수를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순록 살리려면 천적보다 사슴 줄여야

연구진은 산악 순록이 사는 북서부 고산지대의 환경 변화에 주목했다. 산악 순록은 1990년대 중반부터 캐나다에서 사냥이 일절 금지됐지만 해마다 개체 수는 줄었다. 연구진은 산악 순록의 서식지에 말코손바닥사슴(유럽명 엘크)과 흰꼬리사슴 등 초식동물이 유입되면서 산악 순록의 생존이 위협받았다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로 초식동물들의 서식지는 점차 북쪽으로 올라갔다. 여기에 캐나다의 강력한 삼림 보호 정책으로 북서부 지역 숲이 울창해지면서 사슴이 대거 산악 순록 서식지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늑대도 사슴 무리를 따라 이 지역까지 흘러 들어가면서 순록이 위협받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산악 순록이 사는 고지대 6500㎢에서 말코손바닥사슴을 1년에 걸쳐 다른 곳으로 옮겨 개체 수를 3분의 1로 줄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외부에서 유입되는 늑대 수가 40% 줄었고 산악 순록 수는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반면 말코손바닥사슴 수를 줄이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는 산악 순록이 감소했다. 세로야 교수는 "사람들은 멸종 동물 복원을 위해선 보통 맹수부터 없애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데 그보다는 생태계 전체 틀에서 접근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늑대 사라지면서 무너진 생태계

생태계 보호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이다. 1926년 옐로스톤에서는 늑대가 자취를 감췄다. 늑대가 사라지자 말코손바닥사슴이 번성했다. 맹수가 없어진 옐로스톤 공원에는 평화와 번영이 찾아왔을까. 오히려 반대였다.

천적이 사라지자 말코손바닥사슴은 나뭇잎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개울가 버드나무가 사라지자 땅이 침식돼 개울 모양이 바뀌었다. 사슴의 월동 지역인 북쪽 계곡에서는 키 큰 사시나무가 사라졌다. 또 늑대 대신 중간 포식자인 코요테가 급증하면서 늑대가 쳐다보지 않던 다람쥐와 들쥐가 줄었다.

옐로스톤은 미국 오리건 주립대의 윌리엄 라이플 교수가 1995년부터 늑대 복원 사업을 시작하며 변하기 시작했다. 그해 캐나다에서 들여온 늑대 14마리가 옐로스톤에 방사됐으며, 이듬해에도 17마리가 늘었다. 2009년까지 늑대는 14군집에 100마리로 늘었다. 늑대가 다시 개울가를 찾자 말코손바닥사슴의 발길이 뜸해졌다. 개울가는 트인 곳이라 늑대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버드나무가 다시 번성하고 개울이 제 모양을 찾았다. 나무들이 살아나면서 설치류와 작은 새들이 돌아왔다.

◇고래 '똥' 사라지자 크릴도 급감

바다에서도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북극에 사는 고래는 크릴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 고래가 남획으로 줄어들면서 당연히 크릴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크릴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과학자들이 추적한 결과 고래의 배설물이 줄면서 여기서 영양분을 얻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줄었다. 결국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크릴까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의 김백준 박사는 "멸종 위기 동물을 복원할 때는 한 동물만 바라보지 말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원래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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