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약한 산업부 제동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우려 '고조'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절차의 마련이다"(전자업계 관계자)
"기술유출 우려에 대해 보다 심도깊은 논의를 위함이다"(산업통상자원부)
2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의 중국 내 투자확대를 신중히 재고토록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는 후속 대책 마련에 고심중이다.
이같은 정부 기조에 가장 먼저 불똥이 튄 곳은 LG디스플레이로 중국 내 투자가 빈번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최대 20조원 규모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 광저우 공장의 기존 자본금(1조8000억원)에 3조2000억원을 더해 총 5조원 규모의 8.5세대 대형 OLED 패널 생산을 위한 합작사 설립에 쓴다고 밝힌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같은 계획 발표 직후 산업부에 승인을 신청했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당초 실제적인 승인 심사를 담당하던 곳은 산업부 소속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아래의 '전기전자 전문위원회'였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가 신청서를 낼 때쯤 전문위원회와 별도 조직인 '소위원회'가 구성됐다.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가능성을 더 세밀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내세웠다.
별도 조직이 새로 마련되자 절차가 평소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청서를 제출한 지 약 두 달 여 만인 지난 20일 오전에서야 첫 번째 소위원회가 열렸고 중국 진출의 사유, 기술유출의 가능성은 없는지 등 질문과 LG디스플레이 측 답변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때마침 지난 18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에서 국내 투자를 강조하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피해 우려를 이유로 중국 내 투자를 신중히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정부가 중국내 투자확대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들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법에 따르면 전문위가 기술유출 방지를 논의토록 돼 있다"며 "소위원회 마련은 해당 분야 실무 전문가들이 그런 부분을 더 세밀히 들여다보기 위함이고 소위원회를 만들자고 한 것도 전문위에서 자체적으로 나온 결과이지 정부 강행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전문위는 15명으로 구성됐으며 이중 대다수가 민간위원, 소수가 관계 행정기관 소속이라는 설명이다.
'산업 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 11조에 따르면 국가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기관이 해당국가핵심기술을 수출하고자 하는 경우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 전에 전문위원회 등을 통한 사전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OLED는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
산업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데다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디스플레이 학계 전문가는 "중국에 공장을 짓고 디스플레이를 생산해 비용을 절감하고 현장 업체에의 납품 등에 기민하게 대응했던 것은 이미 수 년전부터 해오던 일"이라며 "이번 소위원회 구성은 업계의 목소리가 대변됐다기보다는 정부가 '기술이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지레짐작으로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시점상 이제와 새삼스레 기술유출을 우려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국내 일자리 확대나 중국과의 갈등 등 여러 정치적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LCD(액정표시장치) 분야 주도권은 중국에 넘어가다시피 한 상황에서 신기술인 OLED에 대한 적기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쟁국의 추격이 더 거세질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전세계 TV 시장에서 OLED TV는 아직 개화기 전의 초기 시장이지만 올해 2분기 말 기준 글로벌 OLED TV 대수 출하량(28만2300대)이 2년 전(4만1700대) 대비 6.8배 늘어나는 등 시장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시장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해 이번 논란이 시작된 이후 최근 사흘간(19~21일) LG디스플레이 주가는 7.6% 하락했다.
무엇보다 이번 투자지연으로 인해 LG디스플레이와 함께 OLED 기술을 개발하면서 중국 동반진출을 추진하던 중견중소 장비업체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 이번에는 소위원회가 디스플레이 업종에 국한돼 처음으로 마련됐지만 향후 반도체 업체가 중국 내 투자를 확대하고자 할 경우 반도체 업종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격의 소위원회가 구성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소위원회의 성격이나 심사 진행 절차에 대해 아직 들은 바 없다"며 "사안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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