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연주의 숨은 조력자 '페이지터너'

강주화 기자 2017. 9.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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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71)가 지난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8회에 걸쳐 16시간 동안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55)은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페이지터너는 연주의 일부"라며 "호흡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페이지터너와 연주자의 관계는 실내악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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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옆에서 악보 넘겨주는 역할, 국내선 '넘순이' '넘돌이'라고 불러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에서 페이지터너 노소은씨(오른쪽)가 악보를 넘기고 있다. 빈체로 제공
노소은씨. 최종학 선임기자

피아니스트 백건우(71)가 지난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8회에 걸쳐 16시간 동안 연주했다. 백건우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페이지터너(Page-Turner) 노소은(25)씨는 바로 옆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했다.

페이지터너란 클래식 공연에서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국내에서는 ‘넘순이’ ‘넘돌이’라고도 한다. 노씨를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긴장하다보니 앉았다 일어설 때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서 백 선생님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화여대 작곡과 대학원생인 노씨는 교수의 추천으로 백건우의 페이지터너를 맡게 됐다. 그는 “백 선생님이 거의 외우고 계셔서 그런지 악보를 보시지 않았다”고 했다. 페이지터너는 연주자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신 악보를 넘겨주거나 연주자가 암보(暗譜)하더라도 악보를 잊을 경우에 대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지막 소나타 32번을 연주할 때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어요.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끝이라는 생각에…. 다 마친 뒤 선생님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죠.”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인 노씨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꼈다”며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고 계속 음악을 할 힘을 얻었다”고 했다.

페이지터너 경험은 이처럼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된다. 한 중견 연주자는 지금도 “예전에 정명화 트리오의 페이지터너 기회가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게 후회 된다”고 얘기한다.

페이지터너는 연주자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피아니스트 김대진(55)은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페이지터너는 연주의 일부”라며 “호흡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페이지터너와 연주자의 관계는 실내악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미국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명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은 “일본인 페이지터너에게 악보를 넘겨달라는 뜻으로 얼굴을 보며 웃었는데 그는 내 미소에 화답만 하고 악보를 넘기지 않았고, 그날 연주는 엉망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전문 연주자들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자기가 신뢰하는 이에게 페이지터너를 맡긴다. 김대진은 10년 넘게 제자로 만난 이에게 이 역할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페이지터너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 위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프랑스 영화 ‘페이지터너’(2006)에는 페이지터너에게 의존하다 그가 사라지자 위기에 처하는 피아니스트가 나온다. 요즘엔 페이지터너가 필요 없는 전자 악보가 해외를 중심으로 널리 퍼지는 추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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