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인수경쟁 이면 공-수 '파워게임'

이재운 입력 2017. 9. 2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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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델, 킹스턴..도시바 낸드사업부의 최대 고객사
수요자가 아쉬운 독과점 시장서 현재 판도 유지 목적
기술 협력 강화 통해 제품 경쟁력 높이겠다는 포석도
일본 가와사키현 소재 도시바 R&D 센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애플만 있는게 아니었다. 델, 씨게이트, 킹스턴… 처음 보는, 혹은 비교적 익숙치 않은, 그러나 규모가 상당한 미국 기업들이 도시바 낸드사업 인수경쟁에 이름을 올렸다. 당초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나섰고, 이들은 결국 SK하이닉스(000660)과 베인캐피탈이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힘을 실어주며 ‘세기의 인수 경쟁’에서 최종 결과를 결판지었다. 적어도 수 천억원 이상, 많게는 수 조원을 출자해가며 이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최대 고객사들, 팔 걷고 나서다

애플은 많이 알려진대로 도시바 낸드사업부의 최대 고객이다. 애플은 세계적으로 분기당 수 천만대, 연간 수 억대의 아이폰 출하량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인 업체다. 지난 2분기 출하량이 IDC 조사 기준 4100만대였다. 여기에 아이패드 시리즈는 물론 맥북 등 PC 제품까지 더하면 애플의 낸드 수요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이 도시바 낸드 인수 경쟁 주자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마지막 변수로 작용했다. 최대 고객사의 의중은 곧 인수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델과 씨게이트도 중요한 고객사다. 우선 델의 경우 PC와 서버 등에 직접 낸드 기반의 저장장치(SSD)를 탑재하는데다, 지난해 인수를 완료한 델EMC의 기업용 스토리지에도 상당한 양의 낸드 제품을 사용한다. 씨게이트는 현재 하드디스크(HDD)에 치우친 사업 비중을 낸드 중심으로 바꾸고자 차츰 낸드 기반 제품을 개발, 선보이는 상황이다. 킹스턴은 낸드 기반의 메모리카드(SD카드)를 만드는 업체다.

결국 하나 같이 이들은 도시바의 낸드를 공급받아 자신들의 주요 제품을 만드는 주요 고객사(수요자)들이다. 도시바와 어느 정도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셈이다.

◇수요자 서러운 독과점 시장, 현재 판도 유지 목적

이들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그것도 지분 확보나 경영권 참여에 제약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매력적인 카드가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선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입지가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나 트렌드포스 조사에서 세계 낸드 시장은 삼성전자(005930)가 40%에 가까운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2·3위를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4·5위를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용 제품에만 주력하는 6위 인텔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 5개 업체가 시장을 독과점하는 형태다. SK하이닉스는 과거 하이닉스반도체 시절 투자 재원 부족과 구조조정 등으로 비교적 낸드 시장 연구개발(R&D)이 늦었고, 이후 SK그룹에 인수되며 추격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독과점 시장은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지금도 이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수퍼사이클’을 타면서 공급자가 우위를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2위권인 도시바가 비슷한 입지의 웨스턴디지털의 영향력 안에 들어갈 경우, 수요자 입장에서는 협상력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의 점유율을 합치면 1위 삼성전자의 점유율에 육박하게 된
다.

여기에 웨스턴디지털이 실상 원천 기술의 많은 부분을 도시바에 의존하고 있는 점 또한 변수다. 상대적으로 도시바가 노하우를 갖고 그 동안 공동 운영하는 공장(일본 미에현 요카이치 소재)에서 생산을 담당해왔는데, 향후 기술 R&D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해질 소지도 있다. 이 점은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과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주요 기술 자산에 대한 웨스턴디지털 측 엔지니어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외부에도 비쳐진 바 있다.

결국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가면서, 어쩌면 껍데기만 있을지도 모르는 도시바 낸드사업 인수에 수요자들이 뛰어든 것은 궁여지책으로 풀이해야 할 부분이다.

◇기술 협력 통한 시너지도 도모

물론 궁여지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나 델, 킹스턴 등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은 앞으로 적극적인 제휴 강화·확대를 통해 낸드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보다 더 정교하면서 높은 성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애플의 경우 기술 제휴를 통해 그 동안 연동을 더 원활하게 하는 최적화 작업을 거치며 사용자에게 더 큰 만족도를 안겨줬었다. 다른 업체들도 역시 이런 식의 협업 강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결국은 대마불사라고 했던가. 물론 도시바는 원전 사업의 손실을 메꾸고자 ‘알짜 사업’을 내놨다고 하지만, 장치 산업의 특성상 대규모 설비투자가 계속 수반된다는 점에서 회계 부정 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도시바에겐 결국 버거운 존재이기도 했다. 낸드 시장의 ‘원조’는 이제 채권단과 모기업의 손을 떠나 과두 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고, 참여자들의 속내와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와 SK그룹 수뇌부의 묘수가 자못 궁금해진다.

지난 7월 충북 청주에서 열린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전문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출범식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성욱(오른쪽 여덟번째) SK하이닉스 부회장 옆으로 박정호(오른쪽 여섯번째) SK텔레콤 사장과 김준호(오른쪽 일곱번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SK하이닉스 제공

이재운 (j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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