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나랏돈 8억원 들인 獨 '윤이상 하우스', 기념관 구실 못한다는데

전현석 기자 입력 2017. 9.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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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강연회 연다고 2007년 보조금 받고 수리.. 2012년 이후 잡초만 무성
"폐가처럼 초라해져.." 김정숙여사 방문도 만류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를 방문해 올해 출생 100년을 맞은 작곡가 고(故) 윤이상 묘소를 참배했다. 청와대는 애초 김 여사 일정에 가토우 묘지에서 약 7㎞ 떨어진 윤씨 베를린 자택(일명 윤이상 하우스) 방문을 포함하려 했지만, 윤씨 자택 관리를 맡고 있는 독일 국제윤이상협회 측에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가(廢家)처럼 초라하게 변해버린 윤이상 자택을 김 여사에게 보여주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윤이상평화재단은 2007년 윤이상 자택을 개·보수하고 윤이상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해 음악회와 강연 등을 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정부 보조금 8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윤이상 자택은 2012년 이후 수년간 기념관 구실을 못 하고 방치돼왔다.

윤이상 자택은 베를린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자크로우어 키르히베크 47번지에 있다. 19일 이곳을 찾았을 때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벨을 여러 차례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이뤄진 집은 부근 다른 집처럼 평범했다. 최근까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집 안 곳곳 비가 새서 썩고 정원에 잡초가 무성해 폐가처럼 보였지만, 윤이상평화재단에서 지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기술자 2명을 베를린에 보내 페인트칠과 간단한 집수리, 정원 조경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마을에서 60년 동안 살았다는 마리아나 마르센(70)씨는 "(수리 전까지) 최근 몇 년간 음악회는커녕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며 "유명한 작곡가가 살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근교에 있는 작곡가 고(故) 윤이상 자택. 2012년 이후 방치돼 폐가처럼 변했다가 올해 윤이상 출생 100년을 맞아 재정비됐다. / 김강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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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자택 개·보수 및 리모델링 총사업비는 원래 12억원이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8억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4억원은 윤이상평화재단에서 모금해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단 모금 실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측은 "정권이 바뀌면서 기업과 후원 단체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기부를 주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이상 자택은 딸 윤정씨 소유였다. 2009년 3월 재단은 정부 예산 중 2억5000만원을 윤정씨에게 주고 부지·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애초 5억원을 주기로 했는데 재단 모금액이 없어 절반만 주고, 작년 5월 취임한 탁무권 재단 이사장과 이사들이 사비를 모아 1억원을 더 줬다고 한다.

윤이상 자택 개·보수 및 리모델링 작업은 2008년 2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진행됐고 비용은 총 5억원이 들었다. 원래 정원·담장 공사도 계획했지만 공사비가 부족해서 못 했다고 재단은 밝혔다. 윤이상 하우스 건물 면적은 약 330㎡(100평), 대지 1320㎡(400평)다. 독일 교민 사이에선 "독일 인건비가 비싸지만 수리비로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 "공사비가 유용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윤이상평화재단 장용철 상임이사는 "영수증 등 정산 서류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모두 보냈다"며 "유용은 없었다"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지 실사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회계 서류상으로는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재단과 문체부 모두 공사비 관련 서류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사는 2009년 끝났지만 문체부 정산 작업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재단이 아카이브(윤이상 악기·악보 등 유품 자료관) 구축비로 쓰기로 한 정부 예산 5000만원을 수리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원래 계획대로 돈을 안 썼기 때문에 5000만원을 돌려받아야 정산이 끝난다"며 "2009년 11월부터 환수하겠다고 했지만 재단에서 돈이 없다고 미뤄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윤이상 하우스 아카이브 구축 작업은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일 국제윤이상협회 발터 볼프강 슈파러 회장은 자택에 있던 윤이상 악기와 악보 등 유품 파손을 우려해 자기 집에 보관해 왔는데, 윤이상 딸 윤정씨가 작년 말 대부분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품은 한국에 있는 윤이상박물관에서 전시하거나 윤정씨가 보관 중이라고 한다.

재단은 애초 슈파러 회장에게 매달 수십만원을 보내줄 테니 윤이상 하우스 관리를 해달라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윤이상 하우스에선 2011년까지 음악회가 많으면 연 6회 열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윤이상 자택 공식 행사는 없었다"고 했다. 전기·수도·가스 요금이 밀려 은행 압류가 들어오기도 했다. 작년 바뀐 이사들이 사비를 털어 밀린 공과금과 관리비 등 수천만원을 슈파러 회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재단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재단이 전문성 없이 주먹구구로 운영됐던 게 사실"이라며 "정권 바뀌고 윤이상 출생 100년 맞았다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게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했다. 재단 관계자는 "올해 안에 가스 난방 수리를 끝내고 윤이상 하우스를 재개관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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