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정부 과잉개입은 개혁 마중물.. 빠른 정상화가 성공 관건"

오승훈 기자 2017. 9. 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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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인터뷰를 마친뒤 옥상 정원에 올라가자 대기업 빌딩들이 있는 도심을 보며 “건강한 시장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변화에 필요한 마중물 역할을 일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득주도 성장만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고, 혁신성장의 주체가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명제” 라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54)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취임 100일의 소감을 묻자 “위기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의외였다. ‘경제 검찰’의 수장으로 연일 경제계의 ‘갑(甲)질 청산’을 진두지휘해온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이 아닌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필두로 기업들을 향해 일자리 늘리기 압박,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지배구조 개선 주문, 유통 규제 강화 정책을 쏟아내는 데 논리를 제공한 ‘디자이너’이기도 한 그다. 무엇이 지난 6월 14일 취임한 이후 거침없이 내달려온 그를 짓누르는 것일까.

김 위원장과 마주한 건 지난 11일인데, 그는 “오늘 인터뷰를 정말 취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언론에는 김 위원장을 겨냥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재웅 다음 창업주의 쓴소리가 보도됐다. 김 위원장이 한 인터뷰에서 ‘총수 지정’ 논란이 일었던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에 대해 “스티브 잡스처럼 우리 사회에 미래 비전 같은 걸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이 창업주와 안 대표에게서 “오만하다”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즉시 “매서운 질책을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사과했고, 그날 오전 국무회의에서도 장관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일일이 인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개 숙여놓고 다시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게 그로서는 더한 오만으로 비칠 수 있음을 걱정한 거였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따로 있는 듯했다. 그는 “정말로 잘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개혁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는 위기감”이라고 했다.

“참여정부는 너무 조급하게 생경한 수단으로 기업인들을 몰아쳐 재벌개혁에 실패했다. 개혁은 예측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참여정부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후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는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대한 난상토론 같았다. 부작용을 ‘직문’하자, 거침없는 ‘직답’이 돌아왔다. 거기에는 김 위원장 스스로의 다짐과 경계도 들어 있었다. “지금은 정부의 역할이 표가 나지만,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느냐에 새 정부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김위원장의 언급이 그러했다.

―지난 21일로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소회는.

“솔직히 지난해 말 촛불과 탄핵 상황이 없었다면 나는 그냥 교수로서 정년할 때까지 시민운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훈수꾼’으로만 있는 것은 지식인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다. 예상했지만 두 달간 인수위가 없는 정부가 이렇게 힘든 핸디캡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새 정부는 사실 아직도 완성이 안 됐다. 처음에는 어찌 됐든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통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이제부터는 성과로 그 기대에 답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다. 매우 어렵다. 그게 위기감이다.”

―그동안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이 재벌개혁을 위해 구조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압박하면서 바로 치고 들어가는 것을 예상했을 텐데, 뜻밖에 갑을(甲乙) 문제에 우리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드렸고, 그것이 많은 국민에게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우려했던 분들의 걱정은 완화됐고, 기대하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새로운 정부에 기대를 가지게 한 것을 나름대로 스스로 위안할 수 있겠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성과 중 첫 번째가 치킨값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사실 치킨값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냥 상징적인 것이고 가맹점과 유통 등 우리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어공’이 됐다고 했는데, 시민운동 할 때와 행정을 맡은 수장으로서 차이점이 많을 것 같다.

“아직도 적응해 가는 중이다. 시민운동을 할 때는 우리 사회의 현실보다는 한 걸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멀리 나가면 안 된다. 한 걸음 나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목표도 제시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행정은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안 되는 자리다. 그리고 말한 것은 성과로 실현해야 하는 책임이 훨씬 큰 자리다. 그게 차이다. 나는 스스로 아직 완전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챔임자와 관련된 논란은 메시지를 좀 더 적절한 방식으로 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확실하게 다짐했다. 공정위는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시장 감독기구이며 매우 큰 권한과 책임을 진 부처이고, 그 말의 무게도 과거 시민운동 할 때와는 무척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 권한에 맞는 단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시민운동을 할 때 “나는 시장주의자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정부 규제 핵심기구의 수장이 됐다. 현재 정부 주도 경제가 과한 것 같다.

“시장이냐 정부냐는 경제학 역사에 있어 영원한 과제다. 정답이 있겠는가. 나는 케인스주의자이지만 관치주의자는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정상적일 때보다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지 시장의 역할을 뺏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치로 시장을 제어하는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어떤 케인스주의자냐고 묻자, ‘자유방임의 종언(1926년)’에 나온 팸플릿 일부분을 소개했다. ‘이 시대 경제학의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고, 정치의 역할은 그 정부가 할 일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그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수위를 지키는 게 쉽진 않다. 그렇지만 내 개인과 공정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시장에 맡겨야 할 일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하게 하는 게 내 목표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을 유효 수요의 부족에 있다고 진단하고, 정부의 역할(재정수단)을 강조했다.

―지금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정부 주도다. 유효 수요를 만들기 위해서 풀라, 하라, 말라, 넣으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럴 수 있다.”

―시장 실패도 있겠지만, 정부 실패도 있다.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경제학의 본질 측면에서는 아직 시장경제체제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인데 일부에서는 계획경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평가도 한다.

“경제정책이 정말 어려운 것은 단·중·장기의 과제와 수단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급한 케인스 표현은 장기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장기적인 로드맵을 따라가더라도 단기적으로 본다면 그 상황에 필요한 조치가 있다. 변화는 아주 완만한 수렴의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는 위로, 아래로 과잉조정을 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이 적정한 수준, 균형으로 가는 변화의 여정에서 조금은 정부의 개입이 과잉조정되고 있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뭔가 동력이 필요한 것이고, 지금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은 마중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위해서 지금은 균형 수준보다 강화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케인스가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고 말했다. 지금 상황이 지속하면 너무 많은 국민이 고통에 허덕이게 되고, 그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마중물과 어떤 추동력이 필요하므로 일정한 정부의 역할이 표가 나는 것이다. 다만,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는 노력을 하느냐가 새 정부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정부 주도의 작금의 상황이 한시적인 하나의 과정이라고 해석해도 되는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최근 최저임금 대책이 나왔을 때 3분의 1 정도를 정부의 재정 보조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데, 내가 담당 부처 장관은 아니지만 이렇게 답변한다. 민간 부분의 임금 부담을 정부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이것은 마중물로 한시성을 갖는 것인데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느냐가 이 정부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그런 생각은 청와대 장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김수현 사회수석 등과도 공유가 된 것인가.

“정부 초반에 대통령 비서실 소속 분들과는 인수위 없이 출범한 정부이기 때문에 정책 방향을 설정할 때 토론을 많이 했다. 당연히 나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가 개혁을 위해서 방향, 속도와 완급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압박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계속되고 장기화하면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물론 그런 것들은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의 역량과 또 한편으로는 외부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그 타이밍과 강약을 조절하는 게 정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자주 썼던 표현이 있다. 정책(Policy)은 과학(Science)이 아니라 예술(Art)이다. 이것은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범정부적인 차원은 국무회의 같은 곳에서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요즘 국무회의 분위기는 어떤가.

“새 정부의 기조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는 게 국무회의 자리인 것 같다. 청와대에선 장 정책실장이 자주 ‘아재 개그’로 분위기를 띄우는데, 아재 분위기에 맞는 분들만 모여 있으니 즐거워한다고 한다(웃음). 나는 국무회의 때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공정위가 아닌 다른 부처의 사항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께서 워낙 농담을 잘하지 않는가. 어느 날 총리께서 세종시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는데, 하필이면 나는 그날 서울에 일정이 있어 영상회의를 했다. 이 총리는 ‘공정위원장이 하도 날카로운 지적을 많이 해서 제지를 하려고 내려왔는데, 공정위원장은 서울로 도망갔다’고 하더라.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어공이 되면서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관료 시스템에서는 부처 간 칸막이가 너무 높다. 남의 부처, 남의 업무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다. 그러면 정책의 패키지(통합운용)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그것을 드러내는 능력, 결국은 컨트롤타워의 능력,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 경제정책 문제도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기업 현안으로 넘어갔다. 김 위원장은 시민운동 시절 ‘대기업 저격수’로 불렸던 인물이다.

―공정위에 최근 ‘기업집단국’이 신설됐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단순히 부당지원행위를 조사하고 제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런 조사를 통해서 우리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도 개선 즉 정책적으로 연결하는 기능까지 결부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 국에 5개 과를 둬서 주식시장 공시를 점검하고, 이를 통해 사익 편취가 있는지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섣부른 정책이 아니라 실태 파악을 전제로, 그중에서 위법 혐의가 있으면 당연히 조사하고 제재해야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정보로 제도 개선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과 지배구조 문제를 공정위의 제재 수단만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게 문제다. 개혁은 여러 수단으로 결합해야 하는데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든 경제집중 문제든 근본적으로는 상법, 금융법, 세법에서 일정 부분을 해결해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공정위가 크게 안 나서도 된다. 여러 제도로 경쟁을 촉진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독점과 같은 경제문제에 대중적, 선정적으로 접근할 때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사법 상법 개정을 통해 시장의 집중을 제거하고, 금융기관이 제대로 돌아가고, 세법이 합리적으로 작동하면 공정위가 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런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공정위 보고 ‘다 때려잡아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30년 동안 재벌개혁에 대해 논의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렇게 접근했기 때문에, 선정적으로 또는 결과로서 공정위에 모든 것을 떠맡기는 식이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이 지적한 문제는 지주사 전환 제도에도 걸려 있다. 공정거래법(제8조)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자회사가 상장법인일 경우 자회사 발행 주식 총수의 20%, 비상장법인일 경우 40% 이상을 소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래 지분율 요건은 각각 30%, 50%였는데,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에 이를 완화해 대기업들의 지주사 전환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주회사 제도가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확장 수단 등으로 변질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국회에서는 상장 자회사 의무 보유 지분율을 완화 전으로 되돌리는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기업 지배구조의 문제로 순환출자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또 계열사 간 리스크 전이를 막으려는 명분으로 지주사 전환을 장려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을 어렵게 규제하려 한다. 왜 그런가.

“공정거래법보다는 법인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대한 과세특례인 익금불산입(세법상 이익에 포함되지 않게 하는 것) 제도를 개선해 지주회사가 스스로 자회사 지분율을 높게 유지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현재는 지분율이 낮은데도 세제 혜택을 많이 주고 있는데 세금을 더 내게 해야 한다. 과세 구간을 좀 더 촘촘하게 만들어서 자회사 지분율이 높을수록 세금 혜택을 더 얻도록 유인구조를 만드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시민운동 시절 삼성그룹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공직자 신분이 된 이후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현재 삼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대놓고 물었다.

―이제 삼성은 어찌해야 하는가. 소유-경영 분리가 항상 정답은 아니지 않은가.

“이 부회장이 자유로운 신분이라 해도 국내 50개 계열사와 해외 400개 회사의 결정을 어떻게 다 하겠는가. 대부분 회사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삼성그룹이 커졌다. 각 계열사 차원의 경영을 그룹 차원에서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느냐, 있다면 그것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이냐의 문제이지, 사주냐 전문경영인이냐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공식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게 문제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는 다양한 형태의 기업집단이 존재한다. 지주회사도 늘고 있지만, 순환출자 기업집단도 꽤 많다. 여기에 작동하는 유럽의 시스템이 바로 ‘듀얼 어프로치’다. 법적 조직이든 아니든 삼성의 미래전략실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지만, 컨트롤타워에서 내린 결정을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다시 검토하고 승인하는 절차가 동시에 갖춰져 있다. 유럽 기업의 경우 각 계열사나 주요 계열사 차원에서 주거래은행과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라는 통제장치가 있다. 그래서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에서 내린 일차적 결정이 일방적으로 각 계열사에서 통용되지는 않는다는 사회적 신뢰가 있다. 우리도 우리 현실에 맞는 듀얼 어프로치를 고민해야 한다. 컨트롤타워 기능을 유지하되 그 컨트롤타워가 내린 결정을 계열사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독립적 리뷰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아도 그룹 유지가 가능하다.”

―공정위의 법집행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할 항목 가운데 기업분할명령제가 포함돼 있어서 논란이 됐다.

“기업분할명령제는 기업 관련 법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논의 항목이다. 또 그것은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이다. 기업분할명령제라는 수단은 다른 것 다 써보고 도저히 안 됐을 때 쓰는 마지막 조치인데, 미국 경우에도 1982년 이후 한 번도 발동이 안 됐다. 일본도 1975년에 제도를 도입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이 안 됐다. 우리나라에 기업분할명령제가 도입돼야 하지만 이게 도입됐다고 해서 바로 꺼내서 휘두를 그런 수단이 아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기업분할명령제는 사실 법이 되기 어렵다. 원가 공개보다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4개월여 동안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만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확충 압박, 법인세 인상, 지배구조 개선 주문 등을 했다. 아마 기업인이라면 4년이 지난 듯한 느낌을 가졌을 폭풍의 시기였다.

―기업인 입장이라면 요즘 같은 때 기업 할 맛 나겠는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강하게 주장하는 게 있다. 공정 성장 내지는 소득주도 성장만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다. 혁신 성장 있어야 하고, 그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한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명제다. 이 부분에 관해서 기업인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너무 기업을 몰아붙이는 게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 방향의 틀이 잡혔다. 역대 정부들이 모두 규제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이번 정부의 추진안이 가장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다. 규제개혁과 금융개혁 관련 법들이 구체화되면 기업인이 느끼는 부분들이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다.”

―초반의 강한 드라이브에 기업들이 지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우리가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게 있다. 참여정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때는 너무 조급하게 생경한 수단으로 기업인들을 몰아쳤던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법적인 수단을 갖고 하는 게 기업개혁이 아니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기업개혁은 예측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참여정부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는 것과 함께 기업 경영 방어권 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책은 곧 정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간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나는 언젠가는 도입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러려면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또 삼성도 변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도 마찬가지다. 그게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걸 위해선 대기업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 없이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도입될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은 정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터뷰 = 오승훈 경제산업부장 oshun@munhwa.com

정리 = 박민철·박준우 기자 mindo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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