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서러워라, '悲정규직'이라는 굴레

백승찬 기자 2017. 9. 2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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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얼굴들
ㆍ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기획·이상엽 사진 | 후마니타스 | 192쪽 | 2만원

방송통신 서비스 노동자 김민성씨, 초등학교 사서 노동자 권용희씨, 장애인 활동보조노동자 고 윤희왕씨, 학교급식 조리 노동자 박영순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후마니타스 제공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분석 결과를 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1100만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평균임금은 정규직 대비 절반에 못미치고,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가 200만명 이상이다. 아파트경비원, 환경미화원, 편의점 아르바이트, 골프장 경기 보조원, 연극배우…. 그런데 이들은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를 이끄는 주역으로 칭송받거나, 노조의 깃발 아래 모이는 일도 적다. 이상엽 사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령’이거나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이상엽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얼굴을 드러내기로 했다. 다양한 세대와 성별, 국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플래시를 사용해 배경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고, 인물의 얼굴을 부각시키는 형식을 택했다. <얼굴들>은 그 기록이다.

김민성씨는 LGU+ 구로센터에서 개통 기사로 일한 지 10년이다. ‘건 바이 건’으로 급여를 지급받기에 기본급이 따로 없다. 몇 년 전에는 전주에 오르다 감전돼 입원한 적도 있다. 비오는 날 전주에 오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개통 요청이 들어오면 돈을 더 벌기 위해 일하러 나선다. 더 힘든 부분은 ‘지표’다. 고객이 점수를 매기는 ‘해피콜’이 있다. 몇 가지 항목 중 하나라도 9점이 나오면 월급에서 차감한다. 어떤 고객은 세탁기 옮겨달라, 분리수거해달라 요구하면서 ‘점수 10’점을 내건다고 한다.

윤희왕씨는 다사리자원자립센터에서 4년째 일하며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 일을 한다. 한 달 내내 일해도 100만원을 못 번다. 투잡, 스리잡은 기본이다. 거의 거동을 못하는 1급 중증장애인을 깨워 휠체어에 태우고 밥 챙겨 먹이고 외출할 때 동행한다. 부인 빨래, 애들 빨래, 고추 따는 밭일을 시킨 사람도 있다. 원래는 장애이용자가 센터에 보조인을 요청해야 하지만, 활동 보조인이 직접 일거리를 구하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도 센터에서는 25%를 수수료로 뗀다. 윤씨는 지난 1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권용희씨는 초등학교에서 실질적인 사서 역할을 하지만 실무사 대우를 받는다. 교감은 “뭐 그렇게 말이 많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 폐기 도서를 학급문고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체 메신저로 보냈다가 교감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담임이나 연구부장 이름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서들은 식비를 전혀 받지 못해 파업을 했는데 교감은 “우리도 조금밖에 못 받는다”고 했다. 권씨가 “우리는 조금도 못 받는다”고 답하자, 교감은 “똑같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박영순씨는 16년째 학교 급식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조리사 1인당 300인분 식사를 맡았고, 첫 월급은 50만원이 안됐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1인당 업무량이 186인분으로 줄었고, 수당까지 합해 100만원 정도 번다. 호봉이 인정되지 않아 20년 일하나 처음 일하나 급여는 같다. 급식실 온도는 50~60도에 달해 늘 땀범벅이다. 화장실에 가면 비닐 작업복이 몸에 붙어서 바지가 안 내려간다. 조리사들끼리 “너도 지렸냐. 나도 지렸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조리사 한 명이 하루에 들었다 놓는 식재료와 음식 무게는 8t. 10년 일하다 보면 온몸에 골병이 든다. 박영순씨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후배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해놓고 나오고 싶다고 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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