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은 사회적 지위에 정비례한다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소설이 세상 볕을 쬔 건 1854년. 지구촌 스티브들의 고된 노동 현장에 대한 세밀한 소묘는 8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여러 예술 매체로 재현·변주되곤 했다.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1936)에서 찰리 채플린(찰리 역)이 선보인 팬터마임 연기가 한 예다. 공장에서 나사 조이기를 반복하다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을 조이려는 강박증에 걸린 그의 모습은 기계복제 시대의 인간소외를 보여주는 탁월한 활동 이미지였다.
소설과 영화로 포문을 연 건 신간 '건강 격차'의 주제가 이러한 풍경과 무관하지 않아서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는 스티브와 찰리가 건강 악화로 기대 수명이 낮을 것임은 쉽게 짐작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관계를 실증해보인 경우는 드문데, 이 책이 바로 그것을 다룬다. "권력, 돈, 자원의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건강 격차(건강 비평형)를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며,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한 고민이 시급하다"는 게 이 책의 주제다. 부연하자면 노동 여건 격차야말로 건강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므로 물리적·정신적·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계층일수록 건강이 악화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잠시 저자 소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역학 및 공중보건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마멋은 건강 불평등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이 분야 연구 업적으로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Sir)를 받은 데 이어 영국의사협회장과 세계의사협회장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그간 건강 불평등을 다룬 책이 학계에서나 주로 언급되던 '블랙 리포트'(1980)라는 논문 정도였다면, 이 책 '건강 격차'는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 이유로 제시하는 건 여섯 가지. ①업무에 대한 높은 부담감과 낮은 통제력 ②노력과 보상의 불균형 ③사회적 고립 ④조직 내 불의 ⑤직업 불안전성 ⑥교대 근무제. 이 여섯 요인이 질병 위험을 드높이는 원인이며, 모두 해당될 경우 치명적인 건강 위협에 직면해 기대 수명이 추락하게 된다. 일례로 ①에 해당하는 사람, 즉 업무 긴장도가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관상동맥 심장병 위험이 34% 높았다. ②에 해당할 경우 심장병과 정신질환, 병결 가능성이 평균치 이상이었다.
절대빈곤을 넘어 상대빈곤을 해결해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직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가 평등하게 좋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책은 이를 위해 북유럽 복지국 등 여러 나라의 의료·복지 정책 현황을 두루 짚어본다.
그러면서 ①강요받지 않을 자유 ②고용계약 측면과 노동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직업 안전성 ③공정한 보수 ④일자리 보호, 복지 수당 접근성 증대(일과 삶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복지 정책) ⑤직장에서의 존중과 존엄 등이 우리의 일터에 필수 요건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정치적 구호를 배제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책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은 "소득의 상대적 불평등은 역량(존재와 행위의 자유도)의 절대적 불평등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여기서 '상대적 불평등'을 '건강 불평등'으로 바꾸어도 들어맞을 것이다. 이 세계의 '건강 형평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정독을 권한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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