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보기 좋은 건물이 살기에도 좋을까
우아하고 혁신적인 구조였지만
거주민에겐 원초적 불쾌감 불러
건축가 아닌 살아갈 사람이 중심
헤드스페이스 폴 키드웰 지음 김성환 옮김, 파우제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총체적인 것이다. 어떤 형태(form)가 아니라 분위기(atmosphere)다. (중략) 어떤 이들은 건축이 형태에 관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건축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74)가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람과 건물과의 감각적 교감을 중시하고,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철학이 이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춤토르의 말이 떠올랐을까. 건축과 공간을 말하며 감정(emotion)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주제가 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키드웰은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일상의 문제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환경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고. 안온함을 선사하는 집,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사무실, 사람들을 기분좋게 끌어들이는 거리와 광장에는 보다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다.
건축심리학자의 입장에서 건축을 바라본 저자가 설계를 주도하는 건축가들의 자의식을 작정하고 비판한 점도 흥미롭다. 서문에서 그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비참해할 수 있고 어느 곳에서든 기뻐할 수 있다. 건축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 렘 쿨하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적었을 정도다. 그는 ‘미니멀 유형’의 집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들은 자신의 자의식을 위해 실제 거주하는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고, 어떤 건축가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거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압도적인 크기의 건물을 만들어낸다고 꼬집는다.
키드웰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네 삶의 ‘본질’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아이들은 흙 구경을 하지 못한 채 플라스틱 매트가 깔린 실내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는 이 환경이 과연 최선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있다. “도시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조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울리며 살아야 하고, 자연을 향한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 사람, 그 사람을 건축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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