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제 미술시장 큰손 "한국 미술 저평가 돼 있다"

이후남 2017. 9. 2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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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보석세공으로 부 축적
1992년 벨기에서 예술후원 재단
전쟁 난민 돕는 인도주의 활동도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세계 무대 한국 단색화 붐 기여
한국 지리적 위치 좋고 문화 발전
예술의 중심 될 수 있는 잠재력 커

━ 서울 온 세계적 컬렉터 겸 미술가 장 보고시안 회장

보고시안재단의 인도주의 활동과 예술후원 활동을 이끄는 장 보고시안 회장. 그는 모든 개인적 컬렉션을 장차 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춘식 기자]
“한국 미술에는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4일까지 닷새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17 ART SEOUL)를 보러 내한한 장 보고시안(68) 회장의 말이다. 그가 벨기에에서 이끌고 있는 보고시안재단은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색화 특별전을 열어 국내 미술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김환기·권영우·박서보·이우환·정상화·정창섭·하종현 등 7인의 작품을 소개한 이 전시는 한국 단색화를 세계 무대, 특히 유럽에 본격적으로 선보인 중요한 계기로 꼽힌다. 같은 해 재단이 후원한 아르메니아 국가관은 베니스비엔날레가 최고의 국가관에 주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름난 미술품 컬렉터이자 그 자신이 예술가로 활동 중인 보고시안 회장은 하지만 예술보다 “4대에 걸쳐 4개국을 옮겨 다닌” 집안 내력부터 들려줬다. KIAF 개막에 하루 앞서 19일 인터뷰에서다.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량학살로 터키에서 도망쳐야 했던 가족사는 그 과정에서 10대 소년이던 할아버지가 주머니 속 금화로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 시리아의 물담배 커피집에서 일하다 어떻게 가업인 보석세공을 다시 시작했는지 등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이들 가족은 시리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로 인해 다시 레바논으로 이주했지만 내전이 발발, 1970년대 중반 또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한데 지금은 시리아가 내전 중이다. 그가 태어난 도시 알레포는 폐허처럼 파괴됐다. 이들 가족이 살아온 자취에는 보석세공·판매로 일군 부와 더불어 그의 말마따나 “언제나 전쟁, 전쟁”이 자리한다.

“우리는 예술이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정치는 사람들을 곧바로 장벽 뒤로 숨게 합니다. 모든 예술가는 예술이 질문이라고 하지요. 물론 예술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지만 예술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해답이 될 수 있어요.”

92년 그의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설립한 보고시안재단은 예술후원 활동에 앞서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을 아르메니아·시리아·레바논 등에서 펼쳐왔다. 이번 방한 직전에도 그는 이라크 북부를 다녀왔다. 난민을 위한 이동형 버스 진료소를 만든 곳이다. “나눔의 전통은 오래됐어요. 할아버지가 돈이 많지 않을 때부터 명절이면 줄을 서는 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주곤 했죠.” 특히 아르메니아에서는 88년 대지진 이후 매년 고아원, 어린이 여름캠프, 수학학교 등을 하나씩 짓는 일을 30년간 해왔다. “아르메니아 사람이라도 아르메니아를 잘 몰랐죠. 가보니 옛 소련 시절 지은 건물 대부분이 무너졌더군요.”

2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17 ART SEOUL) 모습. [이후남 기자]
벨기에에선 30년대 세워진 아르데코 건축물 ‘빌라 엠팡(Villa Empain)’을 인수,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로 운영 중이다. “럭셔리로 가득 찼던 곳인데 불법거주자들, 곳곳의 낙서들로 방치된 상태였죠. 이를 복원해 대중에게 공개한 겁니다.”

보고시안재단의 본부이기도 한 ‘빌라 엠팡’에선 매년 2~3회의 전시와 각종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소장품 전시가 아니다. 유명 큐레이터 등을 초빙해 전시를 기획한다. 올해 한국 작가 전광영의 개인전도 열렸다. “우리는 동쪽에서 왔고 지금 서쪽에 삽니다. 미술관을 가진 사람은 많이 있어요. 우리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동과 서가 문화를 통해 가까워지게 하는 것, 동과 동이 서를 통해 가까워지게 하는 겁니다.”

레바논 시절 그는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대신 일찍 가업에 합류했다. “아버지가 ‘우리는 전쟁을 겪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요. 맞는 말이었어요. 저는 해외로 다니며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에 대해 배우고 전문가가 됐죠. 친구들은 다 졸업장을 받았지만 내전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이미 그가 6세 때 선생님을 붙여 드로잉을 배우게 했다고 한다. “보석세공인은 직접 디자인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처럼 컴퓨터가 있는 게 아니라서 옆면·윗면·뒷면 등 다 손으로 그렸죠.” 최근까지도 직접 디자인을 했다는 그는 현재 보석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작품 활동, 재단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다. 아들이 9세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젤·물감·붓 등을 사갔다가 그 자신이 그날 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이후 낮에 일하고 밤에 교육기관을 찾아 예술사부터 공부하는 생활을 15년쯤 이어갔다. 그의 작품과 컬렉션이 현대미술, 특히 추상화에 이른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처음에는 티아라, 담배 홀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가방 등 가업과도 관련된 작품들을, 그다음은 19세기 초 중동 화가들 그림을 수집했다고 한다. 이후 예술사와 다양한 예술사조를 접하며 추상화에 매료된 이유를 “자유”라고 표현했다. “예술가도, 보는 사람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게 추상의 아름다움이죠.” 소장품을 묻자 여러 서구 작가와 더불어 이우환·박서보·전광영을 열거했다. “참, 하종현을 매우 좋아해요.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그의 기법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입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그는 다른 두 작가와 함께 아르메니아 국가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다. 그의 전시 제목은 ‘꺼지지 않는 불꽃’. 예술에 대한 열정,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지난한 역사 등 다층적 의미다. 그는 불에 탄 책들의 형태와 거대한 문자판들로 “문화의 파괴와 재건”을 상징한 자신의 작품이 실린 잡지를 보여줬다. 이미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한 그이지만 30여 년 전 늦깎이로 출발해 베니스에 입성한 감회는 과연 남다른 듯했다. 그는 이미 작가로서 한국을 다녀간 바 있다. 2012년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의 국제교류전에 작품을 선보이며 질의응답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퍽 말을 아꼈다. 다만 “한국 미술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갤러리가 더 많이 프로모션하고 컬렉터들이 더 많이 사야 한다”고 했다. KIAF의 성장 가능성은 크게 봤다. “좋은 기회를 갖고 있죠. 첫째로 자리가 아주 좋아요. 지역적으로 한국 주위에 중국·일본·필리핀 등이 있죠. 또 한국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매우 발전되어 있습니다. 예술적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S BOX] 모리스 벨벳, 장레이, 압델라 카룽 … 거물들 몰린 KIAF

「 16회를 맞는 올해 KIAF는 국제 미술시장 큰손들의 방문이 유독 두드러진다. 벨기에 모리스 벨벳 아트센터 설립자 모리스 벨벳, 중국 인비전에너지 최고경영자(CEO) 장레이, 중국 젠다이그룹 회장 겸 상하이 히말랴야 미술관 설립자 다이지캉, 카타르 도하 현대미술관 관장 압델라 카룽,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컬렉터가 된 것으로 유명한 미야쓰 다이스케, 현대미술 취향이 뚜렷한 갈릴라 홀란더 등 한둘이 아니다.

이는 KIAF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화랑협회가 적극적인 초청 노력을 한 결과다. 작업실에서 집중하느라 “프리즈, 피악, 아트바젤,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제외하면 아트페어에 잘 안 간다는 보고시안 회장의 방한도 이렇게 이뤄졌다. 이화익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재작년 시작한 VIP 초청 프로그램이 해를 거듭하며 인적 네트워크가 두터워지고 있다”며 “한국 방문이 처음인 경우도 많은데 부담 없이 와서 한국 작가와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KIAF에는 모두 13개국 167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국내 미술시장이 크게 침체된 상황이지만 일단 첫날(20일) 판매 성과는 “예상치를 휠씬 뛰어넘었다”는 것이 한국화랑협회의 추정이다. 」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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