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장사 감사인 강제 지정, '도 넘은 관치' 논란

김동욱 입력 2017. 9. 22.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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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모든 상장사의 회계감사법인을 정부가 사실상 강제로 지정하는 '감사인지정제도'가 전면 도입된다.

당초 정부는 외부감사인을 정부 직권으로 지정하는 기업의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회사가 원하는 회계법인 3곳 중 1곳을 당국이 정하는 '선택지정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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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봉쇄’ 감사인 지정제

2020년 도입 법안 정무위 통과

상장사 80% 안팎 대상될 듯

“반시장 조치… 부실 감사 우려”

2020년부터 모든 상장사의 회계감사법인을 정부가 사실상 강제로 지정하는 ‘감사인지정제도’가 전면 도입된다. 수조원대 회계 사기를 저질러 문제가 된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법인 선임권을 제한해 ‘갑을 관계’에서 오는 부실 감사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게 새 제도의 취지다. 그러나 기업의 권한과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반(反)시장적 조치인데다가 대다수 선량한 기업까지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커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1일 법안심사 전체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상장사는 처음 6년간은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3개 사업연도에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를 통해 외부감사인을 지정받아야만 한다. ‘6년 자유선임+3년 지정’ 방식인 셈이다. 지금까진 회사가 알아서 감사인을 선택하는 자유수임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당국의 직권지정제가 일부 적용되는 형태였다. 대우조선처럼 분식회계를 저지르거나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때에만 정부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했다. 그 동안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기업의 비율은 6.8% 수준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바뀐 제도가 도입되면 대략 상장사 가운데 80%는 지정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상장사는 1,958개에 달하는데 대략 1,560개 기업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다만 개정안은 정부의 감사인 지정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예외 규정도 뒀다. 지배구조가 우수하고 최근 6년 간 금융감독원의 감리를 받아 별다른 회계부정이 발견되지 않은 회사의 경우엔 예외가 인정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도 초반엔 대략 80% 안팎의 기업이 정부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점차 그 비율은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대우조선 사태가 터진 후 정부가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추진한 대책 가운데 가장 강도가 센 것이다. 당초 정부는 외부감사인을 정부 직권으로 지정하는 기업의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회사가 원하는 회계법인 3곳 중 1곳을 당국이 정하는 ‘선택지정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선택지정제 대신 정부가 아예 회계법인 1곳을 강제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규제 수위가 대폭 올라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업이 다소 부담스러워할 순 있지만 회계 선진화를 위해 좀 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됐다”며 “분식회계를 잡는 데에 상당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지정제를 모든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글로벌 기준과 거리가 멀고 기업을 사실상 감시의 울타리 안에 놓고 보겠다는 것”이라며 “특정 업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감사인이 선임될 경우엔 오히려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회계학과 교수는 “정부가 형평에 맞게 기업에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도를 넘어선 관치”라고 꼬집었다. 정부 관계자는 “시행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제도를 충실히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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