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 완전 파괴" 연설한 자리, 평화 얘기한 문 대통령

강태화.허진 2017. 9. 22.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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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평화는 분쟁 다루는 능력"
트럼프가 존경하는 레이건 말 인용
압박과 제재 통한 대화 해법 강조
맨 앞줄 북한 대표단 바라보며
"어떠한 흡수통일도 추구 않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북한은 스스로 고립과 몰락으로 이끄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타국을 적대하는 정책을 버리고 핵무기를 검증 가능하게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다만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상응하는 새로운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고, 최종적으로는 평화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자신의 평화구상의 재확인이었다. 이틀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호전적 언어를 쏟아낸 바로 그 무대에서의 다른 목소리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 만큼 자칫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미국 보수 진영의 아이콘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거명했다. 그는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으로 과거 옛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며 군비 경쟁을 벌였다. 1987년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 “고르바초프(옛 소련) 서기장,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를 원한다면,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라고 외쳤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은 2년 뒤 무너졌고, 다시 2년 뒤 소련도 해체됐다. 문 전 대통령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레이건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발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4년 9월 문 대통령이 인용한 문구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역사적 상황이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결국 동구권의 해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달성됐다”며 “이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연설 장소에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나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2명의 북한대표부 소속 직원들이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며 메모를 했다. 북한 대표단은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한 언급이 나오는 대목에서 문 대통령을 바라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적극 환영하며 (참가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할 땐 북한대표단을 향해 두 팔을 내밀었고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이나 인위적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할 때도 시선을 북한대표단 쪽에 두었다. 연설은 예정된 15분을 넘겨 22분간 진행됐다.

뉴욕=강태화 기자, 서울=허진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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