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려 했는데…” 유서
검찰 “조사·소환 대상 아냐”
경영비리 의혹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김인식 부사장(65)이 21일 숨진 채 발견됐다. 김 부사장은 분식회계·채용비리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하성용 전 KAI 대표(66)의 고교 동창이다.
주요 임원들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하 전 대표의 측근인 김 부사장이 숨지면서 KAI 수사는 중대 기로에 섰다. 검찰은 21일 수억원대 횡령 등 10가지 범죄 혐의를 적용해 하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부사장은 이날 오전 8시40분쯤 숙소로 써온 경남 사천시의 한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공군 준장 출신인 김 부사장은 2006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재 사무소장으로 KAI 근무를 시작했다. 하 전 대표 재임 중인 2015년 말부터 해외사업본부장을 맡아 수출사업 전반을 총괄했다.
김 부사장은 자필로 쓴 A4용지 석 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한 장은 하 전 대표와 직원들에게 남긴 것으로, 김 부사장은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 회사 직원분들께 누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언급했다. 나머지 두 장에는 가족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심경을 밝힌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사장은 이라크에 출장 갔다가 서울에 들른 뒤 20일 저녁 사천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숙소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시간과 시신 상태로 미뤄볼 때 김 부사장이 21일 새벽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사장은 현재까지 검찰 조사를 받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관계자는 “KAI 수사와 관련해 김 부사장을 조사하거나 소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이 사망한 이날 검찰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이모 KAI 경영관리본부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지난 4일에 이어 두 번째로 기각됐다.
지난 19일 하 전 대표를 소환해 20일 긴급체포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하 전 대표의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하 전 대표는 과거 재무부서 임원으로 재직 중 부산지방국세청이 정모 전 KAI 대표에게 부과한 3억7000만원 상당의 소득세를 회삿돈으로 대신 납부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하 전 대표는 다른 임원과 함께 2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려 정 전 대표에게 사적으로 빌려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정 전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정 전 대표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 전 대표는 다른 혐의도 많이 받고 있다. 하 전 대표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등과 관련해 하청업체로부터 물건을 인도받기 전에 비용을 먼저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천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주식회사 외부감사법 및 자본시장법 위반)를 받고 있다. 공군 고등훈련기 T-50 등에 납품하는 장비 원가를 부풀리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사기)도 있다.
검찰은 친박계 의원의 동생인 케이블방송 고위간부와 전 공군참모총장, 경찰서·지방자치단체 고위공무원 등이 연루된 채용비리(업무방해 및 뇌물공여)에 하 전 대표가 개입한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유력 인사들이 KAI 관련 의혹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정·관계 로비 의혹도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