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굽는 오븐]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살아내게 하는 것들
[경향신문] ㆍ대성당
ㆍ레이먼드 카버 지음·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 348쪽 | 1만3500원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저는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림책을 읽다가 낯선 음식 이름이 등장하면 그 맛을 상상해보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했으니까요. 체리설탕절임이나, 호밀빵, 칠면조 같은 것들은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특히 번역서에 종종 등장하던 오븐은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습니다. 오븐을 처음 써본 것은 중학교 때 일이었어요. 오븐의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저희 집에는 그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케이크를 구워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레시피를 구할 길도 없었으면서 말이죠. 어디선가 본 대로 밀가루와 계란 같은 것들을 섞은 후 슈퍼마켓에서 산 유산지 컵케이크 틀에 반죽을 붓고 오븐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설레던지요. 결과는 물론 대실패였지만요.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식, 특히 빵이 나오는 책이면 호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에 실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입니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카버는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고 담담히 그리는 데 탁월한 작가입니다. 그중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아이를 잃은 부모와 빵집 주인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한순간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는 ‘스카티’라는 이름을 지닌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주문하는 부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파티는 끝내 열리지 못해요. 스카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죽을까봐 두려움에 떠는 부부에게 이상한 전화가 자꾸 걸려옵니다. 스카티에 대해서 잊어버렸느냐고만 묻고 끊어버리는 전화는 불안한 부부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힙니다. 의문의 전화는 스카티가 죽은 날에도 걸려옵니다. 그리고 아내는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은 빵집 주인의 전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슬픔은 분노가 되어 이제 주인에게 향하고 부부는 빵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빵집 주인은 그들이 케이크를 찾아갈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알게 되지요. 사실 빵집 주인에게도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스카티의 죽음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탓이 아니고, 그가 장난 전화를 건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스카티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줄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빵집 주인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신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빵을 건네죠.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요? 저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립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을 건네는 이의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습니다. 어쩌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여러분들께 건네기 위해서 말이죠.
<백수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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