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우리가 사라지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을걸요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7. 9. 23. 03:05 수정 2017. 9. 2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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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카페] 멸종위기 기생충
온난화로 멸종 가속화.. 먹이사슬 80% 연결돼 생태계 혼란 줄 수 있어
숙주 건강에도 도움.. 면역 반응 조절해 염증 발생 억제하기도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국립기생충컬렉션에 있는 기생충 표본들./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지구온난화로 인해 동식물의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극곰이나 백두산 호랑이처럼 누구나 알 만한 동물만이 아니다. 어느 초식동물의 털 속에 자리 잡은 진드기나 도마뱀의 내장에 들러붙은 기생충과 같은 기생생물도 마찬가지다. 온난화가 좋은 일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생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생생물이 없다고 숙주 동물에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란 것. 그렇다면 기생생물도 보호해야 할까.

미국 UC버클리 웨인 게츠 교수 연구진은 지난 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지금처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다음 세기에 기생생물 셋 중 하나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온난화가 가장 더디게 진척되는 시나리오라고 해도 2070년이면 숙주 동물의 멸종과 애벌레 시절 잠시 머무는 습지 같은 서식지의 파괴로 기생생물의 30%가 멸종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 중인 10만여종의 기생생물 표본 중에서 채집 지역이나 시기가 명확한 5만3133종을 추렸다. 이들을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입력하자 3분의 1이 사라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 구두충은 오히려 기후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연구진은 구두충의 숙주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UC샌타바버라의 생태학자인 케빈 래퍼티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결국 기생생물은 숙주와 같이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UC버클리 연구진은 기생생물의 멸종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생태계 먹이사슬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먹이사슬의 80%는 기생생물과 연결돼 있다. 어떤 생태계에서는 기생동물이 생물 양의 다수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또 기생생물은 허약한 숙주를 솎아내는 역할도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바이러스에서 기생충에 이르는 기생생물도 생태계에서 개체군 조절에 큰 역할을 한다"며 "항생제 남용이 이들을 위협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기생생물이 숙주가 건강하게 사는 데에도 한몫을 한다는 점이다. 상식과 정반대로 보이지만 최근 야생동물은 물론 사람에서도 여러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쥐의 촌충은 생쥐에서 대장염을 치료하는 효과가 스테로이드성 면역억제제보다 뛰어났다.

설명은 이렇다. 숙주에 감염된 기생충은 면역체계의 공격을 받는다. 기생충은 숙주와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인한 질환까지 치료하는 효과를 냈다. 십이지장충이 분비하는 AIP-2 단백질이 쥐에서 염증을 억제하는 것이 한 예이다. 먼지 진드기에게 물린 사람 피부 세포에 AIP-2 단백질을 처리하자 염증이 억제됐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위생상태가 좋아지면서 기생충이 거의 사라지자 면역질환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에서는 기생충을 이용한 면역질환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뇌와 척수에 생기는 만성 염증인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환자들이 동물의 기생충에 일부러 감염되는 방식이다. 한때 제약사들도 같은 방식의 치료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거머리나 구더기가 질병 치료에 이용되는 것처럼 기생충도 질병 치료 효과를 인정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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