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불편한 진실'을 해부한다

이주형 기자 입력 2017.09.22. 13:15 수정 2017.09.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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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두 사람은 세대는 다르지만 청소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안정효의 소설에 등장하는 ‘헐리우드 키드’ 까지는 아니었어도, <스크린>과 <로드쇼>같은 영화잡지를 꾸준히 구독하고(이주형) 심야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라디오에서 청취하며(안혜민) 처음에는 오락, 액션 영화에서 나중에는 예술 영화까지 차츰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영화들로 ‘감상 필르모그래피’를 넓혀갔습니다.

70년대생인 저의 학창 시절에는 장안의 화제작이라 해도 개봉관 한 곳에서만 그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람보2>는 종로3가의 피카디리 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고 <다이하드>는 단성사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없었던 시절, 모든 극장에는 서로 다른 영화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 영화를 시작하면 웬만하면 오랫동안 상영했습니다. ‘서편제’는 단성사에서 93년 4월10일 개봉해 10월22일 종영할 때까지 무려 194일 동안 상영됐습니다.

“90년대생인 안혜민 씨 때는 어땠어?”

“선배 때와는 달리 같은 영화를 어디서 볼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IMAX 포맷의 영화를 더 잘 보기 위해서 IMAX 전용관이 갖춰진 영화관을 선택하고, 음악이 중요한 영화를 위해서는 사운드 특화관을 찾는 것처럼요. 멀티플렉스의 시대가 오면서 영화관을 선택할 기회는 늘어났지만 영화를 선택할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어느 영화관에 가더라도 모두 같은 영화를 걸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2. 특별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는 저는 오락영화든 예술 영화든 스타일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혜민은 색깔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취향이야 어떻든 우리는 일정 규모 이상의 관객들이 찾는 한, 어떤 영화가 좀 더 많은 스크린에서 꾸준히 상영되길 희망합니다. 현실은 다릅니다. 하루 이틀만 방심하면 보려고 점 찍어뒀던 영화는 막을 내린 뒤입니다. (저는 영화를 가급적 극장에서 봅니다) 이런 현실은 -반론도 있지만- 한국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vertical integration)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수직계열화’란, 영화를 만들고(투자사•제작사), 극장에 배포하고(배급사), 상영하는(극장) 것까지 한 기업에서 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만든 영화일수록 내 극장에서는 더 많이, 오래 걸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겁니다.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요.

3. 최근 개봉했던 영화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으로 영화 팬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일 전국의 스크린수가 사상 최초로 2000개를 넘어섰습니다. 그날 전국에 있는 모든 스크린의 전체 상영횟수 중 55%가 ‘군함도’였습니다. 7월26일 ‘군함도’ 개봉 당일 부산 서면에 있는 CGV대한의 상영시간표를 한번 보지요. 27회차 중 단 1회차만 ‘수퍼배드3’에 배정됐을 뿐 나머지 26회차는 모조리 ‘군함도’를 상영했습니다. 이러면 그 지역 사람들이 근처에서 편하게 볼 영화가 사실상 ‘군함도’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군함도’는 CJ계열사가 투자, 배급(CJ E&M), 상영(CJ CGV)까지 맡아 ‘수직계열화’한 영화입니다.

4.물론 ‘군함도’ 개봉일에는 CJ와 더불어 영화시장 3대 과점 기업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각각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동원해 관객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을 거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수직계열화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는 방증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군함도’ 논란은 최근 국회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화산업에서의 대기업 규제 움직임에 새로운 불쏘시개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문화부장관이 된 도종환, 안철수 의원 등은 지난해 10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영비법 개정안)을 내서 대기업이 영화 상영업과 배급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하자고 발의했습니다.

5. 한국영화산업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에 대해서는 몇몇 논문이 나와있습니다. 결론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경제학자들) 수직계열화가 다양한 영화 상영과 관람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주장과 ‘과학적으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라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언론은 대체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비판하는 쪽이죠. 하지만 최신 통계에 바탕 한 논문이나 구체적인 분석 기사는 아직 없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2014년 12월22일 이후 ‘멀티체인별 상영 현황’이라는 통계를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산업에서 독과점 현상이 심화한 최근 3년 간의 최신 통계를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극장은 과거보다 수십 배 이상 많아졌는데 보고 싶은 영화는 보기 더 힘들어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갖게 된 영화 팬으로서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최근 블록버스터의 기준이 되다시피 한 ‘천만 영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안혜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6. 위에서 선배가 말씀하신 ‘군함도’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군함도’는 개봉 당일 2,027개의 스크린을 차지하며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갖고 있던 전국 스크린 수 1,991개의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던 관객들은 매우 화가 났거나 최소한 실망했겠죠. 당시에는 ‘덩케르크’의 관객들이 그랬을 겁니다. ‘군함도’가 개봉하기 전까지 ‘덩케르크’는 전국에서 하루 평균 7,157회 상영됐습니다. 하지만 6일 뒤 ‘군함도’가 개봉하자 그 주에는 평균 2,011회로 뚝 떨어졌습니다. 10,418회 상영된 ‘군함도’와는 5배 정도나 차이가 납니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덩케르크’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개봉 6일이 지난 후에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관객이 몰리는 주말 연휴의 좌석점유율을 보면 개봉 1주차를 제외하고는 2주차부터 5주차까지 ‘덩케르크’의 좌석점유율은 ‘군함도’의 좌석점유율보다 항상 높았습니다. 개봉 3주차부터는 관객수도 역전합니다. 3주차 ‘덩케르크’의 관객수는 평일 평균 61,145명, 주말 평균 54,296명으로 군함도의 평일 60,543명, 주말 41,319명보다 많습니다. 새 영화가 들어오니까 (관객 선호와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앞 영화를 밀어냈다고도 볼 수 있죠.

7. 1년이면 30일은 ‘좌석 독과점’

 이렇게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4년 전인 2013년에는 ‘일간 1위 영화’(당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가 전체 좌석 중 60%이상을 차지하는 ‘좌석 독과점’이 발생한 날이 6일에 불과했습니다. 이 수치가 2015년에는 14일로 늘어나더니, 작년에는 30일로 급증했습니다. 1년이면 한 달은 특정 영화가 60% 이상의 좌석을 점유하는 겁니다. 올해도 8월 2일 기준 이 같은 ‘좌석 독과점’에 이른 날이 전체 217일 중 18일로(365일로 치면 30일) 작년과 사정이 비슷합니다. ‘잘 나가는’ 또는 (내가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기 때문에) ‘잘 나가야만 하는’ 영화의 좌석 독과점이 심해지면서 피해를 보는 쪽은 관객입니다. 여전히 ‘덩케르크’를 보고 싶은 관객이 많지만 손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영화는 ‘군함도’로 제한된 것처럼 관객들의 선택권이 침해 받는 일이 잦아지는 거죠. 뭔가 천만 영화의 비밀에 조금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드시나요?

8. 천만 영화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이 만든다?

우리는 또 지난 2005년부터 올해까지,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영화들이 확보한 스크린 수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과거에는 흥행 영화가 차지했던 스크린수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연도별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2009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1,154개의 스크린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흥행영화라 할지라도 평균 541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흥행영화 중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영화의 비율이 증가합니다. 2012년에는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한 흥행영화의 60%(5편 중 3편)가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더니 2014년 63%(8편 중 5편), 2015년 92%(12편 중 11편), 2016년 90%(10편 중 9편), 그리고 올해는 500만 이상을 동원한 7편(택시운전사, 공조, 스파이더맨:홈 커밍, 군함도, 청년경찰, 더 킹, 미녀와 야수) 모두 1,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이 흥행영화로 가기 위한 일종의 필수조건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만 영화들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총 19편의 영화가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2005년 이전의 전국 통계는 배급사의 협조가 있는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2004년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와, 2003년 개봉한 ‘실미도’는 제외하고 17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분석해봤습니다. 이 중 1,000개 미만의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는 1/3 남짓한 6개에 불과합니다. 2013년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 (두 편 다 ‘非대기업’ 배급사인 NEW에서 배급) 2 편만 빼면 2012년 이후에는 ‘천만 영화’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500개 미만의 스크린으로 천만 영화에 등극한 영화는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가 유일합니다.

9. ‘초반 싹쓸이’와 ‘치고 빠지기’가 대세?

우리는 이번에는 연도별 천만 영화 돌파에 걸린 시간의 추이도 분석해봤습니다. 2005년 ‘왕의 남자’는 66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후 2006~2014년까지 약 9년 동안에는 30일 대를 오르내리다가 2015년(‘베테랑’)에 천만 관객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30일 이내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부산행’)와 올해 (‘택시운전사’)는 19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천만 관객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설명 드렸습니다. 개봉 초기에 엄청난 수의 스크린 수를 동원하면서 ‘초반 싹쓸이’하는 전략 (전문용어로 ‘와이드 릴리즈’라고 부릅니다)을 쓰기 때문입니다.

10.뿐만 아니라 수직계열화한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투자, 제작하거나 배급한 영화는 자신들의 상영관에서 평균보다는 좀 더 틀어주는 ‘미풍양속’도 갖추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의 박스오피스 기준 상위 100위에 드는 영화를 모두 조사해봤더니, 해당 영화들의 전체 상영 횟수 중 42.7%는 CGV에서, 31.8%는 롯데시네마에서, 21.2%는 메가박스에서 같은 3대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상영했습니다. 자체 배급한 이른바 ‘수직계열화’ 영화는 어떨까요? CGV는 같은 CJ계열사인 CJ E&M이 배급한 영화를 평균보다 0.3%p 높은 43.0%의 비율로 더 상영했고, 롯데시네마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를 38.4%(6.6%p 차이), 메가박스는 자체 배급한 영화를 26.5%(5.3%p 차이)의 비율로 상영했습니다. 다들 자체 배급 영화는 자신들의 상영관에서 좀 더 ‘배려’했다는 거죠.

11.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와이드릴리즈’와 ‘수직계열화’를 통해 우리는 좀 더 빈번하게 천만 영화를 만날 것입니다. 이런 천만 영화가 빈번해질수록 우리가 천만 영화가 아닌 영화를 보기는 더 힘들어지겠죠. 관객뿐 아닙니다. 영화관의 스크린은 한정되어 있고 이를 두고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기에, 피해를 보는 영화 제작자들도 늘어날 겁니다. (그렇게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에 유의미한 수의 독립 영화제작자는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적지 않은 영화들이 모두 비슷한 요소를 갖춘 ‘천만 영화’를 향해 질주한다면 관객의 피로도도 증가하겠죠. 비슷한 영화들이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그 영화의 빈자리를 어디서 본듯한 또 다른 영화가 차지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과연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12. 우리는 이렇게 ‘천만 영화’의 비밀, 아니 ‘불편한 진실’을 마주쳤습니다. 관객 동원 1위 영화의 일별 좌석점유율 60% 이상인 날이 3년 만에 5배나 늘었습니다. 일간 1위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60%에서 상영되는 날이 1년이면 30일 이나 됩니다. 스크린 독과점 얘기가 이미 나오고 있었던 2013년에도 6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1위 영화의 상영회수와 좌석점유율, 매출액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천만 영화’는 이렇게 탄생하고 있습니다.

13.영화는 전형적인 경험재(experience goods)입니다. 실제로 서비스나 상품을 사서 사용한 뒤에야 비로소 효용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일단 영화를 봐야 좋든 싫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다양한 영화들을 볼 기회 자체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취향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지금의 취향을 넘어서 세련된 취향을 계발할 여지도 없어지죠. 멀티플렉스에서 얘기하듯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상영관을 많이 배정한다는 말이 맞기도 하지만 전부 맞는 것은 아니기도 한 지점입니다.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지나치게 많이 배정하니까 그걸 볼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취향이 발전하지 못하고 고착화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또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도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경험의 중요성을 일러줍니다.

14.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예술영화의 나라’ 프랑스도 수직계열화한 3개의 멀티플렉스 체인이(CGR, UGC, 고몽 파테)이 전체 수익의 52%를 차지합니다. 파리 지역만 보면 전체 수익의 89%를 가져가죠. (이런 가운데서도 파리의 88개 영화관 중 33개가 독립영화관이라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일본도 도호(東寶)시네마와 도에이(東映)같은 대기업이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까지 겸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한국과 좀 다릅니다. 올 상반기 일본 최대 흥행작인 ‘미녀와 야수’의 스크린 점유율은 22%에 불과했습니다.

15. 지난 8월 초 일본의 CGV격인 도호시네마 도쿄 신주쿠점의 사례를 한번 살펴봤습니다. 12개 스크린에서 상영한 영화는 모두 18편, 도호 시네마 도쿄 신주쿠점 부지배인 스즈키 씨의 말입니다.

“스크린 12개에서 25~30편을 늘 상영하고 있습니다. 최고 인기 영화도 가장 좌석수가 많은 스크린과 두 번째로 많은 스크린에서 횟수를 늘려서 상영합니다. 그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하나의 작품이 독점해버리면 다른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고 결국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보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죠. 도호그룹 회사의 영화라는 이유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수요가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컨셉이기 때문에 특별히 (계열사 영화를)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16. 일본의 유명 영화평론가 오오다카 히로씨에게도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법률로 제한하는 문제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좀 더 상황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도 금방 이런 시스템이 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경험치가 큽니다. 결국 영화관의 수익이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올라가지 않을 것인가가 중요한 겁니다. 타사 영화인가 자사 영화인가는 최종적으로 관계가 없어져요.” 하지만 그도 영화라는 문화 상품의 특수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지를 갖고) 꾸준히 상영해야만 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문제작이라든가...이런 영화는 첫 주, 둘째 주에 끝나면 안 되고, (적은 스크린에서도) 꾸준히 장기간 상영해야 합니다. 장르라든가 내용이라든가 영화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걸 충분히 고려해서 상영하지 않으면 전체 수익도 오르지 않고, 또 영화는 문화이기 때문에 상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도 있어요. 그런 영화는 확실히 상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스크린 수를 많이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라는 것은”

17. 일본 영화산업 역시 수직계열화한 대기업들이 있는데도 한국처럼 극심한 스크린독과점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일본 특유의 남의 눈을 의식하는 문화에 기인한 점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도 적당히 염치는 차리며서 살면 안될까요) 게다가 일본의 영화산업은 한국에 비해 침체돼있어 오히려 한국 영화의 소재적 다양성이나 완성도, 스케일을 부러워하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최근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은 상당 부분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경영 활동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크린독과점이 지속되고 심화하면 한국영화는 어느 순간 획일화의 덫에 걸려들 공산이 크고,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그걸 딛고 일어설 싹조차 짓밟혀 사라진 뒤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패션이나 음악처럼 창작자가 필요하며, 또한 재생산이 필요한 산업이다.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 산업 전체는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모두가 H&M과 자라에서 옷을 산다. 하지만 새로움을 가져다 주는 독립 크리에이터들 없이는 쇼핑의 즐거움은 점차 희미한 것이 될는지 모른다"

피에르 코프(파리1대학 교수, 변호사) 보고서 <집중화에 대항하는 영화계: 프랑스 영화산업 내의 독립 경제 활동에 가해지는 위협들(2016.6.)> 中

글 이주형, 안혜민
데이터분석 안혜민
디자인·개발 임송이
일본 취재·번역 최호원             

이주형 기자joole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