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베를린 구상·비핵화와 정면배치..'대북정책 원칙' 흔들렸다

유신모 기자 입력 2017. 9. 22. 21:41 수정 2017. 9. 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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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미·한-미-일 정상회담
ㆍ핵 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자산’ 국제적 파장 논의 없이 추진
ㆍ문 대통령 “트럼프 단호한 조치 감사” 정책기조와 모순된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일정의 마무리 행사인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의의 핵심 주제는 북핵 문제였다. 특히 북한에 대한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 한·미·일 연합방위태세 강화를 통한 대북 억제력 확보 등에 초점이 모아졌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국의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과 개발 등을 통해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강화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또 양국 정상은 한국과 주변 지역에 미국의 전략자산 순환배치를 확대하기로 했다. ‘최첨단 군사자산’에는 한국이 강하게 요구한 핵 추진 잠수함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대북 압박 강화가 주로 논의됐다. 특히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새 대북 제재 행정명령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행정명령은 북한과 무역거래를 하는 은행과 기업·개인을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전형적인 ‘세컨더리 보이콧’ 형태다.

이 같은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북핵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미국의 새 행정명령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지만 한국도 큰 영향을 받는다. 미 재무부가 ‘북한과의 의미 있는 상품·서비스·기술 거래’를 차단하는 재량권을 갖게 됨으로써 예외 적용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성공단과 같은 사업은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제공동체 등의 구상도 실행에 착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단호한 조치를 내려주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면서 “한국도 최대한 공조하겠다”고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도 같은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하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도 논란거리다. 문재인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는 핵 추진 잠수함 도입에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핵 추진 잠수함 보유에 한 발 다가선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핵 추진 잠수함이 한반도 해역에 적합한 무기인지,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이로 인한 국제적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북핵 대응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핵 추진 잠수함 도입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는 남북비핵화공동선언과 배치된다. 법적 구속력도 없고 북한이 합의를 깬 상태이긴 하지만, 남북비핵화선언은 단순한 ‘종이 조각’은 아니다. 이 선언은 북핵 해법의 바이블처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9·19 공동선언의 중요한 요소다. 9·19 공동선언은 각종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에도 언급돼 있다. 비핵화공동선언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대응 기조의 기초를 이루는 요소인 셈이다.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 보유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북핵 대응에서 일탈하는 것이 된다.

북한에 9·19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대화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면서 정작 한국은 그 원칙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모순된 상황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으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만 했다. 민간의 한 북핵 전문가는 “대통령의 언급과 정부의 태도가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정책기조를 바꾼다는 것인지 모순을 해소할 방안을 갖고 있는 건지 정부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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