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이란식 제재, 원유대금 동결로 핵개발 손들게 했다

이기준 2017. 9.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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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96년 세컨더리 보이콧 담긴 '이란제제법' 도입
제재 점점 강화해 2012년엔 이란과의 거래 원천차단
제재에 지친 이란 국민들, 중도파 로하니 대통령 선출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개국과 핵 합의 이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기업·은행에 대해 미국과 금융 거래 등을 봉쇄하는 내용의 대북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북 추가 제재의 모델이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국제 외환결제 은행들에 원유 대금을 동결한 ‘이란 제재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이란은 왜 제재를 당했나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란과 서방의 갈등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2002년 8월 이란의 반정부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이란 정부의 우라늄 농축 시설 운영 사실을 폭로하면서다. 이란의 비공개 우라늄 농축은 이란이 1967년 가입한 핵 비확산조약(NPT)과 1974년 서명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협정을 위반하는 행동이었다.

이란의 학생들이 2011년 11월 15일(현지시간) 이스파한주의 우라늄 농축시설 앞에 모여 정부의 핵 프로그램을 지지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듬해 6월 IAEA가 이란의 핵 활동 보고 의무 불이행을 지적하면서 핵 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국제 사회의 갈등이 공식적으로 시작됐고, 이후부터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서방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이 전개됐다.

그러나 2005년 6월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당선 직후 기자 회견에서 ‘이란의 핵 개발은 침해받을 수 없는 고유의 권리’라고 밝히면서 협상은 좌절됐다. 여기에 아마디네자드는 그해 8월 이스파한에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재개를 발표했으며, 2006년에는 이스파한 우라늄 변환 시설의 봉인을 해제했다. 이에 2004년 체결됐던 유럽연합(EU)과의 농축 유예 합의까지 파기되면서 서방과의 긴장 수위는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됐다.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미국의 주도 하에 2006년 12월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2010년 6월까지 총 네 차례의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안보리의 제재엔 우라늄 농축 및 핵 재처리 금지, 이란에 대한 무기 수출입 금지, 이란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수색 명령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제재는 이란 총 수출의 80%에 달하는 석유 산업을 저지하는 데 무력했다. 이란은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에 제한 없이 석유를 수출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핵 개발을 계속했다. 이에 미국은 이란의 석유 산업에 타격을 입힐 수단으로 독자 제재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게 된다.

━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무엇인가

2차 제재라고도 불리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이란과 관련해 거래 등 특정 활동을 하는 개인 혹은 단체에 국적 상관 없이 가해지는 제재를 말한다. 미국은 1996년 이란 석유·가스 산업에 투자하는 개인 및 단체를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이란 제재법(ISA)'을 도입하고 2011년 말엔 이란과 거래하는 해외 금융기관의 미국 내 거래를 금지하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켰다.

지난 2015년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이란 핵 협상 잠정 마감 시한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을 소집해 스위스에서 미국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존 케리 국무장관 등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백악관 플리커]
이란 경제에 결정타를 입혔다는 평을 받는 제재는 2012년 7월 31일 오바마의 행정명령 13622호와 뒤이어 국회에서 통과된 이란 위협감축법(ITRA)이다. 미국은 이 두 조치들을 통해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입과 관련된 거래를 하는 개인 및 기업에 여행금지, 미국 내 부동산 구입 금지, 자산동결 등 전방위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이란의 원유 운송에 보험을 제공하는 회사부터 이란에 핵확산과 관련된 민감품목을 수송하는 회사까지 꼼꼼하게 제재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란의 원유와 금을 맞교환하는 석유·금 스와프거래, 에너지 채권과 국채 거래, 최루탄과 고무탄 등 이란 시민의 시위진압용 물품 판매도 모두 금지됐다. 이 조치로 중국 쿤룬은행과 이라크 엘라프이슬람은행이 제재를 받아 미국의 금융 시스템 접근이 차단되기도 했다.

━ 제재의 효과는 어땠나

이란 경제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015년 4월 제이콥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은 제재가 본격화 되기 전인 2012년에 비해 이란 경제 규모가 15%에서 20%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추산했다.

2012년부터 2년간 리알화 가치는 56% 곤두박질쳤고, 인플레이션은 40%에 달했다. 실업률도 20%까지 치솟았다. 석유 수출 금지로 인한 손실만 1600억 달러(182조 원)에 달했으며, 해외에서 동결된 이란인들의 자산도 10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유가가 하락하는 등 외부 악재도 이란 경제를 뒤흔들었다. IMF에 추산한 이란의 유가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92.5달러였으나 2015년 6월 기준 배럴 당 유가는 65달러에 그쳤다.

━ 이란 핵 협상은 어떻게 체결됐나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6개국과 이란은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최종 협상에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가해졌던 각종 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내용의 이란 핵 협상 합의를 도출했다.

이란 핵 협상 합의에 이르기까지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이란의 군사 시설을 비롯해 핵무기 개발이 의심되는 모든 시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합의됐다. 다만 이란은 IAEA의 특별 사찰 요구를 주요 6개국과 함께 구성하는 중재 기구를 통해 조율키로 했다.

신형 원심분리기를 중심으로 한 이란의 핵 기술 연구·개발은 나탄즈 시설로 한정했고, 농축 우라늄 농도는 3.67% 이하(저농축 우라늄), 규모는 300kg 이하로 제한했다. 또 이란이 공개하지 않았던 포르도 농축 시설에서의 농축·연구·핵물질 저장은 금지했다.

아울러 핵 활동 제한·사찰의 반대급부인 대(對)이란 경제·금융 제재는 단계적으로 해제될 예정이지만, 협상안을 이란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안에 제재를 복원하기로 했다. 또 이란 핵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2006년 유엔의 이란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와 2010년 탄도미사일 관련 제재는 각각 5년과 8년간 유지하기로 했으나, 안보리 협의하에 이란이 외국산 무기를 도입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뒀다.

이란 핵 협상의 핵심은 이란 포함 7개국이 참여한 다자합의로 이뤄졌다는 데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양자 협약일 경우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입장 변경으로 파기될 것을 우려해 다자 간 협상을 추진했다. 올해 초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재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과 미국 간 협정이 아닌 다자간 협정으로 재협상은 의미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핵 협상 반대파인 폴 라이언 미국 공화당 하원의장도 "다자간 합의된 사항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이란과 북한, 어떻게 다른가

그러나 북한에 이란식 제재가 큰 효과를 보일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이다. 두 나라 사이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란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국가다. 북한 김정은 체제 같은 3대 세습은 이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때문에 이란 지도자들은 국제 정세나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AP=연합뉴스]
2010년 초 이란 국민들은 서방의 제재로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지난 2013년 중도 성향인 로하니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서방과의 핵 협상을 이뤄내고 제재를 해제시키겠다는 로하니의 공약에 대다수 국민들이 화답했기 때문이다. 로하니는 2015년 마침내 서방 주요 6개국과 핵 협상을 이뤄냈고, 지난 5월엔 강경 보수파 후보인 이브라힘 라이시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석유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이란과 달리 수출이 많지 않은 북한은 강력한 제재 하에서도 잃을 것이 적다고 지적했다. 미국 씽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네퓨 선임연구원은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온 것은 경제적 이득에 대한 전망 때문"이라며 "미국은 북한이 합의를 지키도록 만들만한 레버리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통일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명목 GDP는 36조1030억원이며 수출액은 약 3조2000억원으로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채 10%가 되지 않는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가 넘는 한국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9%)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란의 경우 핵 협상이 개시되기 전인 2012년 GDP에서 수출이 23%를 차지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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