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해진' 트럼프 '다카 폐지' 카드 빼들다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입력 2017. 9.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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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바닥인 트럼프의 反이민 정책 옹호 지지층 결집 의도

“매우 영리한(smart) 결정이다.” “트럼프가 의회로 공을 넘기는 것을 보니, 이제야 워싱턴 정치를 배운 것 같다.” 지난 9월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이른바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하자 미 정치 평론가들이 내놓은 말이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실제로 미국이 조국이나 다름없는 약 80만 명에 달하는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기존 행정명령을 폐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일이다. ‘다카’ 프로그램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만든 제도로, 불법 체류자 자녀들이 추방의 공포에서 벗어나 학교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당시 오바마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라도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다며 이 제도에 ‘드리머(Dreamer)’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임 대통령으로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관해 거의 말을 아끼던 오바마조차 이날 장문의 성명을 통해 “오늘 우리의 우수한 젊은이 중 일부에게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졌다. 이들에게는 어떤 잘못도 없으므로 이들을 겨냥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다카’ 폐지는 “잔인하며, 자기 패배적인 결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할 정도다.

‘다카’ 폐지 결정 의회에 넘긴 트럼프

그런데 왜 정치 평론가들은 트럼프의 이러한 결정을 ‘영리’한 결정이라고 분석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은 쏙 빼버리고 공을 미 의회에 넘겼기 때문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제프 세션스 미 법무부 장관은 이날 폐지 발표 회견에서 “우리는 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카 프로그램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반(反)이민 정책’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공약이다. 하지만 세션스 장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카 프로그램은 헌법 위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이민 정책은 법률로 규정돼야 하는데,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불법 체류 청소년의 추방을 유예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회에 “향후 6개월 안에 이에 관해 법률을 명확히 하라”는 공까지 떠넘겼다.

세션스 장관을 앞세운 트럼프도 상당히 노련해졌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부모들의 행동 때문에 대부분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을 처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 불공정한 시스템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즉, 자신도 청년들의 처벌은 원하지 않으며, 당장 ‘다카’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많은 혼란이 생기는 만큼 6개월의 시간을 줬으니 의회가 결정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관해서는 그가 소속된 공화당은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민주당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다카’ 프로그램 폐지만큼은 그렇게 쉬운 사항이 아니다.

당장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과 당 중진인 존 매케인(애리조나), 제프 플레이크(애리조나) 상원의원 등이 ‘다카’의 유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중진 정치인인 이들이 적극 ‘다카’ 폐지에 동조했다가는 밀려오는 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공화당 지도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트럼프는 이러한 기류를 오히려 활용하는 양상이다. 자신은 공약 사항을 다 지켰으니, 이제 공화당이 행동에 나서라는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공화당 내부의 갈등이나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으로 새로운 이민법이 제정되지 못하더라도, 이를 의회의 책임으로 떠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공약을 지키면서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9월5일(현지 시각)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트럼프의 ‘DACA 폐지’ 지시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 사진=AP연합

 

공 넘겨받은 공화당, 내부 분열 우려도

다혈질인 트럼프가 스스로 총대를 메고 ‘즉각 폐지’를 선언할 줄 알았던 공화당으로서는 뜬금없이 무거운 공을 넘겨받은 셈이다. 그것도 전체 이민법 개혁이 아니라, 트럼프가 ‘다카’를 던지는 바람에 모양새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공화당은 만만찮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다카’ 폐지를 현재는 논의할 생각도 없었다. 현재 미 의회에는 내년도 예산안, 부채한도 증액안 등 복잡하고 민감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와중에 민감한 ‘다카’ 프로그램 폐지까지 논의한다면 이전에 ‘오바마 케어’ 폐지 과정에서 드러났던 공화당 내부 분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특히, 트럼프는 의회에 6개월(내년 3월5일) 안에 해결하라고 시한까지 못 박았다. 내년 11월이면 미 의회 중간선거가 열린다.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다카’ 프로그램 폐지와 축소에 동의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역풍이 우려되는 결정에 선뜻 나서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논의 자체가 공화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은 이 과정에서 별 손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다카’가 폐지되지 않는다 해도 의회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의회를 공격해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할 무기를 얻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러한 승부수를 들고나온 이유도 최근 국정 지지율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자신의 ‘반이민 정책’을 옹호하는 지지층을 더욱 단단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결정이 언제까지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가 ‘다카’ 폐지 결정을 발표한 당일부터 워싱턴DC를 비롯해 동부 뉴욕에서 서부 로스앤젤레스까지 미국 전역에서 ‘다카’ 폐지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애플의 팀 쿡이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IT 기업들도 ‘다카’ 폐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미국 내 15개 주와 컬럼비아특별구(워싱턴DC)의 법무 당국이 뉴욕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연방정부의 ‘다카’ 폐지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들도 ‘다카’ 혜택을 받는 이민자들이 기업 이익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다며 이들 주정부의 제소를 지지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 결집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트럼프의 의도대로 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다.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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