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에도 웃음 지키는 '적응왕'..KIA 팻딘 "10승보다 우승이 하고 싶다"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7. 9. 2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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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투수 팻딘이 20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광주 | 김은진 기자

팻딘(28·KIA)은 올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승운 없는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중 다른 투수들은 갖지 못한 한 가지를 가졌다.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게 될 ‘그날’에 대한 희망이다. 승리가 날아가도 팀이 이기며 끝날 때면 보여주는 환한 미소가 올시즌 팻딘의 최우선 목표를 확실히 설명해준다.

20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난 팻딘은 “야구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기는 스포츠다. 던지면서 내 승리를 욕심내면 정작 가장 중요한 팀 승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올해 승수는 적어도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드는 피칭은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올시즌이 내게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승수는 쌓지 못했어도 KIA가 10개 팀 중 가장 많이 이길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팻딘은 2017년을 풍성하게 느끼고 있다.

■불운? 야구는 원래 혼자 못하는 것

데뷔전부터 강렬했다. 4월1일 대구 삼성전에서 팻딘은 7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7-0으로 앞서던 9회에 동점을 내준 KIA는 연장전 끝에 2점을 얻어 9-7로 승리했다. 팻딘은 첫승에 실패했지만 KIA는 이겼다. 지금 보면 올시즌 팻딘이 겪을 ‘운명’의 예고편과 같았다.

팻딘은 올해 27차례 선발 등판해 15차례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다. 올해 KBO리그 데뷔 투수 중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8승에 머물고 있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와도 불펜에서 뒤집히는 경기가 잦았다. 시즌 내내 타격이 폭발하던 KIA에서 가장 득점지원을 받지 못한 선발이다. 승승장구하는 헥터와 양현종 사이에서 더 대조돼 외국인투수로서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었지만 팻딘은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했고 로테이션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구위가 저하돼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극복해 후반기를 최강자로 출발하기도 했다. KIA가 시즌내내 선두를 지키게 한 숨은 주역이다.

후반기만 놓고보면 팻딘은 10경기에서 3승1패 평균자책 3.50으로 원투펀치 사이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9월에는 3경기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다시 대역투를 펼치고 있다. 그래도 9월 승리는 1승뿐. 여전히 ‘승운’은 잘 와주지 않는다. 팻딘은 “이기고 지는 것은 어느 팀에서든 원래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경기 등판해 내가 잘 던졌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며 “불펜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내가 최선을 다한 것처럼 뒤에 등판한 투수들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직업으로 야구를 하면 그런 것들은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씩씩한 팻딘, 미소의 비결은 적응력

처음 만난 한국 생활. 외면하는 승운 속에서도 외국인선수로서 위축되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초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생활 방식에 있다. 팻딘은 경기중 상황에도, 살아가는 환경에도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편이다. 자는 시간만 빼고 통역직원과 함께 해야 하는 보통 외국인선수와 달리 팻딘은 혼자 뭐든지 잘 한다. KIA 외국인 선수 통역을 전담하는 도영빈 씨는 “휴일이면 알아서 고속버스표를 끊어 이곳저곳 여행하고 온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고 지쳐있었던 전반기에도 올스타 휴식기 사이 하루 제주에 다녀온 뒤 기운을 얻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지금은 개학해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뚜벅이 여행’을 하며 한국을 알아가는 것이 팻딘에게는 정신력 회복에 큰 힘이 됐다. 팻딘은 “야구하지 않는 날에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어 돌아다닌다. 한국에는 경치 좋은 사찰이 많아 다녀오면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야구에 집중할 수 있다”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면 혼자서도 어려움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다녀온 부산의 해동 용궁사를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팻딘이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심지어 닭볶음탕이다. 팻딘은 “평소에는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좋아하는데, 올스타 휴식기에 무등산에 올랐다가 산중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던 닭볶음탕을 잊을 수가 없다. 분위기도, 맛도 최고였다”며 “당연히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고 마치 한국인처럼 말했다.

KIA 팻딘(오른쪽)이 지난 12일 SK전을 마친 뒤 9회 세이브로 자신의 승리를 지켜준 김세현과 어깨 동무한 채 이야기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10승보다 하고 싶은 것은 우승

KIA가 우승을 위한 마지막 구간 질주를 앞둔 지금, 팻딘도 온마음으로 우승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성공한 선발 투수의 기준이 되는 10승을 채우지 못할지 모르지만 팻딘의 시선은 오직 ‘KIA 우승’에 가있다.

팻딘은 “나는 좋아하는 야구를 매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하지만 팀으로 보면 한 시즌 동안 모두가 호흡을 맞추며 땀흘리는 유일한 이유는 우승이다”며 “이대로 (8승에서) 끝나더라도 그 경기에서 팀이 이기면 된다. 마지막까지 내가 던지는 경기에서 팀이 이겨 우승할 수 있도록 공 하나하나 집중해 던지는 것이 이제 내가 할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동료들에게도 당부했다. 팻딘은 “야구하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100개를 던지다 공 1개를 자신감 없이 던지면 타자가 가장 먼저 알아 놓치지 않고 홈런을 친다”며 “우리 팀 모두 시즌 마지막까지 자신감 갖고 잘 지켜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불펜 투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야기 하는 내내 형식적인 답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팻딘은 끝까지 동료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우리가 좋지 않은 경기를 한 적도 있지만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끝낸 경기도 많았다. 뒤에서 잘 막아줘 이긴 경기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며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나는 불펜 투수 너희를 모두 믿는다”고 말했다.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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