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워터스 공연, 무대 디자인·소품에 200만달러 썼다니!

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 2017. 9. 2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양호가 태어나던 2007년부터 아리랑 라디오에서 록음악 프로그램 DJ로 5년간 일했다. 게스트 출연자들에게 항상 물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이승열부터 토미 키타까지, 대부분 한국 록스타들은 "핑크 플로이드"라고 대답했다. 나도 비틀스 다음으로 핑크 플로이드가 가장 창의적인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그 공연을 보지 못했다.

내가 '스피드 그래픽스'라는 스튜디오 매니저로 일하던 1990년,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하자마자 달려갔지만 2만 석이 매진됐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워낙 무대 장치가 거창하고 소품을 많이 써서 공연을 자주 못 한다. 5년에 한 번 할까 말까다. 그런데 지난 15일 뉴욕에서 핑크 플로이드 리더인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봤다. 석 달 전 예매한 덕이었다.

엄청난 무대 장치와 화려한 쇼를 보여준 로저 워터스 공연. 관객 중 흑인은 10명 남짓, 한국인은 우리와 친구 부부,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었다. / 한대수 제공

1만8000석짜리 공연장 나소 콜리시엄의 사운드와 영상은 완벽했다. 9명 밴드의 강력한 사운드는 그들의 앨범보다 더 훌륭했다. 조명 쇼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영상들은 인류가 지금 전 세계에서 저지르고 있는 악행을 되새겼다. 공연장을 가로지르는 벽돌 건물과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등장했고 트럼프를 야유하는 초대형 돼지 풍선이 떠올랐다. 공연 말미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레이저 쇼로 절정을 이뤘다. 내가 좋아하는 곡 'Us and them'과 앙코르곡 'Comfortably numb'을 연주할 때는 1만8000명 팬들이 모두 따라 불러 기막힌 화음의 장관을 이뤘다.

핑크 플로이드는 앨범 2억5000만 장을 판 최고의 록밴드다. 하지만 1985년에 리더였던 로저 워터스가 밴드를 떠난다.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내 생각엔 록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앨범 'The Wall'을 만들 때부터 워터스는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행동해 다른 멤버, 특히 최고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와 싸우고 밴드를 떠났을 것이다. 그 후 수년 동안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을 누가 쓰느냐'는 상표권 다툼이 있었는데 워터스가 졌다.

워터스의 부모는 둘 다 교사였고 아버지는 영국 공산당 멤버였다. 그러나 워터스가 5세 때 2차대전에서 전사했다. 그리하여 그의 음악은 상당히 염세주의적이고 정치성이 강하다. 물론 왼쪽으로! 그런데 음악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연주자들을 각광받게 한다.

이날 핑크 플로이드의 뉴욕 공연은 말썽이 많았다. 대낮부터 유대인 수백명이 공연을 중단시키라고 데모했다. 이유는 워터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점령을 반대하는 반유대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워터스는 "강한 자가 약자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것을 반대할 뿐, 반유대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지지자들도 함께 데모했다. 공연에 트럼프를 비하하는 영상과 글이 너무 많았다. 나도 조금 지나치다고 느꼈다.

워터스 공연은 무대 디자인과 소품에만 200만달러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공연으로 월드 투어를 하며 수천만달러를 벌 것이다. 현재 그의 재산은 3억달러로, 록 재벌 20위 안에 든다. 4번 결혼하고 4번 이혼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브리지햄튼에 살고 있다.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74세 할아버지 로커를 만나러!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