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고독이 부른 낭만

백영옥·소설가 입력 2017. 9. 23. 03:04 수정 2017. 10. 3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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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으로] 외로운 도시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왜 그림자같이 순종적이던 아내에게 난폭했을까. 호퍼와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앤디 워홀은 왜 카메라와 녹음기에 병적으로 집착했을까. 혼자가 된다는 것, 외롭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고독을 끌어안으면서도 고독에 저항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뉴욕과 연결해 풀어낸다. “고독은 집단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도시다.”

/픽사베이">뉴욕에 머물며 가져온 많은 것 중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귀퉁이가 닳아버린 에드워드 호퍼의 화집 하나뿐이다. 특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 hawks)을 자주 봤다.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미국적 고독의 낭만적인 이미지 가운데 가장 통렬한 작품"이라고 해설한 그림이다.

"고독하다는 것은…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창피하고 경계심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기분이 밖으로 드러나 고독한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소외된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뉴욕에 머물던 그때 읽었더라면 적어도 덜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랭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뉴욕행을 선택하지만, 곧 그 사랑을 잃는다. 외롭지 않기 위해 선택한 연애 때문에 더 외로워진 사람이 선택한 건 도시 자체, 뉴욕이었다.

내게도 뉴욕 지하철에 관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14번가에서 183번가까지 나를 뒤쫓아왔던 키 큰 이탈리아계 남자에 대한 기억. 옆자리에 앉았던 그의 무릎이 닿던 순간 따뜻함이 흘러내렸던 건 그날이 몹시 추웠기 때문이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 5시와 6시 사이 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감정. 철저히 배제되고 밀려난 느낌, 어떤 단어를 써도 이 쓸쓸한 감정에 가닿는 말을 찾을 수 없겠다는 절망, 난독증에 빠진 작가처럼 순간 멍해졌던 기억. 그때 쓴 단편의 주인공은 가방에 늘 여러 개의 칼을 넣고 다녔다. 살의에 찬 복수 도구가 아니었다. 직업이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로움을 자주 '식욕'이라고 오독했다. 덕분에 그녀는 코끼리처럼 점점 비대해졌다.

"나는 그전에도 외로운 적이 있었지만 이때처럼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혼자 있는 여성이 더는 사회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나이이며, 낯섦·일탈·실패의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연령대다."

올리비아 랭은 자신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 특히 헝클어진 머리를 말아 틀어올리고 침대에 앉아 창문 너머로 펼쳐진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 비유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역시 '고독'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책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앤디 워홀이 살면서 왜 녹음기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채집하는 데 그와 같은 광기를 발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곧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녀는 호퍼와 워홀을 비롯해 생소한 이름의 예술가들을 호출한다. 뛰어난 화가였지만 호퍼 뒤에 가려져 있던 호퍼의 아내 조. 급진적이고 뛰어난 페미니즘 선언서로 유명해졌지만 결국 앤디 워홀을 쏜 사람으로 기억되는 작가 밸러리 솔라니스와 폭력·섹스·마약과 얻어터진 자신의 얼굴까지 고스란히 촬영했던 파격의 사진가 낸 골딘, 수백 장의 사진을 남긴 채 사라져버린 비밀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오직 그레타 가르보를 찍기 위해 그녀의 아파트 건물 밖에서 웅크리고 살았던 파파라치 테드 레이슨과 그를 따돌리고 그가 찍은 사진을 망치기 위해 일부러 휴지로 입 주위를 빙글빙글 문지르며 맨해튼의 특정 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걷던 그레타 가르보.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외로웠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거울처럼 그들 자신을 비추던 연인과 아내 혹은 도시라는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다. 가령 지독하게 키 크고 수줍음 많던 호퍼를 알기 위해선 그의 곁에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아내 조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그저 조의 그림을 지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 활동을 할 의사를 꺾기 위해 꽤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그녀가 만들어낸 얼마 안 되는 작품을 조롱하고 폄하했으며, 그림 그릴 여건을 제한하려고 매우 독창적이고도 악의적으로 행동했다…'에드워드 호퍼: 내밀한 전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는 수시로 악화되고 난폭해지는 호퍼 부부의 관계였다. 그들은 자주 싸웠는데, 호퍼의 그림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와 자동차를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요구가 주요 원인이었다."

호퍼의 외로움이 조의 고독을 발견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층적이다. 대개 외로운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통찰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 억양이 강한 영어를 썼기 때문에 단박에 피츠버그 최하층에 속하는 이민 노동자 출신이라는 게 들통났던 앤디 워홀 역시 그랬다. 병적으로 수줍음이 많았던 워홀에게 어떤 물건들은 인간적 친밀감의 요구를 차단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랭에 의하면 그는 '신체 접촉을 두려워해 외출할 때마다 거의 언제나 카메라와 녹음기를 갑옷처럼 갖추고 나가면서 그것들로 상호 행동을 중개하거나 완충'했다. 워홀은 자신의 녹음기에 '마누라'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녀는 워홀이 어떻게 복제의 제왕이 되었는지 추적해 나간다.

"특히 이민자들에게 '똑같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상태다. 같음은 특이하고 혼자 있고 하나뿐이라는 고통에 맞서는 해독제이며, 고독하다는 단어의 어원인 중세어와도 통한다. 차이는 상처 입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비슷함은 거부와 무시의 조롱과 영리함에 대해 방어한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행위를 기준으로 보면 석탄 광부는 대통령과 영화배우들과 똑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그것은 모두 워홀이 '팝아트 공통 예술'이라 부르고 싶어 한 바로 그런 민주적, 포괄적 충동이다."

18세 때 친언니가 철도에 누워 자살한 낸 골딘, 한 번도 자신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 오해받고 이해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주 말을 더듬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나는 사람들이 내가 경험한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하고 싶어. 내게 제일 의미 있는 건 그거야"라고 말하며 죽어갔던 미술가 워나로위츠의 존재가 마천루 가득한 뉴욕에 높이가 아닌 깊이를 만든다. 책을 읽으며 외로움의 순서에 대해 생각했다. 외로움을 식욕으로 오역하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문득 이 외로운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타인 아닌 에밀리 브론테의 시와 조너선 프랜즌의 '인생 수정'이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 역시 그랬다.

●외로운 도시 - 올리비아 랭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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