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최고형 엄벌" 선고에도.. 두 소녀는 눈물조차 없었다

2017. 9.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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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해' 1심.. 주범 20년-공범 무기刑 구형대로 선고

[동아일보]

“여러 차례 고심했습니다.”

22일 오후 인천지법 413호 법정. 주문을 읽던 재판장(허준서 부장판사)은 5초가량 숨을 고른 뒤 조심스레 말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공범 박모 양(18)에 대한 선고 직전, 내내 판결문만 읽던 재판장은 처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방청석을 쳐다봤다.

“유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직접 살해한 김 양과 그렇지 않은 박 양 책임의 경중을 따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생명 경시의 극단”

박 양과 주범 김모 양(17)은 이날 나란히 피고인석에 섰다. 변호사는 없었다. 여러 차례 재판이 열렸지만 두 사람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재판이 이어진 40분 동안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대신 재판장만 응시했다. 박 양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재판장의 말을 들었다. 한 번도 모은 손을 풀지 않았다. 반면에 김 양은 불안해 보였다. 깍지 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감형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재판장의 말이 이어지자 손을 책상에 짚고 몸을 기댔다.

마침내 김 양과 박 양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의 중형이 선고되자 김 양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잠시 재판장을 바라봤다. 박 양의 무덤덤한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재판부를 향해 목례도 하지 않은 채 법정을 떠났다.

이날 선고는 검찰 구형량 그대로다. 10대 청소년에게는 이례적인 중형이다. 김 양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약취 또는 유인한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살해한 경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올해 만 17세라 만 19세 미만에게 적용되는 소년법 대상자에게 가능한 최고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 양이 주장한 감형 사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양의 변호인은 재판 내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고 곧바로 자수했으며 우발적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당시 김 양의 현실인지 능력과 지능은 평상 수준”이라고 일축한 뒤 “범행 당일 ‘도축’ 등을 검색했고 목표로 삼은 시신 일부를 잘라낸 뒤 운반이 쉽게 정리한 점, 트위터에 ‘우리 동네에 애가 없어졌다’는 글을 올린 점 등을 볼 때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공범인 박 양에게 처음 살인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가 살인으로 바꾼 이유에도 모두 동의했다. 재판장은 “미성숙함 탓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피고인의 생명 경시 태도가 심하고 결과가 참혹하다”며 “박 양 행위는 김 양과의 관계에서 지위나 장악력을 감안할 때 기능적(살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 범행의 성격과 비중이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장은 이번 사건을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특정 신체부위를 얻으려 한 생명 경시의 극단이었다”고 규정하며 “반사회성과 결과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미온적 대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중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가상세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한 걸 감안할 때 다시 살인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며 두 사람 모두에게 출소 후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 재판장이 읽은 김 양의 판결문 분량은 18페이지, 박 양은 47페이지였다.

김 양 측 변호인은 “김 양에게 항소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반면 박 양 측은 “즉시 항소할 것이고 항소심에서 우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 “우리 딸 억울하지 않도록 끝까지…”

피해 아동의 유족을 돕는 김지미 변호사는 “수긍할 수 없는 낮은 형량이 나올까 걱정하던 어머니는 선고 결과를 듣고 ‘정말 다행이다’고 했다. 상급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도 지인을 통해 “하늘에 있는 딸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도록 1심 결과가 끝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방청석에는 피해 아동이 살았던 지역의 주민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이들은 선고 순간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김모 씨(45·여)는 “주민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선고 결과를 바로 알렸다”며 “어제 한숨도 못 잤는데 이제 다 됐다”며 울먹였다.

사건 발생 후 상당수 주민도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주민들이 중형 선고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모임을 만들어 재판 때마다 “충분한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주민들은 “검찰 구형만큼 선고가 돼 모임은 오늘부로 해체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했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한 주민은 “원하던 재판 결과를 얻었으니 이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최지선 /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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